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무장투쟁 이끈 김경천 장군 증손녀 "한국은 또 하나의 조국"
항일무장투쟁 이끈 김경천 장군 증손녀 "한국은 또 하나의 조국"
  • 강성철
  • 승인 2022.06.01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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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리나 필랸스카야 "한국 정부 서훈으로 잊었던 자긍심 되찾아"
"독립운동사, 이념·사상과 별개로 기록해야…젊은 세대에 알리는 일 중요"

항일무장투쟁 이끈 김경천 장군 증손녀 "한국은 또 하나의 조국"

갈리나 필랸스카야 "한국 정부 서훈으로 잊었던 자긍심 되찾아"

"독립운동사, 이념·사상과 별개로 기록해야…젊은 세대에 알리는 일 중요"

김경천 장군 손녀 갈리나 필랸스카야
시베리아서 항일무장투쟁을 이끈 김경천 장군의 손녀 갈리나 필랸스카야 씨가 김 장군이 남긴 '경천아일록' 러시아 번역본을 보여주고 있다. [강성철 촬영]

(서울=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독립운동에 헌신한 조부에게 한국 정부가 훈장을 수여해 준다며 연락이 왔을 때 가족들이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죠. 잊었던 자긍심도 되찾아 한국은 제게 또 하나의 조국이 됐습니다."

일제 강점기 러시아 시베리아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벌여 수많은 전과를 올렸던 김경천 장군의 손녀인 갈리나 필랸스카야(59) 씨는 1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념이나 사상을 떠나 독립운동에 헌신한 역사를 오롯이 인정하고 기록하는 일이야말로 역사 바로 세우기"라고 강조했다.

모스크바에서 의대를 나와 병원 의사로 근무하다 은퇴하고 러시아 독립유공자후손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인 그는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 참석차 방한했다.

2015년 한국 국적도 취득한 그는 "선조가 꿈에 그리던 한국은 마음의 고향 같아 늘 푸근함을 느낀다"며 "며칠 전 조부의 집터가 있던 서울 종로 사직동의 기념 비석을 방문했는데 뜨거운 마음이 치솟아 울컥했다"고 했다.

함경북도 북청에서 태어난 김 장군은 부친이 대한제국의 포병 보급부대장을 지낸 무관 집안의 후손이다.

군인의 길을 걷던 형들을 따라 1911년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기병 장교로 복무하며 망국의 한을 품고 살았던 그는 1919년 도쿄 유학생들의 '2·8 독립선언'에 영향을 받아 만주로 가 독립 전쟁에 뛰어들었다.

1920년 만주 봉천에 세운 항일독립군 장교 양성소인 신흥무관학교에서 교관으로 활동하다가 연해주로 옮겨 항일무장 부대를 결성해 이끌면서 수많은 전투를 치렀다.

백마를 타고 600명에 달하는 기병부대를 이끌며 수백 명의 일본군을 사살하는 등의 전과를 올렸다. 중국 마적단과도 싸웠으며, 러시아의 적군과 연합해 일본군의 지원으로 활동하는 백군을 상대로 전공을 세우기도 했다. 당시 일본군 사령부는 '김경천 부대를 만나면 싸우지 말고 피해도 된다'는 지령을 내릴 정도로 그 용맹함을 인정받았다.

학계에서는 북한 김일성 주석이 김 장군의 항일투쟁 경력과 이미지를 도용했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됐다. 김 장군은 레닌 사망 후 집권한 스탈린에 의해 정치범으로 몰린 뒤 강제수용소에서 노역에 시달리다가 1942년 숨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8년 그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필랸스카야 씨는 "한때 공산당원으로 활동한 조부가 어떤 이념과 사상을 갖고 있었는지보다, 그가 어떻게 일본군과 싸워왔는지, 얼마나 독립을 열망했는지를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조부가 독립운동 당시 극동지방 열차에서 추적하던 일본인 스파이를 따돌렸던 일, 일제에 잡혀가 고문을 당하면서도 조부의 행방을 말하지 않았던 조모의 이야기 등을 듣고 자랐다"며 "그런 일들이 책이나 설화에나 나올 법한 일이라 어려서는 남들이 믿어줄까 싶었는데, 모국에서 서훈하고 역사를 조명해줘 이제는 어깨를 펴고 산다"고 말했다.

이어 "부모로부터 조부가 평소 '태산이나 대양에 비하면 나는 미약하나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라면 나의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신념을 갖고 살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광복 후 독립된 조국을 보지 못했지만, 오늘의 대한민국을 보면 크게 기뻐하실 것"이라고 했다.

러시아에 거주하는 고려인 중에는 국회의원, 대기업 회장 등 주류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고려인도 많다고 한다. 갈리나 씨는 이들이 한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도록 모국이 도와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고려인은 러시아와 한국 간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존재"라며 "모국 정부의 독립운동가 발굴·서훈 사업은 이들에게 뿌리를 알게 해주는 일"이라고 했다.

김 장군의 유해를 찾지 못한 것이 후손으로서 죄송하고 안타깝다는 그는 "잊힌 독립운동가를 발굴하고 이들의 역사를 후대의 젊은 세대에 알리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며 "독립유공자후손협회와 각지의 고려인협회가 협력해 역사를 복원하는 일에 여생을 바치겠다"고 밝혔다.

wakar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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