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특별기여자 1년] ②"모국서 쌓은 경력 살릴 기회 줬으면"
[아프간특별기여자 1년] ②"모국서 쌓은 경력 살릴 기회 줬으면"
  • 이상서
  • 승인 2022.08.24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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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서 전문직이었지만…한국서 대부분 생산직으로 일해
부상 등에 제조업 종사자 3명 중 1명, 6개월 내 그만둬
"특별대우 바라는 것 아냐…전문지식·경험 활용할 기회라도 주길"

[아프간특별기여자 1년] ②"모국서 쌓은 경력 살릴 기회 줬으면"

아프간서 전문직이었지만…한국서 대부분 생산직으로 일해

부상 등에 제조업 종사자 3명 중 1명, 6개월 내 그만둬

"특별대우 바라는 것 아냐…전문지식·경험 활용할 기회라도 주길"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 = "그렇게 잘 지내고 있지 않습니다."

지난해 8월 탈레반 집권을 피해 한국 땅을 밟은 뒤 올 초 인천에 정착한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자마니 타예브(32) 씨는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전남 여수 해양경찰교육원을 퇴소해 본격적인 한국 생활을 앞두고 가졌던 지난 1월 인터뷰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아프간 아이의 눈에 비친 김포공항
(서울=연합뉴스) 임헌정 기자 =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의 한 자녀가 5월 24일 서울 강서구 한국공항공사 본사에서 활주로를 바라보는 모습이 눈에 비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당시 인천의 한 플라스틱 제조업체에 취직한 그는 "고향에서 원래 하던 일이 아니라 어렵고 힘들겠지만, 적응을 잘 마쳐서 좋은 직장 동료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때보다 우리말 발음이 매끄러워지고 한국어도 제법 유창해졌지만, 목소리는 한풀 꺾였고 한숨도 늘었다.

타예브 씨는 24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일을 그만둬서 그렇다"며 "5개월을 버티고 버티다가 어쩔 수 없이 그만둔 것"이라고 했다.

◇ 모국서 병원·공공기관 일했지만…한국서는 대부분 생산직 종사

울산서 정착 시작하는 아프간 특별기여자들
(울산=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인 특별기여자들 일부가 2월 7일 울산 동구에 도착했다. 이들은 현대중공업 옛 사택에 거주하며 현대중공업 협력업체에서 일하게 된다. [현대중공업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1년 전 한국에 온 아프간 특별기여자 중 상당수는 모국에서 쌓은 경력과 무관한 분야에 종사하는 탓에 우리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2012년부터 3년간 모국에 있는 한국직업훈련원에서 영어 교사로 근무한 타예브 씨는 특별기여자로 분류돼 지난해 8월 아내·자녀 3명과 한국에 왔다.

모국에서 교사와 정부기관 사무직 등으로 일했던 그에게 한국에서의 제조업 근무는 쉽지 않았다. 제품을 포장하고, 나르는 게 그의 업무였다. 2교대로 일했고, 하루 12시간이 넘게 일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는 "처음에는 '인내하고 배워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하루를 보냈다"며 "그러나 평생 하지 않던 일을 했던 탓에 좀처럼 적응하기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무리해서 일하다 허리를 다쳤고, 이후에도 참고 일하다 디스크 판정을 받았다"며 "부양할 가족이 있기에 마냥 쉴 순 없어서 재취업을 알아보고 있는데 쉽지 않다"고 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아프간 시절 직업을 가졌던 특별기여자 79명 가운데 37명(46.8%)이 바그람 한국병원에서 일했다. 의료진 28명, 행정지원 업무 9명이다.

아프간 시절 특별기여자 종사 직종
[제작 이상서]

이어 주아프간 한국 대사관 21명, 바그람 한국직업훈련원 14명, 우리 정부가 아프간 주민을 돕기 위해 운영한 지방재건팀(PRT) 6명,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 1명 등이다.

대부분이 의료진, 교사 등 전문직이나 행정직으로 종사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국내 연수원에서 퇴소한 직후인 지난 2월 기준으로 전문직에 취업한 이는 미국행 1명을 제외한 78명 중 단 한 명에 불과했다.

제조업과 조선업이 각각 43명과 29명으로, 합쳐서 전체의 92.3%를 차지했다.

더구나 이달 18일 기준으로 제조업 종사자 43명 중 32.6%(14명)가 퇴사한 것으로 집계됐다. 불과 반년 만에 3명 중 1명꼴로 일을 그만둔 것이다.

아프간 특별기여자 국내 취업 직종(8월 기준)
[제작 이상서]

타예브 씨의 아프간 직장 동료였던 허쉬미 낭얄라이(34) 씨는 한국에서도 그와 같은 회사에 다녔다. 비슷한 시기에 사표를 낸 것도 마찬가지다.

모국에서 통역원과 한국어 강사로 5년간 일했던 그는 "열심히 배워 성장하겠다는 첫 마음가짐은 여전하다"면서도 "생전 겪어보지 않았던 고강도의 노동을 버텨내는 게 쉽지 않았다"고 했다.

◇ "경력 살릴 방안·취업교육 프로그램 등으로 적응 도와야"

전문가들은 특별기여자들과 국내 이주노동자의 상황이 다르다며, 이들의 하소연을 단순히 '배부른 소리'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김도균 제주 한라대 특임교수는 "(아프간 특별기여자들이) 10년 넘게 하던 업무와 상반된 직종에 급하게 투입되면서 벌어진 일"이라고 분석했다.

'수많은 이주노동자가 생산직에 이미 종사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특별기여자와 기존 외국인 근로자를 단순히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외국인 근로자의 경우 모국에서 제조업이나 생산직 등 관련 직종에서 종사했고, 일정 수준의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이들이 고용노동부의 심사를 거쳐 선발된다.

농어촌에 주로 종사하는 계절근로자 역시 국내 지자체의 사전 교육 등을 거쳐 채용된다. 이후 모국과 한국에서 국내 노동법과 직업 훈련 등 근로자로서 필요한 교육을 받는다.

김 교수는 "본인이 의지를 갖고 정식 과정을 밟아 근로 현장에 투입된 게 이주노동자"라며 "(전쟁이 발발해) 급하게 모국을 떠날 수밖에 없던 특별기여자 등 난민들이 이들에 비해 적응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그는 "특별기여자들이 절박한 처지에 놓였다고 해서 평생 안 하던 일을 무리 없이 하기란 힘들다"며 "경력을 살릴 방안을 찾거나, 교육을 통해 본인이 희망하는 분야에 종사할 수 있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 "특별 대우 바라는 게 아냐…경력 살릴 기회라도 주길"

의료기기업체서 연구원으로 일하는 사피울라 사헤비 씨
치과용 엑스레이 의료기기 업체인 '바텍'에서 근무하는 사피울라 사헤비 씨. [바텍 제공]

특별기여자들은 '특별 대우'를 바라는 게 아니라 경력을 살릴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라도 달라고 호소한다.

세이브더칠드런 아프간 사무소에서 일하던 경력을 살려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에서 일하는 누룰라 사데키(33) 씨는 "모국에서 의대와 약대를 졸업해 10∼15년 의료계에 종사한 베테랑이 많다"며 "동료 대부분이 한국에서 이런 경력을 살릴 수 없다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고 했다.

그는 "여기서도 반드시 의사로 일하게 해달라는 의미는 아니다"며 "병원에서 국내 의료진을 도와 일할 기회라도 달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울산의 한 조선소에서 일하는 아브 파힘(40) 씨도 "이제까지 한국 정부에서 많은 도움을 받아왔다"며 "그럼에도 난생처음 하던 일이라 영 익숙하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했다.

모국에서 13년간 어린이 병원에서 의사로 근무했던 그는 "한국에서도 똑같은 일을 고집하는 게 아니다"며 "의사가 아니더라도 내가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 한국 의학 용어를 공부하고, 관련 직업 훈련도 열심히 받을 준비가 됐다"며 "한국과 한국 병원에 도움이 될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실제로 특별기여자의 경력을 높이 사 채용한 국내 기업 관계자는 "충분히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아프간에서 14년간 치과 전문의로 근무한 사피울라 사헤비 씨를 연구원으로 채용한 치과용 엑스레이 의료기기 업체인 '바텍'이 대표적이다.

허지선 바텍 팀장은 "두바이에 회사 법인이 있고 수출 비중이 크기 때문에 중동 지역 언어에 능통하고, 문화에 익숙한 인재가 필요했다"며 "단순히 인도적인 측면에서 고용한 것은 아니다"고 했다.

그는 "약 6개월을 함께 일한 결과, 분명 회사에 큰 도움이 되는 글로벌 인재가 맞다는 확신이 섰다"며 "앞으로도 특별기여자든, 난민이든, 전문성을 갖춘 이들을 적극적으로 고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shlamaz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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