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에 직언 가능한 유일한 인물"…DJ조문단장으로 南과도 인연
"김정일에 직언 가능한 유일한 인물"…DJ조문단장으로 南과도 인연
  • 장용훈
  • 승인 2024.05.08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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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멘토, 장성택 제거 과정서 주도적 역할…한미 제재 대상에 이름 올려

"김정일에 직언 가능한 유일한 인물"…DJ조문단장으로 南과도 인연

김정은 멘토, 장성택 제거 과정서 주도적 역할…한미 제재 대상에 이름 올려

김정은 부부와 함께 공연 관람하는 김기남 전 당비서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난 15일 평양 동평양대극장에서 부인 리설주와 함께 러시아 21세기관현악단의 공연을 관람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6일 보도했다. 2013.10.16 photo@yna.co.kr

(서울=연합뉴스) 장용훈 기자= 7일 오전 사망한 김기남 전 북한 노동당 선전선동 비서는 '북한의 괴벨스'란 별칭을 가진 선전선동 분야의 일인자다.

올해 94세로 고령인 김 전 비서의 사인은 노환과 다장기 기능부전이라고 북한 매체가 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정치적 멘토'였던 그는 2013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영구차를 호위한 7명 중 처벌당하지 않고 정치적으로 살아남은 두 사람 중 한 명이다. 그와 최태복 노동당 비서만이 김 위원장이 노동당을 장악하는 과정을 도왔다.

군부 장악에 현철해 국방성 총고문(2022년 사망)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면, 김 전 비서는 노동당을 김정은 위원장의 조직으로 만드는데 소임을 다한 것이다.

당시 북한은 김정일 위원장 사망 직전 당 정치국 회의를 열어 '10월 8일 유훈'을 남겼다고 소개했는데, 공개된 정치 일정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당 조직지도부나 선전선동부 등 핵심부서 수장만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는 비밀파티 형식의 회의였을 것으로 추정됐다.

탁월한 선전선동가였던 김 전 비서는 이 유훈을 바탕으로 김정은 위원장의 승계 논리를 만들고 확산하면서 김일성 일가 3대 세습체제의 토대를 구축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는 2013년 12월에는 김정은 정권의 2인자로 군림하던 장성택 부위원장을 '반당 반혁명 종파분자'로 낙인찍는 당 정치국 확대회의에 토론자로 직접 나서 김정은 체제 안착의 걸림돌을 제거하는 일도 주도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8일 새벽 2시 직접 빈소를 찾아 조문한 것도 이런 인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래픽> 김정일 영구차 호위 8인의 신병처리 결과
(서울=연합뉴스) 반종빈 기자 = 북한이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숙청을 공식화하고 9일 이를 공개한 것은 장 부위원장의 숙청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고 전문가들이 분석했다.

bjbin@yna.co.kr

@yonhap_graphics(트위터)

김정은-김기남 두 사람의 인연은 후계자로 내정된 2009년 이전부터 맺어진 것으로 파악된다.

일본 마이니치 신문이 입수한 '위대한 선군 조선의 어머님' 제목의 영상에는 1980∼90년대를 중심으로 촬영된 김 위원장의 모친인 고용희의 활동이 담겼는데 여기에 보면 현철해, 김기남 등의 부인들과 함께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김정은 위원장의 정치적 멘토인 김 전 비서는 1970년대 노동당 기관지인 월간지 '근로자'와 일간지 '노동신문'의 책임주필을 지내며 유일지배체제의 사상적 토대를 쌓았다.

1980년대 중반부터는 노동당 선전선동부를 장악하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최측근으로 북한 최고지도자에 대한 우상화 등을 주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김 전 비서의 약력을 공개하면서 "고난의 행군, 강행군 시기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의 두리에 전체 인민을 더욱 굳게 묶어세우고 사상의 위력으로 조국과 혁명, 사회주의를 수호하며 주체혁명위업의 순결한 계승을 굳건히 담보하는데 특출한 공헌을 했다"고 소개했다.

과거 황장엽 전 비서는 한 기자회견에서 김정일 위원장 앞에서 직언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 김 전 비서를 꼽을 정도로 북한 최고지도자의 신임이 돈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립묘지 참배한 북측 대표단과 김기남 전 당비서
2005.8.14 (서울=연합뉴스)

cityboy@yna.co.kr

<저작권자 ⓒ 2005 연 합 뉴 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그가 과거 남한을 방문해 보여준 거침없는 광폭 행보는 최고지도자의 두터운 신임이 자리했기에 가능했다.

2005년 당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부위원장을 겸한 그는 8·15민족대축전 참석을 위해 대표단 단장으로 서울을 방문해 6·25전쟁 이후 북한 당국 관계자로선 처음으로 국립현충원을 참배했다.

이어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는 김정일 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북한 조문단장을 맡아 김양건 통일전선부장과 함께 서울을 찾아 조문했다.

당시 조문을 마친 그는 귀환 일정을 미뤄가며 청와대를 방문해 이명박 대통령을 예방하고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북한체제를 김정은 위원장을 중심으로 묶어내는 핵심역할을 하고 대외적으로도 알려지면서 그는 국제사회의 제재대상으로 지정됐다.

2016년 7월 미국의 북한 인권제재 대상에 이름을 올렸고 같은 해 12월 한국의 독자대북제재 대상이 됐다.

jy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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