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가정 부모-자식 생이별하게 만든 제도. 개선 시급"
"다문화 가정 부모-자식 생이별하게 만든 제도. 개선 시급"
  • 이상서
  • 승인 2020.08.2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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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부모 결혼이주민 체류 자격' 개선 진정서 낸 소라미 서울대 로스쿨 교수 인터뷰

"다문화 가정 부모-자식 생이별하게 만든 제도. 개선 시급"

'한부모 결혼이주민 체류 자격' 개선 진정서 낸 소라미 서울대 로스쿨 교수 인터뷰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 = "배우자 없이 홀로 어린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있습니다. 이 가족은 시한부의 삶입니다. 자식이 커서 성년이 되면 부모는 어쩔 수 없이 한국을 떠나야 하기 때문이죠. 단지 결혼 이주민이라는 이유만으로요."

소라미(47·사법연수원 33기)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임상교수는 최근 '한부모 결혼이주민 체류 자격'의 개선을 요청하는 진정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했다. 지난 학기 진행한 임상법학 강의 중 하나인 '여성아동인권클리닉'을 수강했던 제자 7명도 뜻을 모았다.

소라미 서울대 로스쿨 교수 [서울대 공익법률센터 제공]

소 교수는 25일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현행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한부모 결혼 이주민은 자녀가 성년인 만 19세가 되면 더는 체류 자격을 얻지 못하고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당사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부모-자식의 고리를 끊는 잔인한 현실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004년부터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변호사로 일하면서 결혼 이주 여성의 인권 문제와 처음 관계를 맺었어요. 그 사이 국내 체류하는 외국인은 250만명을 넘어섰고 다문화 가정은 30만 가구에 이를 정도로 이들은 우리 사회의 어엿한 구성원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현실은 이렇게 달라지고 있지만 관련된 법과 행정은 늘 한발 늦게 따라가는 것 같습니다."

15년이 넘게 현장에서 수많은 소수자의 목소리를 듣고 대변하던 그는 지난해 3월부터 서울대 로스쿨에 부임해 사회적 약자의 인권 보호를 주제로 임상법학을 가르치고 있다.

얼마 전 한 이주여성단체로부터 전해 들은 한 이주 여성의 사연은 소 교수가 그간 접했던 다른 이야기보다도 더 안타깝게 다가왔다.

한국인 남편과 이혼한 뒤 홀로 가정을 이끌어 가던 필리핀 출신 여성이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딸과 생이별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는 것.

결혼 이민 비자(F-6)를 받고 입국한 이 여성은 딸이 성인이 됐다는 이유로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로부터 더이상 체류 기간 연장이 불가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소 교수는 "국가는 헌법과 국제 인권 규약에 따라 부모와 자녀가 함께 살 권리인 '가족결합권'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며 "게다가 헌법 제10조에서 규정한 '행복추구권'은 한국 국적자만이 아닌 '모든 인간의 권리'"라고 주장했다.

그는 "제도를 만들 당시에는 편법으로 국내에 체류하는 일을 막기 위해 이 같은 제약을 둔 것"이라며 "그러나 이제는 손을 봐야 할 시기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더 큰 문제는 이처럼 불안정한 체류 조건 탓에 결혼 이주민이 가정 폭력을 당했더라도 침묵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이혼 귀책 사유가 본인에게 없다는 점을 스스로 입증하지 못하면 모국으로 돌아가야만 하고, 국내에 머물 수 있게 됐더라도 편견 어린 주변 시선에 시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소 교수는 "이주민 관련 정책에서 당사자의 목소리가 얼마나 반영이 됐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법조인을 꿈꾸는 지망생이라면 법전만 펴볼 게 아니라 현장에서 사회적 약자를 직접 만나고 느껴봐야 '인권 감수성'을 가질 수 있다"며 "지금처럼 학생들에게 실제 사건을 다룰 기회를 주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학생들은 교실 밖에서 마주한 법의 모습이 새롭다는 반응이다.

소 교수와 함께 진정서를 작성한 제자 중 한 명인 석재아(25) 씨는 "나를 포함한 수강생 대부분이 관련 정책에 이와 같은 불합리한 부분이 존재하는지 알지 못했다"며 "우리의 노력이 결혼 이주민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소라미 서울대 로스쿨 교수 [서울대 공익법률센터 제공]

소 교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거세지고 있는 외국인 혐오 여론을 경고했다.

"더는 다문화 가정을 사회적 소수자로 보면 안 된다는 의견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역차별 얘기도 나오고요. 그러나 소수자란 단순히 인원수만으로 정의 내리는 것은 아니죠. 그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우리 사회에 반영이 되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이들은 방역 사각지대에 놓이기도 했고, 재난지원금 등 복지 정책에서도 내국인에 비해 외면받았죠. 아직은 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shlamaz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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