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이주 속 고려인 선조의 한, 그림으로 공유하고 싶었어요"
"강제 이주 속 고려인 선조의 한, 그림으로 공유하고 싶었어요"
  • 이상서
  • 승인 2022.08.2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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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 역사·우크라이나 전쟁' 주제 전시회 연 고교생 최 미카엘
"모국인 우크라이나 국민 응원하는 마음도 담아"
"유명 미술작가 되는 게 꿈…고려인 선조 희생 알리고 싶어"

"강제 이주 속 고려인 선조의 한, 그림으로 공유하고 싶었어요"

'고려인 역사·우크라이나 전쟁' 주제 전시회 연 고교생 최 미카엘

"모국인 우크라이나 국민 응원하는 마음도 담아"

"유명 미술작가 되는 게 꿈…고려인 선조 희생 알리고 싶어"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 = "우크라이나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께 들었던 고려인 선조의 애환과 희생을 그림으로 담아 우리 세대에도 알리고 싶었어요."

최근 고려인 강제 이주 등을 주제로 한 개인 미술전을 마친 우크라이나 고려인 동포 최 미카엘(19·충북예고 미술과 3학년) 군은 28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선조가 겪었던 애환과 삶의 모습 등을 캔버스에 담아 한국에도 전하려 했다"며 "동시에 올해 초 발발한 전쟁을 힘겹게 버티고 있는 우크라이나 국민을 응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첫 탐험 프로젝트'라는 주제를 걸고 11∼20일 충북 청주 '청년문화창작소 느티'에서 연 전시회에는 최 군이 그린 작품 10여 점이 전시됐다.

고려인 동포 최 미카엘 군이 그린 '고난의 길'
[최 미카엘 군 제공]

대표작인 '고난의 길'은 1930년대 한반도를 떠나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한 고려인 선조들의 이주 행렬과 일상 등을 화폭에 담았다.

"고국에서 어렸을 때부터 조부모님으로부터 강제 이주 시절 겪었던 사연을 자주, 세세히 들었어요. 저도 궁금해서 계속 물어보기도 했고요. 어느 순간 그때 모습을 머릿속으로 상상하게 되더라고요."

허름한 한복 차림 속에서 깨끗한 원색 옷을 입고 자는 아이가 눈에 띈다고 하자 그는 "당시 추위와 식량난 탓에 수많은 아이와 노약자들이 사망했다"며 "그 와중에도 아기는 우리 민족의 미래나 마찬가지니까 어른들이 희생을 치르더라도 반드시 아끼고 보살펴야 한다는 다짐을 담아낸 것"이라고 말했다.

그림을 통해 위로하려는 대상은 과거 선조만이 아니라 현재를 사는 우크라이나인도 포함됐다.

큼직한 해바라기가 그려진 '마법의 연주'가 그렇다.

고려인 동포 최 미카엘 군이 그린 '마법의 연주'
[최 미카엘 군 제공]

최 군은 "자유와 독립 등을 상징하는 해바라기는 우크라이나의 국화"라며 "즐거움과 희망, 평화 등의 의미도 담고 있다"고 했다.

해바라기는 러시아 침공 사태 후 지구촌에서 우크라이나 지지의 의미로 자주 등장한다.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에서 해바라기씨유를 가장 많이 수출하는 국가이기도 하다.

그림 속 파괴된 블라디미르 레닌 조각상은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기원하는 간절함을 담은 것이다. 맨 왼쪽에 그려 넣은 학은 우크라이나에서 가족과 집, 탄생 등을 의미하는 새라고 한다.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 중학생이던 2017년 한국으로 온 최 군에게 낯설기만 한 학교생활 적응에 도움을 준 것은 그림이었다.

중학교 시절 담임 교사는 우연히 최 군이 그린 그림을 보고 미술 분야로 진로를 정해 볼 것을 추천했다.

그는 "한국 정착 초반에는 언어가 서툴러 내 감정이나 의사를 친구들에게 표현하기 힘들었던 게 사실"이라며 "다행히 작품을 통해 내 마음을 그대로 전달하고 타인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초반에 서툰 한국어 때문에 친구 사귀기가 쉽지 않았겠다'고 묻자 그는 "성격유형 검사(MBTI)에서 ENTJ라 괜찮다"고 크게 웃었다.

이른바 '대담한 통솔자, 지도자형'이라 불리는 ENTJ는 열정적이고 자기주장이 강하면서 사회성이 발달한 게 특징이다.

실제로 전시회에는 최 군의 친구들을 비롯한 관람객 100여 명이 찾아 "대박 나라"고 응원을 보내줬다고 한다.

최 미카엘 군 전시회를 찾은 친구와 가족
[최 미카엘 군 제공]

"한국 사회 적응이 힘겨운 고려인 동포 청소년이 있다면 두 가지 조언을 해주고 싶어요. 잘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찾아라. 그리고 먼저 마음을 열고 친구들에게 다가갈 것!"

그는 "영원한 고통은 없듯이 고려인 선조들이 겪은 고난은 옛일이 됐다"며 "그런데도 이들의 한(恨)과 희생을 다음 세대에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언젠가 양국을 대표하는 미술작가가 돼서 선조들의 이야기가 100년 후든, 200년 후든 잊히지 않도록 전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첫 탐험 프로젝트'라는 주제로 전시회 연 최 미카엘 군.
[최 미카엘 군 제공]

shlamaz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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