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촌·조현병' 굴곡진 엄마 삶 고백 한인 교수 "상처 기억을"
'기지촌·조현병' 굴곡진 엄마 삶 고백 한인 교수 "상처 기억을"
  • 성도현
  • 승인 2023.07.04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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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 '전쟁 같은 맛' 출간 '이민 2세대' 그레이스 조 방한 인터뷰
"개인의 삶 살펴봐 줬으면…뒤늦게 글로 하는 정식 장례식"

'기지촌·조현병' 굴곡진 엄마 삶 고백 한인 교수 "상처 기억을"

회고록 '전쟁 같은 맛' 출간 '이민 2세대' 그레이스 조 방한 인터뷰

"개인의 삶 살펴봐 줬으면…뒤늦게 글로 하는 정식 장례식"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는 이민 2세대 그레이스 M. 조 교수
(파주=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그레이스 M. 조 미국 뉴욕 시립 스태튼아일랜드대 사회학·인류학과 교수가 13년 만에 모국인 한국을 방문해 지난달 28일 경기 파주시 글항아리 출판사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7.4 raphael@yna.co.kr

(파주=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우리는 성매매 여성, 조현병 환자 등이라는 용어로 누군가에게 쉽게 꼬리표를 붙입니다. 낙인 속에 상처받고 한국을 떠난 이들을 기억해줬으면 합니다. 복잡했던 개인의 삶을 살펴봐 주면 좋겠어요."

그레이스 M. 조(52) 미국 뉴욕 시립 스태튼아일랜드대 사회학·인류학과 교수는 지난달 28일 경기 파주시 글항아리 출판사 사무실에서 진행한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2008년에 세상을 떠난 엄마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조 교수는 휴가를 맞아 2주간 제주와 부산, 경주 등을 여행하기 위해 13년 만에 아들 펠릭스(10) 군과 함께 한국을 찾았다. 그가 이민 1세대인 엄마를 기리며 쓴 회고록 '전쟁 같은 맛'은 마침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조 교수는 "엄마의 죽음 이후 학문적인 작업의 큰 주제는 모두 엄마였다"며 "정신적 트라우마, 집단주의적인 폭력 등이 엄마의 죽음과 관련 있지 않나 탐구하고 싶었고, 개인의 삶을 역사적인 맥락에서 이해해보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책이 나와 뿌듯하면서도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예상되지 않아 초조하기도 했다"며 "엄마의 경우 한 번도 적절하게 추모의 절차를 거친 적이 없어 이 책은 뒤늦게 글로 하는 엄마에 대한 정식 장례식인 셈"이라고 덧붙였다.

엄마로 대표되는 한인 이주여성의 삶과 엄마에게 갑자기 찾아온 조현병의 뿌리를 연구한 책은 2021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과 미국 공영 라디오 NPR의 '올해의 책'에 선정됐고, 그해 전미도서상 논픽션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르는 등 호평받았다.

조 교수의 엄마 '군자'(1941∼2008)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강제 징용된 한국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해방 후에 한국으로 돌아온 엄마는 한국전쟁과 분단, 미군정기 등을 겪었다.

엄마는 생존을 위해 부산 기지촌에서 일하던 중 백인 상선 선원이었던 남편을 만나 미국으로 이주했다. 조 교수가 1살, 그의 오빠가 8살 때다. 그의 가족이 정착한 미국 워싱턴주 셔헤일리스는 5천727명의 인구 중 한인이 3명에 불과했다.

전쟁 같은 맛
[글항아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조 교수는 생활력이 강했던 엄마가 낯선 타국에서 자신과 오빠를 키우며 치열하게 살았다고 전했다. 영어와 미국 요리를 배우며 미국인이 되려 했고, 가끔 이주하는 한인 입양인과 외국인 등을 돌봤다고 회상했다.

그는 "내가 15살 때 엄마에게 조현병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난 후 엄마의 삶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됐다"며 "자료를 찾아보고 가족과 전문가 등에게 호소했다. 마땅한 해결책은 없었지만, 근본 원인을 찾고자 했다"고 말했다.

엄마의 굴곡진 삶은 그가 좌절만 하지 않고 학문에 전념하게 된 원동력이 됐다. 왜 그렇게 많은 낙인과 오명이 존재하고, 한 개인에게 평생 부채가 돼야 하는지 등에 관해 궁금증을 품고 연구와 공부를 이어간 것이다.

그는 "엄마가 한 때 기지촌에서 미군 성 노동자로 일했다는 것을 나중에 듣고 망연자실한 적이 있다"며 "엄마가 그런 삶을 살았다는 것과 나한테도 계속 비밀로 해야 했다는 것 때문에 가슴이 아팠다"고 고백했다.

조 교수는 한국 대법원이 지난해 9월 과거 국내 주둔 미군을 상대로 한 기지촌에서 성매매에 종사한 여성들에게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취지로 판결한 것도 언급했다.

그는 "판결 소식을 접하고 기분이 좋았다. 엄마가 생전에 이 소식을 들었으면 기뻐했을 것"이라며 "국가 단위의 폭력인데 한국만의 잘못은 아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일본 식민주의와 미군정의 문제도 짚게 된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요즘 반공주의(反共主義)가 한국과 미국에서 어떻게 작동했는지에 관한 연구 중이다. 다음 책은 이와 관련한 주제일 거라고도 했다.

그는 "미군이 한국전쟁 과정에서 저지른 폭력의 문제와 함께 그런 일들이 개인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정리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rapha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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