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년 한인 이민 발자취 곳곳에…생생한 흔적 간직한 하와이
120년 한인 이민 발자취 곳곳에…생생한 흔적 간직한 하와이
  • 홍현기
  • 승인 2022.12.23 16: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초 이민단 상륙한 부두…해외 첫 한인교회는 사랑방 역할

120년 한인 이민 발자취 곳곳에…생생한 흔적 간직한 하와이

최초 이민단 상륙한 부두…해외 첫 한인교회는 사랑방 역할

하와이 호놀룰루항 7번 부두. 왼쪽 사진은 한인 최초 이민단이 탑승했던 갤릭호.
[촬영 홍현기]

(호놀룰루=연합뉴스) 홍현기 기자 = 23일 하와이 호놀룰루항 7번 부두.

에메랄드빛 바다를 품은 'ㄷ'자 형태 부두는 한인 이민 120년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장소다.

120년 전인 1902년 12월 22일 인천 제물포에서 출발한 한인 최초 이민단은 바로 이곳에 도착했다.

이민단은 최초 121명으로 구성됐으나 경유지인 일본에서 신체검사에 합격한 102명만 미국 상선 갤릭호에 탑승했다.

이들은 20일쯤 뒤인 1903년 1월 13일에 하와이로 왔으나 이 중 17명은 질병으로 송환 당하고 86명만 최종 상륙한다.

배에서 내린 한인들은 하와이 사탕수수농장에서 본격적인 이민 생활을 시작했고 이곳을 기점으로 이민의 물결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김상열 한국이민사박물관 관장은 "현재 부두 형태는 1903년 당시와 비슷한 모습"이라며 "갤릭호를 타고 이곳에 들어온 한인들은 검역 절차를 거쳐서 하와이에 상륙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스도연합회 기념탑에는 최초 이민자의 이름이 적혀 있다
[촬영 홍현기]

하와이에는 이곳 항구 이외에도 한인 이민사의 흔적을 간직한 장소가 다수 남아 있다.

최초 한인 이민단이 도착한 1903년 설립된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는 해외 최초 한인교회이며, 지금도 현지 교민들의 교류 공간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곳에는 2003년 한인 이민 100주년을 기념해 인천에서 보낸 기념탑도 설치돼 이민의 역사를 반추해볼 수 있다. 최초 이민자들의 이름과 출신 지역이 적힌 조형물도 있다.

교회 신도들은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는 등 고국을 위한 활동에 열성적이었다고 한다.

이 교회 한의준 담임목사는 "하와이로 온 한인 최초 이민단 상당수는 교회 신도였다"며 "이들은 1903년 1월 하와이로 온 뒤 임시공간에서 예배하다가 11월에 교회를 공식 설립했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이승만 전 대통령이 자신을 따르는 교인들과 함께 설립한 한인기독교회는 1937년 건립 당시 모습을 상당 부분 유지하고 있다. 교회 건물은 광화문과 비슷한 형태로 지어졌으며 교회 외부에는 이승만 동상이 있다.

한인기독교회
[촬영 홍현기]

이와 함께 호놀룰루시 차이나타운에는 하와이 한인들의 통합단체인 한인합성협회의 회관이 있던 자리에 2층짜리 카페·재즈바 건물이 들어서 운영 중이다.

한인 이민이 시작된 지 4년만인 1907년 9월 2일 하와이 각지에 있는 24개 한인 단체 대표 30여명은 합동 발기인대회를 열고 통합단체를 만들었다.

한인합성협회 회관 터에 있는 건물
[촬영 홍현기]

오하우 공동묘지에는 호놀룰루 초기 이민자 수백명의 묘소가 있으며 묘비에는 출생·사망일과 이름·본적 등이 적혀있다.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인하공과대학(현 인하대학교) 설립에도 기여한 인물들의 묘비도 이곳에 있다.

김상열 관장은 "하와이 교민들은 한 달에 1달러 이상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냈다고 한다"며 "사탕수수농장에서 일한 성인 남성 1명의 월급이 보통 17달러였고 필수생활비를 빼면 3∼4달러 정도가 남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큰 액수"라고 설명했다.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인하대 설립에 기여한 것으로 알려진 민찬호의 묘지
[촬영 홍현기]

hong@yna.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