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 속 탕웨이처럼…중국동포 간병인 20만명
'헤어질 결심' 속 탕웨이처럼…중국동포 간병인 20만명
  • 이상서
  • 승인 2022.07.17 08: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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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격무 탓 내국인은 기피…"간병인 중 90%는 중국동포"
저출산·고령화 영향에 간병인 수요 커져…2026년엔 30만명 넘을듯
"한 달 내내 일해도 월급 많지 않아"…근로환경 개선 호소

'헤어질 결심' 속 탕웨이처럼…중국동포 간병인 20만명

박봉·격무 탓 내국인은 기피…"간병인 중 90%는 중국동포"

저출산·고령화 영향에 간병인 수요 커져…2026년엔 30만명 넘을듯

"한 달 내내 일해도 월급 많지 않아"…근로환경 개선 호소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 = "24시간"

15년째 간병인으로 일하는 중국동포 임모(64) 씨에게 하루 근무 시간을 묻자 돌아온 답이다.

20여 년 전 방문취업(H-2) 비자를 받아 한국에 온 임 씨는 식당 주방 보조와 건물 청소원 등 여러 일을 거친 후 2007년부터 서울에서 간병인으로 일하고 있다.

요양병원이나 가정집에서 거동이 불편한 환자나 노인 등을 위해 식사나 목욕 준비, 대소변 수발, 산책 동행 등 일상생활을 보조한다. 환자와 온종일 함께하면서 밥도 같이 먹고, 환자가 잠에서 깨면 같이 깬다.

한창 바쁠 때는 1년에 환자 100명을 맡았을 때도 있었으니, 이제까지 1천 명은 족히 돌봤을 것이라고 한다.

임 씨는 "행여나 환자가 자해하거나 다치면 간병인에게 책임을 물으니까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며 "치매 노인 등 예민한 환자가 화풀이하는 경우도 많아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하루를 온전히 다 일해야 하니 업무 강도가 높은 데다 박봉인 탓에 한국인은 점차 줄어들면서 그 자리를 나 같은 중국동포가 채운다"며 "특히 고령 여성이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 "힘들고 박봉"…내국인 기피한 간병인, 90%는 중국인

영화 '헤어질 결심' 속 탕웨이
[CJ ENM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최근 개봉한 '헤어질 결심'에서 주인공 송서래(탕웨이)는 중국인 출신의 간병인으로 나온다. 임 씨와 마찬가지로 가정집으로 출근해 돌봄이 필요한 치매 노인 등의 생활을 돕고 병시중을 든다.

업계에서는 해당 직종 종사자의 대다수가 중국동포 출신으로 채워지고 있다고 본다.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펴낸 '가사돌봄 시장의 인력수급 현황 분석 및 외국인력 고용 등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간병인 종사자는 2017년 16만 명에서 2018년 23만6천 명, 2021년 27만 명으로 매년 늘고 있다.

개인이 직접 고용한 경우가 많고 공식 집계가 없는 탓에 정확한 현황은 알기 힘들지만, 현장에서는 간병인 종사자의 대부분은 중국동포인 것으로 본다.

국내 간병인 종사자 현황(단위:만 명). [고용노동부 제공]

해당 연구 책임자인 강정향 숙명여대 정책대학원 객원교수는 "의료업계 의견을 종합하면 현재 간병인의 90% 이상은 외국인"이라며 "이 중 대부분이 중국동포이고, 나머지는 고려인 동포로 본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힘들고 박봉인 데다 하루를 온전히 환자를 위해 써야 하니, 내국인이 간병 업무를 기피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중국동포 간병인은 다른 외국인에 비해 한국어 구사 능력이 좋기 때문에 환자 가족도 선호한다"며 "간병인 자격 조건이 까다롭지 않고 진입장벽도 낮아서 중국동포들이 몰려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간병인 구인·구직 사이트에 소개된 간병인들. 대부분이 교포 출신이다. [홈페이지 캡처]

실제로 유명 간병인 구직사이트 두 곳에 등록된 간병인을 분석한 결과, 80% 이상이 중국동포를 중심으로 한 외국인이었다.

김태환 한국이민정책학회 명예회장은 "중국 등 외국 국적 동포들이 제조업이나 일용직 등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한 방문취업(H-2) 비자 소지자를 중심으로 60세 이상의 고령 여성 동포들이 간병인으로 종사하고 있다"며 "최소한 20만 명은 넘을 것"이라고 밝혔다.

◇ 돌봄 서비스 수요 느는데…간병인 처우 개선 목소리

저출산·고령화 현상과 1인 가구 증가 등으로 간병인 분야의 수요는 앞으로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의 '지역별 고용조사에 기반한 한국고용정보원의 중장기 고용예측' 분석에 따르면 2026년께 간병인 취업자는 5년 전보다 약 20% 증가한 3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됐다.

이 때문에 해당 분야의 인력난을 우려해 외국인 채용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강정향 교수는 "돌봄 분야 인력 확보를 위해 한국에 체류 중인 재외동포(F-4)와 영주권자(F-5), 결혼이민자(F-6) 등을 활용하는 것이 실효성이 있다고 본다"며 "동시에 고용허가제(E-9) 외국인의 취업 범위에 간병 분야를 포함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화 '헤어질 결심' 속 탕웨이
[CJ ENM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한편으로는 이들이 지속해서 일할 수 있도록 근로환경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2006년부터 간병인으로 일하는 중국동포 A씨는 "환자를 돌보느라 한 달 가까이 집에 가지 못한 적도 있었고, 한 달에 고작 2∼3일 쉬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는 "일은 고되지만, 처우가 너무 열악했다"며 "서울에서는 월 250만∼270만원, 지방에서는 200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았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가 지난달부터 가사근로자도 4대 사회보험에 가입하고 최저임금 이상의 급여를 받도록 하는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가사근로자법)'을 시행했지만, 상당수 외국인 간병인은 여기에서도 외면받을 가능성이 높다.

노동부 관계자는 "법안은 가사서비스 제공 기관을 통해 병원이나 요양원 등에서 일하는 상황에 해당하는 것"이라며 "고용기관이 아닌 개인 간 계약을 통해 가정에서 일하는 간병인은 상관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외국인 간병인 중 상당수를 차지하는 방문취업(H-2) 외국인의 경우 병원 등 의료 기관에서 근무할 수 없는 게 원칙"이라며 "개인에게 고용돼 개인 간병만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법무부 관계자도 "간병인으로 일하는 외국인이 늘고, 이 분야의 수요도 커지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며 "이러한 변화를 둘러싼 다양한 과제가 나오는 만큼,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의료업계에서는 간병인을 두고 '가장 낮은 곳에서 일하지만, 가장 필요한 존재'라고 칭한다.

경기 북부 지역의 한 종합병원에서 일하는 10년 차 간호사 이모 씨는 "환자의 바로 옆에서 항상 지켜보는 이들이 바로 간병인"이라며 "이들 덕분에 의료진도 환자의 이상 징후를 빨리 발견하고 초동대처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문성이 요구되지 않고 허드렛일이라는 인식 탓에 간병인에 대한 사회적 시건이 좋진 않지만, 환자에게는 가족만큼이나 소중한 존재"라고 강조했다.

영화 '헤어질 결심'
[CJ ENM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shlamaz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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