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대역 '촛불하나' 버스킹 이방인 "중요한 것은 지금 이순간"
교대역 '촛불하나' 버스킹 이방인 "중요한 것은 지금 이순간"
  • 이상서
  • 승인 2020.10.02 0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은 내게 베이스캠프"…안코드 아베 자카렐리 인터뷰

교대역 '촛불하나' 버스킹 이방인 "중요한 것은 지금 이순간"

"한국은 내게 베이스캠프"…안코드 아베 자카렐리 인터뷰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 =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묻지 말아 주세요. 그게 중요한가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더 중요하죠."

영국에서 태어났지만 곧바로 일본인 부모에게 입양됐다. 영국과 일본, 이탈리아, 이스라엘, 한국 등 5개국에서 성인이 되기 전까지 각 3∼6년 살았다. 덕분에 해당 국가의 언어도 모두 능통하게 구사할 수 있다. 한국은 일본인 누나를 따라 12살 때 처음 찾았다.

이후 남아프리카공화국과 태국, 포르투갈 등 수십개국에서 길거리 공연으로 생활비를 벌면서 배낭여행을 다녔다.

공연 중인 안코드 씨
[본인 제공]

20대 중반에 다시 찾은 한국에서 드라마 같은 일이 일어났다.

여느 때처럼 버스킹을 이어가던 2014년 7월. 교대역에서 그가 노래한 아이돌그룹 지오디(god)의 '촛불 하나'를 본 관람객이 유튜브에 올리면서 일약 유명인이 됐다. 해당 영상은 400만뷰에 가까운 조회수를 올렸다.

주인공인 안코드 아베 자카렐리(31) 씨는 2일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나에게 최고의 순간은 언제나 '바로 지금'"이라며 "과거를 후회하거나 미래를 걱정하는 일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아나요? 유럽과 동남아시아를 떠돌던 시절에 배를 곯고 바닷가에서 추위에 떨며 노숙하던 저였는데, 현재 한국에서 라디오 디제이(DJ)도 하고 방송에도 나오고 있잖아요. 놀라운 점은 이 모든 게 계획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죠."

안코드 씨는 5월부터 TBS라디오에서 매일 아침 음악 방송을 맡아 진행하고 있다.

10여년 전에 이탈리아의 한 호텔에서 일했던 이후 처음으로 고정 수입이 생긴 것이다.

그는 "편안함과 안정성은 내 삶에 매력적인 요소는 아니다"라며 "스스로 자극을 주고 안주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화제에 오른 안코드의 교대역 버스킹 영상
[유튜브 캡처]

"지금이 싫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지금은 지금대로 좋고, 노숙을 하면서 배를 곯을 때도 나름대로 행복했어요. 상황이 나쁘다고 누군가를 원망해 본 적도 없고요."

국적이 어디냐고 묻자 "그 질문은 제발 그만!"이라고 했다.

"여권상의 국적은 영국이죠. 그런데 정체성을 묻는 것이라면 저에게는 무의미한 질문이에요. 제가 백인이라는 사실을 8살이 지나서야 깨달았어요. 태어나고 자란 곳은 영국이지만 가족을 포함해서 주변 사람 대부분이 동양인이었으니까요. 어느새 국적이나 국가, 인종 등의 개념이 없어진 것 같아요. 대신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집중하기로 했죠."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등 여러 나라를 다닌 그에게도 한국은 소중하다. 가장 오래 머문 나라이고, 그만큼 좋은 추억도 많이 만들었다.

여기서 벌여놓은 일도 어느새 제법 많아졌다. 공연과 앨범 작업, 기타 연습, 믹싱 엔지니어링, 최근에는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고 있다.

그는 "한국은 나에게 베이스캠프와 같은 곳"이라며 "얼마 전에는 '유서를 썼는데 안코드 씨 공연을 보고 다시 살아볼 마음이 생겼다'는 팬도 만날 정도로 소중한 사람도 많이 생겼다"고 말했다.

"서울 홍제천에 가서 구름도 보고, 바람과 햇살을 느낄 때면 이만한 행복이 없어요. 그런데 비교하는 문화가 너무 많은 게 안타까워요. 나와 타인을 비교하고, 내 현재를 과거와 비교하고…. 비교하지 않으면 덜 불행해질 텐데 말이죠."

공연 중인 안코드
[본인 제공]

'촛불 하나'는 한국 노래 중에 '최애(가장 사랑하는)' 곡이다. 가사도 긍정적이고 대중의 호응을 유도하기도 쉬워 '떼창'으로도 곧잘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는 "어둠 속에서 촛불 하나만 있으면 길이 보이지 않느냐"며 "아무리 나쁜 상황에 부닥쳤더라도 누구나 가슴 속에는 꺼지지 않는 빛이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다가올 미래 걱정보다는 하루하루에 집중해서 살아보면 어떨까요? 눈앞에 나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일이 수백 가지인데 아무 것도 안 한 거나 우울한 생각에 빠져있으면 시간이 너무 아깝잖아요."

shlamazel@yna.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