서울대 생물정보학 박사과정 프랭크씨…"3시간씩 자며 한국어 공부했다"
'고속 성장' 역사에 매료돼 미국 대신 한국 유학…재한 르완다인 권익 활동도

[우리품의 아프리카인] ⑽ 바이오 연구하는 르완다판 'SKY 캐슬' 주인공

서울대 생물정보학 박사과정 프랭크씨…"3시간씩 자며 한국어 공부했다"

'고속 성장' 역사에 매료돼 미국 대신 한국 유학…재한 르완다인 권익 활동도

연합뉴스와 인터뷰 하는 서울대 생물정보학 박사과정생 프랭크씨
[촬영 임경빈 인턴기자]

(서울=연합뉴스) 임경빈 인턴기자 = "드라마 'SKY 캐슬'으로 접했던 서울대를 실제로 방문했을 때 푸르른 캠퍼스와 학생들의 학구열에 크게 감명받았습니다. 그 길로 석사는 무조건 서울대에서 하고 싶다고 지도교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르완다 출신 서울대 생물정보학 박사과정생 프랭크(25) 씨는 지난 20일 서울시 관악구 서울대의 한 카페에서 가진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방학 때마다 지도교수님 연구실에서 공부하고 몇 개월 동안 지원서를 준비한 끝에 서울대 석사과정에 합격했다"고 말했다.

생물정보학은 유전자 정보, 단백질 구조, 임상 기록 등 바이오와 관련된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는 학문이다.

프랭크 씨는 "우리 건강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숫자로 표현하는 일"이라며 "병원 데이터 분석부터 최근 주목받고 있는 유전자 가위까지 다양한 분야를 연구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고국에서부터 학교와 집 밖에 모르는 모범생이었다.

방학에도 이른 아침부터 도서관으로 향할 정도였다.

프랭크 씨는 "3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며 "내가 살았던 수도 키갈리는 교육열이 높은 편이었다"고 돌아봤다.

중학교 때 생물학 선생님의 수업에 흥미를 느껴 관련 분야를 계속 공부하겠다는 꿈을 키웠다고 한다.

한국을 처음 접한 건 고교 시절 르완다 교육부와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KOICA)이 공동으로 주최한 시험에 참가하면서다.

시험 준비를 위해 코이카에 관한 정보를 찾아보는 과정에서 한국에 매력을 느끼게 됐고, 기존에 계획했던 미국 유학 대신 한국행을 결심했다.

그는 "한국과 르완다는 아픈 과거를 딛고 고속 성장을 일궈낸 경험을 공유한다"며 "한국에서 공부해 르완다로 돌아간다면 벤치마킹할 점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르완다는 2000년 폴 카가메 대통령의 집권 이후 연평균 7.8%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본보기 삼았던 그는 헌법 개정을 통해 장기 집권의 길을 연 권위주의 지도자라는 지적도 받았다.

폴 카가메 르완다 대통령(왼쪽)과 사진 찍은 프랭크 씨(오른쪽)
[프랭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프랭크 씨는 정부초청 외국인 장학생(GKS) 사업에 지원해 그해 르완다에서 유일한 합격자가 됐다.

그러나 한국행 비행기에 타는 순간부터 불안감은 커졌다.

그는 "낯선 한국어가 들리자 과연 내가 한국에 적응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며 "미국 유학을 포기한 것이 후회되기도 했지만 일단 한국에서 3개월만 버텨 보자고 마음먹었다"고 밝혔다.

2018년 한국에 온 뒤 동서대 외국어교육원에서 한국어를 배웠다.

그는 "처음에는 한국어가 너무 어려웠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매일 3시간만 자면서 공부하다 보니 어느 순간 머리가 트였다"며 "3개월 만에 한국어능력시험(TOPIK) 5급에 합격할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이후 조선대 의생명과학과에 입학했다.

모든 강의가 한국어로 진행됐기에 진도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했다.

매일 오전 5시에 일어나 한국어 강의자료를 영어로 번역하고 유튜브로 그날 강의 내용을 예습했다.

강의가 없는 날에는 한국 콘텐츠를 시청하며 듣기 실력을 키웠다.

드라마 '하나뿐인 내편', 'SKY 캐슬'을 시작으로 '연애의 맛', '미스터 트롯' 등 예능 프로그램까지 섭렵했다.

프랭크 씨는 "처음 시청할 때는 영어 자막으로 보다가 한국어 자막으로, 마지막에는 자막 없이 봤다"며 "낯설던 한국어가 점점 귀에 익어갔다"고 말했다.

그렇게 캠퍼스 생활에 적응해 나간 프랭크 씨는 학부를 1등으로 졸업했다.

그는 "유학생이라는 이유로 특혜를 줄 수 없으니 한국 사회에 적응하려면 한국어를 익혀야 한다는 교수님 말씀이 원동력이 됐다"며 "신입생 시절 친해졌던 동기들도 큰 힘이 됐다"고 전했다.

한복 입은 프랭크 씨
[프랭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는 현재 주한르완다커뮤니티 부회장을 맡고 있다.

주한 르완다대사관과 협력해 영웅의 날(2월 1일), 르완다 대학살 추모일(4월 7일), 해방의 날(7월 4일) 등 르완다 국경일 기념행사를 진행하는 것이 주요 업무다.

회원의 권익을 위한 다양한 활동도 진행하고 있다.

프랭크 씨는 "병원비 등 목돈이 필요할 때 서로 도울 수 있게 한다"며 "최근에도 모금 활동을 통해 급히 르완다에 가야 하는 회원의 항공권 비용을 지원했다"고 덧붙였다.

커뮤니티 활동이 중요한 이유로는 연대를 꼽았다.

그는 "낯선 나라에서 동향 사람의 존재는 큰 힘이 된다"며 "모국어로 소통하며 외로움을 해소하고 도움을 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에 르완다의 참모습을 알릴 활동도 구상 중이다.

프랭크 씨는 "한국 검색 엔진에 르완다를 입력하면 가난했던 과거에 관한 내용만 보여준다"며 "제대로 된 정보가 부족해서라고 생각한다. 빠른 속도로 발전 중인 르완다의 현재를 알릴 수 있도록 관련 콘텐츠를 제작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박사 과정을 마친 후에도 연구의 끈을 놓지 않을 계획이다.

프랭크 씨는 "현재로서는 교수직에 도전하거나 연구원으로 취직하는 것이 목표"라며 "기회가 주어진다면 언제든 고국에 돌아가서 배운 바를 활용할 생각도 있다"고 포부를 밝혔다.

imkb042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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