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예멘난민처럼…아프간인도 언젠가 우리 가족 되리라 믿어"
"제주 예멘난민처럼…아프간인도 언젠가 우리 가족 되리라 믿어"
  • 이상서
  • 승인 2022.02.26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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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제10대 특별공로자' 선정된 갈 크리스티나 에벨리나 수녀
"사람이 사람 돕는데 종교는 상관없어…누구에게든 손 내밀 것"

"제주 예멘난민처럼…아프간인도 언젠가 우리 가족 되리라 믿어"

법무부 '제10대 특별공로자' 선정된 갈 크리스티나 에벨리나 수녀

"사람이 사람 돕는데 종교는 상관없어…누구에게든 손 내밀 것"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 = "울산에 정착을 시작한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를 보면서 4년 전 제주 예멘 난민이 떠올랐어요. 당시 이들의 수용 문제를 놓고 제주도는 큰 갈등을 빚었죠. 그런데 지금도 그렇게 보이시나요?"

법무부의 '제10대 특별공로자'로 인정받아 한국 국적을 취득한 갈 크리스티나 에벨리나 수녀(가운데). [본인 제공]

갈 크리스티나 에벨리나 수녀(46)는 최근 법무부로부터 '제10대 특별공로자'로 인정받아 대한민국 국적을 받았다.

루마니아 출신으로 낯선 한국에 와서 15년째 국내 이주민과 난민 수천 명을 도운 그간의 노력 덕분이다.

법무부는 2012년 특별공로자 국적증서 수여 제도를 도입해 매년 특별공로자를 선정해왔다. 특별공로로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면 기존의 외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고도 우리 국적을 함께 보유할 수 있다.

그는 26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만난 대부분의 한국 사람은 처음에는 경계하고 거리를 두려 했지만, 함께 시간을 보낼수록 따뜻한 배려와 과분한 정을 줬다"며 "제주 예멘인이 그랬듯 아프간 특별기여자들도 언젠가 지역 사회에 안착하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2007년 천주교 서울대교구 성령선교수녀회 파견 명령을 받아 한국을 찾은 크리스티나 수녀는 경기도 의정부와 안양, 수원 등 이주사목센터에서 이주민을 돕는 일을 해왔다.

2018년부터는 천주교 제주교구 '나오미센터'에서 제주 예멘 난민의 정착 지원을 비롯해 이주여성과 아동을 위해 힘쓰고 있다.

"사실 모국에서 한국(KOREA)이라고 한다면 남한보다 북한이 더 잘 알려졌어요. 그래서 처음 인천국제공항의 화려한 모습을 보고 제 상상과는 너무 달라 놀랐죠. 맘을 가라앉히고 찬찬히 살펴보니 이 좋은 나라에서도 도와야 하는 이들이 많더라고요."

수많은 이주민을 만나왔던 그에게도 2018년 제주 예멘 난민 사태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당시 제주도에 예멘 출신 난민 신청자가 500명에 이른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들의 입국을 반대한다는 청원이 올라와 38만여 명이 동참했다.

난민법 폐지와 제주 예멘인 송환, 제주 무사증 제도 폐지 등을 촉구하는 집회가 서울과 제주 등 전국 곳곳에서 열리기도 했다.

그는 "난민에게는 방을 주지 않겠다는 집주인이나, 난민 아동의 학교 입학을 거부하는 학부모 등 반대 여론이 매서웠다"면서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난민들이 별문제 없이 사는 것을 보면서 한데 어울려 사는 분위기가 조성됐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난민 아동을 반대했던 한 부모는 '아이들끼리 잘 지내는 모습을 보니 그때는 왜 그렇게 싫다고 했는지 모르겠다'고 얘기할 정도"라며 "지금 울산도 4년 전 제주와 비슷한 상황인 만큼 주민들의 마음도 언젠가 열리리라 믿는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8월 국내로 입국한 아프간 특별 기여자들은 자립 프로그램을 거쳐 최근 인천과 울산 등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러나 아동 85명을 포함한 150여 명의 아프간인이 정착한 울산에서는 일부 주민들이 이들의 주거 문제와 자녀 학교 배정 문제를 두고 반발하고 있다.

크리스티나 수녀는 이들이 중동국가 출신이고 생소한 종교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사람이 사람을 돕는데 종교는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카카오톡 개인 프로필 메시지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로 정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했다.

법무부의 '제10대 특별공로자'로 인정받아 한국 국적을 취득한 갈 크리스티나 에벨리나 수녀. [본인 제공]

그가 성당에서 함께 먹고 자면서 가족처럼 지냈던 제주 예멘 난민 중 대부분은 자연스럽게 연락이 뜸해졌다.

서운할 법도 하지만, 그는 "오히려 내가 바라는 일"이라고 답했다.

"도움을 요청하는 이도 좋지만, 더는 도움이 필요하지 않아 날 찾아오지 않는 사람은 더 좋아요. 저는 언젠가 도움이 더 필요로 하는 곳으로 떠나야 하니까요. 가끔 와서 커피 한잔하자고 하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그는 "앞으로도 지금처럼 이주민이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라며 "상황이 허락한다면 도움이 필요한 한국인에게도 손을 내밀고 싶다"고 말했다.

그에게 이번에 받은 한국 국적의 의미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15년 동안 열심히 살아온 덕에 받은 선물이 아닐까요? 한국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외롭고 낯설어 '언제 돌아갈까' 생각한 적도 있어요. 그러다 저에게 손을 내밀어준 이들과 가족처럼 지내면서 이제는 '한국인보다 한국인 같다'는 소리도 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정말로 한국 사람이 됐습니다."

국적증서 수여자들과 기념 촬영하는 박범계 장관
(서울=연합뉴스) 박범계 법무부 장관(왼쪽 세 번째)이 지난 24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특별공로자 국적증서 수여식'에서 국적증서 수여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타망 다와 치링 스님, 원이삼 선교사, 박 장관, 갈 크리스티나 에벨리나 수녀. 2022.2.25 [법무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shlamaz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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