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우위 美대법 "선의의 차별도 차별"…인종 다양성 축소될듯
보수우위 美대법 "선의의 차별도 차별"…인종 다양성 축소될듯
  • 임미나
  • 승인 2023.06.30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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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아시아계 역차별 논란 속 대법 "피부색 기준은 잘못" 판결
여론조사서 대학 입학 때 '인종' 고려에 부정적 견해 훨씬 많아
성적우수 아시아계, 대학 문호 넓어지나…대학들, 대안 마련 고심

보수우위 美대법 "선의의 차별도 차별"…인종 다양성 축소될듯

백인·아시아계 역차별 논란 속 대법 "피부색 기준은 잘못" 판결

여론조사서 대학 입학 때 '인종' 고려에 부정적 견해 훨씬 많아

성적우수 아시아계, 대학 문호 넓어지나…대학들, 대안 마련 고심

대학 입시 때 소수인종을 우대하는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과 관련해 시위하는 학생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임미나 특파원 = 미국 연방대법원이 29일(현지시간) 미국 대학들이 60여년간 신입생 선발 때 적용해온 소수인종 우대정책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결해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이번 판결로 인해 앞으로 하버드대를 비롯한 미국 대학들은 신입생 선발 시 더는 이런 소수인종 우대정책을 적용할 수 없게 됐다.

그동안 미국 대학들은 입학 전형에 인종 요소를 반영해 소수인 흑인이나 히스패닉 학생들에게 문호를 넓히면서, 인종적 다양성을 어느 정도 유지해왔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 사회도 많은 경우 고학력이 더 좋은 사회 진출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해왔다는 점에서 소수 인종 우대 정책은 미국 주류사회에서 흑인과 히스패닉들이 입지를 공고히 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줘왔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연방 대법원 판결에 따라 대학 입학 때 흑인 및 히스패닉 학생들에 대한 '특별한 고려 요소'가 사라지게 됨에 따라 향후 미국 대학 내 인종 다양성 축소는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판결이 대학 입학의 틀을 바꿔놓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일각에선 교육 차원을 넘어서 고용문제를 비롯해 정치적·사회적 파장까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학들은 학생 구성의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해 '인종'이 아닌 다른 대안적 요소를 적용하는 새로운 입시 제도를 마련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게 됐으나 벌써부터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비관론도 적지 않아 논란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 소수 인종 우대, 대학 입학서 어떻게 작동했나

하버드대와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를 상대로 각각 소송을 제기한 단체 '공정한 입학을 위한 학생들'(Students for Fair Admissions)은 하버드대가 흑인, 히스패닉 등 다른 소수인종 그룹을 우대하기 위해 아시아계를 의도적으로 차별했다고 주장해왔다.

또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는 백인과 아시아계 지원자를 차별했다는 논지를 펴왔다.

하지만 하버드대 측은 이런 주장을 부인하면서 인종은 신입생 선발 전형에서 검토하는 많은 여러 요소 중 하나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하버드대는 인종을 잠재적인 가점 또는 플러스 요소로 설명한다.

학생이 저소득 가정 출신인지 여부나 특별한 운동에 재능이 있는지 등에 따라 주는 다양한 가점과 비슷한 취지라는 것이다.

하버드대는 소송 과정에서 공개된 면접관용 안내문에서 "가점(tip)은 높은 수준의 장점이 있을 때만 적용된다. 위원회는 절대 일류 지원자를 희생시키면서 평균 수준의 지원자를 합격시키기 위해 충분한 가점을 주지 않는다"고 밝혔다.

다른 대학들 역시 소수인종 우대 정책을 비슷한 취지로 설명한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메릴랜드대의 경우 선발 전형에 수학능력시험(SAT) 점수와 내신 학업 성적, 지역사회 참여 등 26개의 검토 요소를 두고 있으며, 인종과 민족은 그중 2가지 요소다. 대학 측은 이런 요소들이 "유연하게 적용된다"고 설명한다.

과거 일부 대학에서 인종 비율을 쿼터로 정해 선발하는 경우가 있기도 했다.

하지만, 1978년 캘리포니아 데이비스대학(UC데이비스) 의대를 상대로 이 같은 제도의 부당함을 주장하는 학생의 소송이 제기돼 대법원이 이 학생의 손을 들어주면서 이후 쿼터제는 폐지됐다.

다만 당시에도 대법원은 인종이 '가산점 요인'은 될 수 있다고 판결해 이후에도 소수인종 우대정책이 유지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미국의 모든 대학에서 이런 정책을 적용해온 것은 아니다.

1996년 캘리포니아주를 시작으로 애리조나, 플로리다, 아이다호, 미시간, 네브래스카, 뉴햄프셔, 오클라호마, 워싱턴 등 9개 주는 주민투표에 의한 주 헌법 개정이나 법률, 행정명령 등을 통해 공립대의 소수인종 우대정책을 금지하고 있다.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 지지 시위하는 학생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 "특정 인종 우대는 차별"…대법원, 보수 우위 재편이 결정적 요인?

그동안 소수인종 우대정책이 부당하다며 이의를 제기하는 소송은 여러 차례 있었고, 대법원은 2003년과 2016년에도 하급심을 거쳐 올라온 사건을 심리한 뒤 이 판례에 문제가 없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지난 2016년 이후 대법원의 지형은 크게 달라졌다.

2016년 당시 합헌 결정 때 반대 의견을 낸 존 로버츠 대법원장, 클래런스 토머스, 새뮤얼 얼리토 등 3명의 대법관이 계속 대법원에 잔류한 데다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임명한 보수성향의 대법관 3명이 가세했다.

이에 따라 총 9명의 대법관 중 보수 성향의 대법관이 6명으로 확고한 다수가 됐고, 이런 대법원의 구성은 이번 판결에서 그대로 반영돼 판례가 뒤집히게 됐다.

대법원장인 존 로버츠 대법관은 다수 의견에서 "너무 오랫동안 대학들은 개인의 정체성을 가늠하는 기준으로 기술이나 학습 등이 아니라 피부색이라는 잘못된 결론을 내려왔다"면서 "우리 헌정사는 그런 선택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학생들은 인종이 아니라 개개인의 경험에 따라 대우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의 이런 판단은 미국 사회의 전반적인 여론과도 맞닿아 있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지난해 12월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수인종 우대정책을 알고 있는 미국 성인의 36%가 이 정책을 '좋은 것'이라고 답해 '나쁜 것'이라고 답한 비율(29%)보다 우세했다.

하지만 대학 입시에서 인종을 고려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82%가 '안 된다'고 답해 '고려해야 한다'고 답한 비율(17%)을 압도했다.

입시에 인종을 고려해서는 안 된다는 응답 비율은 인종별로 백인(84%)이 가장 높았으나, 히스패닉(81%), 아시아계(76%), 흑인(71%)도 만만치 않았다.

아시아계의 경우에는 53%가 소수인종 우대정책 자체에 대해서는 '좋은 것'이라고 봤으나, 대학 입시에 이를 반영해야 한다는 응답은 21%에 불과했다.

연방 대법원 방문한 사람들
[EPA=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 대학 인종 구성 달라질까…학업 성적 우수한 아시아계에 유리해지나

WP가 인용한 2020년 연방 데이터에 따르면 하버드대 학부생의 36%가 백인, 11%가 흑인 또는 아프리카계, 21%가 아시아계, 12%는 히스패닉 또는 히스패닉, 나머지 11%는 유학생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소수인종 우대정책이 사라지면서 대학의 인종 구성이 달라지는 것은 물론,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상당할 것이라고 교육계는 우려하고 있다.

전미대학입학상담협회 최고경영자 에인절 페레스는 "대학에 진학하는 유색인종 학생 수가 감소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며 "한 세대 전체를 놓치게 되는 것"이라고 뉴욕타임스(NYT)에 말했다.

실제로 캘리포니아주에서는 1996년 소수인종 우대정책이 금지된 뒤 2년 만에 명문대인 버클리대와 UCLA에서 흑인과 히스패닉 학생들의 입학이 절반으로 줄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미국 대학입학자격시험 SAT를 주관하는 칼리지보드에 따르면 지난해 1천200점 이상의 점수를 받은 학생 비율은 아시아계의 58%, 백인의 31%였으며, 히스패닉과 흑인은 각각 12%, 8% 비율로 훨씬 낮았다.

이런 데이터를 보면 그동안 성적이 좋아도 치열한 경쟁 속에 명문대 진학에 어려움을 겪었던 한인 등 아시아계 학생들에게는 진학 문이 조금 더 넓어지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그동안 주요 대학의 소수인종 우대정책이 사회 불평등을 일부 완화했던 효과는 사라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NYT가 스탠퍼드대 사회학자 숀 리어든 박사의 대략적인 추정치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미국 명문대 약 100곳이 인종을 고려한 입학제를 시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들 대학은 매년 그런 우대정책이 아니면 들어올 수 없는 1만∼1만5천명의 흑인·히스패닉 학생들에게 학위를 수여하고 있다. 이는 미국 4년제 대학 전체 학생의 약 1%에 해당하는 수치다.

리어든 박사는 "명문대를 졸업한 학생들이 사회·경제·정치적 결정에서 큰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 수는 적어도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말했다.

프린스턴과 예일대를 졸업하고 대법원 최초의 히스패닉계 대법관이 된 소니아 소토마요르는 자신을 "완벽한 소수인종 우대정책의 수혜자"라고 표현한 바 있다.

컬럼비아대와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자신이 "학창 시절에 의심할 여지 없이 소수인종 우대정책의 혜택을 받은 사람"이라고 밝혔었다.

조지타운대와 미시간주립대의 경제학자들이 2000년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1990년대 초까지 소수인종 우대정책은 의과대학의 흑인 비율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줬고, 이들이 졸업 후 흑인과 히스패닉 주민이 밀집한 지역에서 백인 의사들보다 더 많이 의료 활동을 하게 만들었다.

이런 측면을 고려해 대학들은 소수인종 우대정책이 금지된 뒤에도 인종·계층적 다양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꾸준히 모색해 왔다.

2006년 이미 소수인종 우대정책이 금지된 미시간대는 저소득층에 관심을 돌려 해당 지역에서 대학 진학 준비 과정을 제공하거나 전액 장학금을 지원해 저소득층 학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캘리포니아주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주립대에 진학할 수 있도록 주 전역의 각 고등학교에서 상위 9% 안에 들면 입학을 허가해주는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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