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버스·식당 내 옆자리에 아무도 앉지 않네요"
[삶] "버스·식당 내 옆자리에 아무도 앉지 않네요"
  • 윤근영
  • 승인 2024.01.02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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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에 쥐덫 놔야 하고, 잠잘 때는 마스크 써야"
"하루 12시간씩 일시키고 연간 체불임금 1천억원"
"오른손 다치니 왼손으로 운전하라네요, 면허없는데"

[삶] "버스·식당 내 옆자리에 아무도 앉지 않네요"

"주방에 쥐덫 놔야 하고, 잠잘 때는 마스크 써야"

"하루 12시간씩 일시키고 연간 체불임금 1천억원"

"오른손 다치니 왼손으로 운전하라네요, 면허없는데"

[※ 편집자 주 = 이 기사는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김달성 포천 이주노동자센터 대표를 통해 연합뉴스에 보내온 삶의 사례를 묶은 것입니다. 첫 번째 기사는 지난달 19일 [라는 제목으로 나갔습니다. 이번이 두 번째 기사입니다. 이주노동자들이 자국어로 쓴 글을 김 대표가 한국어로 번역한 뒤 뜻이 변하지 않는 범위에서 문장을 부분적으로 손질했습니다.]

뼈 결핵종양으로 수술받은 네팔 노동자
[김달성 목사 제공]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선임기자= 버스와 식당에서 내 옆 빈자리에 아무도 앉지 않으려 한다면 당혹스러울 것이다. 모욕감을 느낄 수도 있다. 무시당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이주노동자는 130만명이다. 이들은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종종 이런 경험을 한다.

고용노동부나 근로복지공단, 의료기관 등에 가면 이들한테 반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김달성 포천 이주노동자센터 대표는 "국민 소득수준이 우리보다 낮은 나라, 피부 색깔이 우리보다 좀 검은 사람들에게 한국인들이 함부로 대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에 이주노동자들이 없다면 제조업, 어업, 농업은 돌아갈 수 없다"면서 "이들을 따뜻하게 대하고, 우리의 이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체불되는 임금이 연간 1천억원에 달한다"면서 "하루 12시간씩 고된 노동을 시키고 임금을 떼어먹는 것은 선진국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청주고, 감리교신학대를 졸업한 뒤 서울 동작구 사당동, 봉천동, 인천 등에서 빈민, 노동자들을 위한 목회 활동을 했다. 6년 전부터는 포천 이주노동자센터 대표로서 이주 노동자들을 돕고 있다.

◇ "내 옆의 빈자리에 앉지 않는 한국인들"

(방글라데시에서 온 노동자)

방글라데시 노동자
[본인 제공]

나는 2015년 한국에 와서 경기도 포천시의 한 공장에서 일했다. 힘든 공장일을 하면서 한국어 공부도 열심히 했다.

그런데 많은 한국인은 동남아에서 온 노동자들과 함께 앉아 식사하는 것을 불편해한다.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공장 식당에서 한국인과 함께 식사한 적이 없다. 이주노동자들하고만 밥을 먹었다. 한국인들은 우리가 식사하는 테이블에 빈자리가 있어도 앉지 않는다.

버스를 타고 어디에 갈 때도 마찬가지다. 나의 옆자리가 비어 있어도 한국인들은 앉지 않는다. 내가 버스에서 내리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면 그때서야 그곳에 앉는다.

공장 현장에서도 설움을 많이 느낀다. 고용주들은 이주노동자들을 주먹으로 때리지 않더라도 정신적으로 괴롭힌다.

상당수의 사장, 공장장, 부장들이 욕을 한다. 이주노동자가 실수했을 때 이들은 "이새끼", "개새끼" 하면서 욕하는데, 한국인이 같은 실수를 하면 아무 말도 안 한다.

한국의 고용주들은 우리가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고 차별하고, 피부색이 검다고 무시한다. 나는 힘든 일은 견딜 수 있지만 이런 차별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나는 한국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싶다. 그들과 밥도 같이 먹고, 이야기도 하고, 버스나 지하철에서도 옆에 함께 앉고 싶다.

◇ "주방에 쥐덫을 놔야 해요"

(방글라데시 출신 30대 초반 노동자)

방글라데시 노동자가 살았던 숙소의 주방
[본인 제공]

나는 방글라데시에서 대학을 졸업했다. 방글라데시는 인구가 많아 좋은 일자리를 얻을 기회가 적다. 더 나은 직업을 위해 나는 24세였던 2017년에 고용허가제 취업비자를 얻어 한국에 왔다.

나의 첫 회사는 대전에 있는 목재공장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힘든 일을 했고, 아주 고통스러웠다. 작업장에 먼지가 너무 많았다. 일을 하다가 큰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나와 동료 노동자들은 컨테이너 속에서 살아야 했다. 겨울에는 그런 곳에서 사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 그 회사에서 6년 일한 뒤 방글라데시에 돌아갔다가 한국에 재입국했다.

재입국해 들어간 회사는 경기도 하남시에 있었다. 작업실은 먼지와 소음이 심했다. 지하에 있는 숙소는 살기 어려울 정도였다. 주방에는 쥐들이 드나들었고, 쥐를 잡는 덫을 놔야 했다.

방은 45년이나 된 것으로 수리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방문은 망가져 있었다. 방안에 먼지가 많아 잠잘 때도 마스크를 써야 했다.

나는 작업장에서 오른쪽 다리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입원해 치료받았고, 퇴원 뒤에도 오랫동안 통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사장은 나에게 다리가 부러진 채로 일하라고 했다. 날마다 숙소에 찾아와 일할 것을 강요했다. 즉시 일을 하지 않으면 나를 불법 체류자로 만들 것이라고 협박했다.

나는 포천 이주노동자센터에 도움을 요청했다. 김달성 목사의 도움으로 뒤늦게 산재보험 보상도 신청했고, 산재 승인도 받았다.

◇ "한국은 선진국 아닌가요"

(네팔 출신 노동자)

김달성 목사와 식사 중인 네팔 노동자
[김달성 목사 제공]

2008년 네팔에서 대학을 중퇴하고는 돈 벌러 한국에 왔다.

한국어 시험을 통과한 뒤 체력 테스트를 받았다. 가슴 X-RAY 등 여러 가지 건강검진 과정을 통과했다. 한국에 들어와서 건강검진을 또 받았는데 아무 이상이 없었다.

경기도 발안에 있는 회사에 들어갔다. 당시 우리가 받은 월급은 80만~90만 원이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화학물질 가루를 혼합하는 작업을 했다. 회사는 면 마스크를 한 주에 하나씩 지급했다. 방진 마스크는 주지 않았다.

나는 그 공장에서 8개월 만에 손을 다쳤다. 오른 손목이 뜨거운 기계에 화상을 입었다. 사장이 나를 병원으로 데려갔다. 사장은 치료받으며 며칠 쉬라고 했지만, 공장장은 일을 계속 시켰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왼손으로 지게차를 운전하며 작업해야 했다. 면허증도 없이 지게차를 운전했다.

발안 공장에서 나는 맹독성 화학물질 분말 가루를 많이 흡입했다. 치명적 병을 얻을 것만 같아 입사 16개월 만에 고용주의 허가를 받아 회사를 옮겼다.

안산의 철근공장에서 일했는데 주로 무거운 철판을 절단했다. 그곳에서는 허리 통증이 심해 고통스러웠다. 왼손 두 번째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까지 당했다.

일한 만큼 임금을 달라며 시위를 벌이는 이주노동자들
[연합뉴스 자료 사진]

2013년 취업비자가 끝나서 네팔로 돌아갔다가 2015년 한국에 다시 왔다. 이전에 다니던 데코타일 회사로 고용노동부가 보냈다. 이 회사는 화학물질을 많이 사용했다. 화학물질 가루가 미세먼지처럼 늘 작업장에 자욱했다.

재입국한 지 3년 만에 나의 몸에 이상 증상이 생겼다. 자꾸 기침과 가래가 나왔다. 미열도 계속됐다. 의정부의 한 병원에 갔더니 폐결핵이라고 했다. 큰 병원으로 간 나는 3개월간 결핵약을 먹으며 쉬었다. 월급은 받지 못했다.

취업비자 기간이 6개월 정도 남았을 때 오른쪽 다리가 아파 병원에 갔더니 뼈결핵 종양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비자 기간이 만료된 뒤에도 치료를 위해 계속 한국에 체류했다. 그러자 건강보험 미가입자가 되어 많은 치료비를 고스란히 부담해야 했다.

내 결핵의 원인은 안전장치나 안전 장비 없이 여러 해 동안 화학물질 공장에서 일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선진국이라는 한국에 와서 후진국 병이라는 결핵을 얻었다.

◇ "병든 부모에게 돈을 보내드려야 하는데"

(필리핀 출신 40대 후반 노동자)

체불임금을 받기 위해 노동부에 전달할 진정서 작성 중인 필리핀 노동자
[김달성 목사 제공]

나는 40대 후반이고 2015년 말 필리핀에서 왔다. 시골 고향에는 병든 부모님과 아내와 아이들이 있다.

나는 하루에 12시간씩 야간노동을 했다. 일이 힘들 때도 있지만, 아이들을 공부시키고 부모님 치료비도 대야 했기에 감수했다.

그런데 나는 두 달 치 월급을 받지 못했다. 사장은 준다고 약속만 했다. 고향에 돈을 보내야 하는데, 보낼 돈이 없다.

나는 한국 정부에 알려주고 싶은 게 있다. 한국의 많은 고용주가 이주노동자들을 학대한다는 것이다. 특히 많은 이주노동자가 임금을 받지 못해 고통을 겪고 있다. 고용주가 임금을 몇 달 동안 체불하거나 아주 떼어먹는 걸 자주 본다. 이주노동자들이 자기 나라로 돌아갈 때까지 퇴직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임금을 떼어먹는 고용주들이 그 임금을 모두 지급하도록 한국 정부가 강력한 조처를 해주기를 바란다.

keunyo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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