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특별기여자 1년] ③난민 6천명 시대…"체계적 지원 필요"
[아프간특별기여자 1년] ③난민 6천명 시대…"체계적 지원 필요"
  • 이상서
  • 승인 2022.08.25 0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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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난민·아프간 기여자·우크라 피란민 등 다양한 난민 유입
"'제4차 외국인정책 기본계획'에 실질적인 난민 지원안 추가해야"
"체계적 지원 위해 정확한 실태 파악 우선" 지적도

[아프간특별기여자 1년] ③난민 6천명 시대…"체계적 지원 필요"

예멘 난민·아프간 기여자·우크라 피란민 등 다양한 난민 유입

"'제4차 외국인정책 기본계획'에 실질적인 난민 지원안 추가해야"

"체계적 지원 위해 정확한 실태 파악 우선" 지적도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 = "제대로 된 직업을 구하기도, 은행을 이용하기도 힘듭니다."

약 3년 전 한국에 입국해 최근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은 이집트 출신 30대 남성 A씨는 "평범하게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말했다.

'난민을 인정해주세요'
(서울=연합뉴스) 서대연 기자 = 21일 오후 한 어린이가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난민 신청자 보호 및 조속한 난민 심사 촉구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2022.8.21 dwise@yna.co.kr

모국에서 유명 법학대학을 졸업해 변호사로 일했던 그는 군사 쿠데타로 더는 일을 이어가지 못했다. 페인트 공장 등을 전전하며 생계를 꾸려가던 그는 날로 거세지는 정치적 박해 등을 피해 한국에 왔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삶도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A씨는 25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으면서 강제 퇴거나 불법체류자 전락 등에 대한 걱정은 다소 덜었다"면서도 "불안정한 체류 상황 탓에 우리 가족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인도적 체류 허가'는 난민 인정 사유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고문 등 비인도적 처우로 생명이나 자유 등을 위협받을 수 있다는 근거가 있을 때 내려진다.

'기타 비자'에 해당하는 이들은 1년에 한 번씩 체류 연장 심사를 받아야 한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기 힘들고, 육체노동이나 일용직만 가능하다. 의료보험 가입도 쉽지 않다.

만 8세 미만의 모든 아동은 월 10만원씩 아동수당이 지급되지만, 이들은 여기서도 제외된다.

인천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는 A씨는 "정규직으로 일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은행 계좌 개설이나 육아수당 신청 등 일상 곳곳에서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그는 "얼마 전에는 막내 아이도 태어나면서 자녀 3명과 아내를 책임지는 가장이 됐지만, 경제적인 안정을 이루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 난민인정자 3천700여명…특별기여자 등 더하면 6천명 넘어

서울출입국·외국인청 난민신청 접수처 입구
[연합뉴스 자료사진]

2018년 제주 예멘 난민과 지난해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올해 우크라이나 고려인 동포 피란민 등 국제법상 난민 정의에 부합되는 이들이 꾸준히 유입되고 있다.

이제 이들의 우리 사회 정착 방안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을 보면 "인종, 종교, 국적,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지만,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자를 난민이라고 한다"고 명시했다. 인도적 체류자, 특별기여자, 피란민 등 대부분이 난민의 정의에 부합한다는 의미다.

10년 전인 2012년 2월 10일 난민법 제정 등으로 한국 사회에 정착하는 난민은 꾸준히 늘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집계를 시작한 1994년부터 올해 7월까지 한국에서 정식으로 살 수 있는 권리를 받은 난민은 인도적 체류자 2천465명, 난민 인정자 1천246명 등 총 3천711명이다.

여기에 난민으로 분류되지 않은 아프간 특별기여자 390여 명을 비롯해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입국한 고려인 피란 동포 1천800여 명, 유엔난민기구(UNHCR)의 추천을 받아 들어온 재정착 난민 186명 등을 더하면 6천 명을 훌쩍 넘는다.

난민 심사장을 찾는 신청자들도 느는 추세다.

올해 1∼7월의 신규 난민 신청자는 4천843명이다. 지난해 전체(2천341명)보다 곱절 이상 많다. 심사 대기자도 1만2천508명에 달한다.

한 이민정책 전문가는 "코로나19 확산이 한풀 꺾이면서 국가 간 이동이 재개된 결과"라며 "당분간은 난민 신청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 "이젠 체계적인 난민 지원 방안 고민해야"

인권단체와 학계 전문가들은 난민 유입 절차 등을 고민하는 단계를 넘어서 앞으로 이들의 우리 사회 정착을 위한 중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관제체험 하는 아프간 특별기여자 자녀들
(서울=연합뉴스) 임헌정 기자 =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자녀들이 5월 24일 서울 강서구 국립항공박물관에서 관제체험을 하고 있다.

한국공항공사는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아프간 특별기여자 자녀를 김포공항에 초청해 체험행사를 개최했다. 2022.5.24 kane@yna.co.kr

이일 난민인권 변호사는 "난민들이 고국에서 쌓은 경력이나 학력을 한국에서는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게 문제"라며 "이들 중 상당수가 열악한 일자리나 적성에 맞지 않는 분야에 종사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능력을 검증할 최소한의 절차를 마련해 난민이 우리 산업의 적재적소에 투입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탈북민을 대상으로 한 직업 연계 제도 과정이라는 선례도 있지 않으냐"고 지적했다.

김태환 한국이민정책학회 명예회장은 "비슷한 처지에 놓인 탈북민과 달리, 난민은 소통이 힘들고 상대적으로 지원도 받지 못하는 탓에 이중고에 놓였다"고 분석했다.

이에 2023년 시작될 '제4차 외국인 정책 기본계획'에 난민 정착 방안을 추가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민정책연구원이 발간한 '난민 정착지원 개선을 위한 난민-북한 이탈 주민 정착 지원정책 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제1차 외국인 정책 기본계획에는 난민지원시설 설립, 2차에는 생계비 지원과 사회·교육 보장 등이 포함됐다.

3차에는 내국인의 난민에 대한 인식 개선을 비롯해 한국어·취업 교육을 통한 난민 정착지원 강화 등이 명시됐다. 하지만 실질적인 지원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연구진은 지적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장주영 연구위원은 "난민협약에 가입한 한국은 난민 보호 의무가 있다"며 "이들에 대한 정착 지원이 미비하다면 실질적으로 '보호'에 나섰다고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젠 부처 간 협력을 거쳐 '난민 정착을 위한 지원 제도 수립'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일 변호사도 "일정 기간 큰 사고 없이 한국에 사는 인도적 체류자에게 난민 인정자 수준으로 체류 조건을 변경해주는 내용을 '제4차 계획'에 담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 "난민에 대한 정확한 실태 파악 우선" 지적도

학계 일부에서는 난민 안착을 위해 정확한 집계와 실태 파악이 먼저라는 지적도 나온다.

첫 등교…꽃 받은 아프간 학생들
(울산=연합뉴스) 김용태 기자 = 울산시 동구에 정착한 아프가니스탄인 특별기여자들의 자녀 중 초등학생들이 3월 21일 오전 울산시 동구 서부초등학교로 등교해 환영식에서 받은 꽃을 손에 들고 있다.

김태환 명예회장은 "국내 난민이 어떻게, 어디서 살고 있는지 공식적인 연구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통계청의 이민 조사 실태에서도 난민 항목은 없다"고 지적했다.

백승훈 한국외대 중동연구소 전임연구원은 "난민과 유사한 상황에 놓인 탈북민의 경우 출생지와 최종 학력, 북한 내 경력, 결혼 여부 등에 대한 세부적인 실태 조사를 매년 진행하고 있다"며 "이에 비해 난민 관련 통계는 기초적인 수준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우리보다 앞서 난민 유입이라는 과제를 치른 독일, 영국 등 유럽 국가나 미국 등은 이러한 데이터베이스(DB)를 체계적으로 구축했다고 한다.

그는 "피란민, 난민, 특별기여자 등 제각각으로 나뉜 난민 기준을 다시 세워야 한다"며 "이는 이들을 감시하고 관리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현재를 짚고 미래를 예측하자는 취지"라고 강조했다.

shlamaz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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