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발생한 이주노동자 사망 사고…산재 방지 대책 없을까
또 발생한 이주노동자 사망 사고…산재 방지 대책 없을까
  • 이상서
  • 승인 2022.08.0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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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강릉 '흠뻑쇼' 무대 철거 중 몽골 출신 노동자 사망
중대 재해로 사망한 이주노동자, 전체 사망자의 11.2% 달해
"불법체류 여부 상관없이 이주노동자 안전 보장책 마련해야"

또 발생한 이주노동자 사망 사고…산재 방지 대책 없을까

지난달 강릉 '흠뻑쇼' 무대 철거 중 몽골 출신 노동자 사망

중대 재해로 사망한 이주노동자, 전체 사망자의 11.2% 달해

"불법체류 여부 상관없이 이주노동자 안전 보장책 마련해야"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 = "안전교육을 받았지만 잘 알아듣지를 못했어요."

지난 4일 서울 한 대학가 근처의 건설 현장에서 만난 아프리카 출신 A씨는 30도가 넘는 무더위 속에서 땀을 닦으며 이렇게 말했다. 다음 달이 대학교 개강이라 이번 달 안에 공사를 마쳐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쉴 틈 없이 일하고 있다고 했다.

약 3년 전 한국에 처음 왔다고 밝힌 그는 "현장에 투입되기 전에 주의사항 등을 들었지만 아직 한국말이 서툰 탓에 제대로 이해하진 못했다"며 "높은 곳에 오르거나, 무거운 벽돌을 나를 때, 외벽 등을 철거할 때 등 위험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 "중대재해 사망자 중 11%가 외국인"

올림픽주경기장 '흠뻑'
지난달 1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가수 싸이의 콘서트 '싸이흠뻑쇼 2022'에서 관객들이 물줄기를 맞으며 공연을 즐기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달 31일 강원 강릉종합운동장에서 가수 싸이의 '흠뻑쇼' 공연 무대를 철거하던 몽골 출신 B(27) 씨가 15m 아래로 떨어져 숨진 사고가 발생하면서, 이주노동자들의 산재사고를 방지할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시민인권단체 강릉시민행동 관계자는 "당시 비가 오는 궂은 날씨 속에 위험한 철거 작업을 강행해 이번 사고가 발생한 것"이라며 "안전 규정에 대한 지도, 관리, 감독 준수 여부에 대한 수사기관의 철저한 조사와 규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정의당 강은미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중대재해 분석 결과' 자료에 따르면 2021년 한 해 동안 발생한 중대재해 사망자 668명 중 이주노동자는 75명으로 11.2%를 차지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국내 전체 임금 근로자(2천99만2천여 명) 가운데 외국인(81만1천여 명)의 비중이 3.8%인 것을 고려하면, 이주노동자의 사망자 비율이 내국인보다 3배가량 높은 셈이다.

하지만 2020년 외국인 임금근로자의 고용보험과 산재보험 가입률은 각각 54.3%, 68.1%에 그쳤다.

이는 전체 근로자의 고용보험(90.3%)과 산재보험(97.8%) 가입률보다 훨씬 낮은 수치다.

◇ 열악한 노동환경의 이주노동자…"체류 상태 상관없이 보호책 마련해야"

물밀듯 들어오는 외국인 근로자들...이달 1만명 예상
(영종도=연합뉴스) 김주성 기자 = 코로나19로 주춤하던 외국인 근로자(E-9·고용허가제)의 입국이 늘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7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 외국인 근로자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노동계에서는 이처럼 이주노동자의 산업재해 사고가 잇따르는 이유로 이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과 함께 법적인 보호 장치 미비 등을 꼽는다.

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 관계자는 "내국인이 기피하는 3D(더럽고, 어렵고, 힘든) 업종에 종사하는 만큼 고위험에 놓인 외국인 노동자가 많은 게 사실"이라며 "그러나 여전히 제대로 된 안전 교육을 받지 않고 투입되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다단계 하청 구조 탓에 사고가 나도 책임 소재를 묻기도 애매한 경우가 많다"고 비판했다.

시민단체와 노동단체 등에 따르면 일반연수(D-4) 비자를 받아 입국한 B씨 역시 당시 10명 안팎의 소규모 철거 하청업체 소속으로 제대로 된 안전 장비를 갖추지 않은 채 작업을 하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등록(불법체류) 신분의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보호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크다.

김도균 제주 한라대 특임교수는 "사업장 이동 제한 등의 문제점을 안고 있는 '고용허가제'의 경우 그나마 법의 테두리 안에서 운영되고, 정부가 관할하기에 최소한의 안전과 구제책 등을 담보할 수 있다"며 "불법체류자는 그렇지 못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은 강제 퇴거를 두려워해 임금 체불 등 부당한 일을 겪어도 신고하기가 어려울뿐더러, 열악한 노동 환경에 대한 개선 등을 요구하기가 힘들다"고 지적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국내 불법체류자는 39만4천여 명이다. 지난해 12월 38만8천여 명 이후 6개월 연속 증가했다.

총 체류 외국인 가운데 불법체류 외국인의 비율을 뜻하는 '불법 체류율'도 올 초 사상 처음으로 20%를 기록했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 5명 중 1명은 체류자격 없이 거주한다는 의미다.

노무법인 참터의 박혜영 노무사는 "건설 현장이나 농어촌 등 미등록(불법체류) 외국인이 없으면 운영이 힘든 분야가 부지기수"라며 "체류 상태와 상관없이 모든 이주노동자가 노동 환경에서 겪는 부당함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이들의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주노동자 차별 금지 촉구하는 참석자들
이주노동자평등연대 관계자와 이주노동자들이 지난해 11월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전태일다리에서 열린 전태일 열사 51주기 기자회견에서 차별 금지와 인권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shlamaz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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