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엄마가 쓰던 브랜드' 잡자"…유럽 빌트인 공략 나선 삼성
[르포] "'엄마가 쓰던 브랜드' 잡자"…유럽 빌트인 공략 나선 삼성
  • 장하나
  • 승인 2024.04.2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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伊 밀라노 빌트인 가전 유통 현장 둘러보니…빌트인 비중 큰 대신 보수적
삼성전자, 현지 주방가구 브랜드 톱5와 협업 구축…에너지 절감 선제 대응

[르포] "'엄마가 쓰던 브랜드' 잡자"…유럽 빌트인 공략 나선 삼성

伊 밀라노 빌트인 가전 유통 현장 둘러보니…빌트인 비중 큰 대신 보수적

삼성전자, 현지 주방가구 브랜드 톱5와 협업 구축…에너지 절감 선제 대응

(밀라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유럽 가전 시장은 굉장히 보수적입니다. 엄마와 할머니가 예전부터 쓰던 보쉬와 밀레 등의 전통 브랜드를 자녀도 그대로 사서 쓰는 식이었어요. 최근에는 달라지고 있습니다. 젊은 층 선호도가 높은 삼성이 품질 경쟁력과 디자인을 내세워 성공적으로 진입했죠."

삼성전자가 '가전 제품의 발상지'이자 보수적인 유럽 빌트인 가전 시장에 인공지능(AI) 가전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탈리아 밀라노 시내에 위치한 가전 유통 미디어월드 체르토사점
(밀라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지난 17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밀라노 시내에 위치한 가전 유통 미디어월드 체르토사점에서 한 고객이 삼성전자 광고판 앞을 지나가고 있다. 2024.4.21. hanajjang@yna.co.kr

지난 17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밀라노 시내에 위치한 대표적인 가전 유통 '미디어월드'의 체르토사점을 찾았다. 밀라노에 있는 미디어월드 매장 중 가장 규모가 큰 매장으로, 이탈리아 내에서 삼성 제품 매출이 높은 대표적인 유통 매장이기도 하다.

미디어월드는 독일계 전자유통업체인 MSH의 이탈리아 계열사다.

MSH는 독일과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서 브랜드별 스토어를 꾸며 차별화된 제품 디스플레이를 지원하는 '라이팅 하우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탈리아 밀라노 시내에 위치한 가전 유통 미디어월드 체르토사점
[촬영 장하나]

이날 찾은 체르토사점은 라이팅 하우스를 도입한 첫 매장으로, 1층 입구부터 삼성전자의 갤럭시 S24와 LG전자의 '라이프스굿' 광고판이 눈에 띄었다.

브랜드 노출이 없는 여타 매장과 달리 이곳에서는 삼성전자를 비롯해 LG전자, 하이얼, 일렉트로룩스, 밀레, AEG 등이 브랜드별로 할당된 공간에서 자사 제품을 홍보하고 있었다.

이탈리아 밀라노 미디어월드 체르토사점 내 삼성전자 매장
[삼성전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삼성전자 이탈리아법인에서 근무하는 석혜미 프로는 "(MSH에서는) 고객이 브랜드를 보고 사러 오는 게 아니라 직원이 권하는 상품을 사게 하는 전략을 취했지만, 코로나 이후 브랜드 노출을 최대한 하면 판매량이 얼마나 나올지를 실험하고 있다"며 "실험은 꽤 성공적"이라고 전했다.

삼성전자는 이곳 1층에 모바일 매장을, 2층에 TV와 가전 매장을 각각 꾸렸다.

밀라노 미디어월드 체르토사점 내 삼성전자 '모두를 위한 AI' 전시 공간
[촬영 장하나]

이와 함께 '밀라노 디자인 위크'를 맞아 전시장을 찾지 못하는 고객을 위해 이곳에도 전시 공간을 마련, 유럽의 가정집처럼 꾸며놓은 공간에 가전과 TV, 모바일 등의 제품을 전시하고 기기들이 AI와 스마트싱스로 서로 연결된 환경을 구현했다.

기기 간 연결 경험을 유럽 빌트인 가전으로 확장해 유럽 AI 가전 시장에서 혁신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2010년 폴란드에 냉장고·세탁기 생산 거점을 구축하고 유럽용 제품 판매를 강화해왔다.

이탈리아 가전 시장에서는 2013년부터 프리 스탠딩(단독형) 1위를 해 왔고, 2022년부터는 빌트인까지 포함한 전체 가전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유럽은 좁은 가옥 구조 특성상 빌트인 수요가 높다. 주방 가구 유통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고, 설치 용이성이나 높은 품질 요구 등으로 유럽 외 브랜드가 신규 진입하기 어려운 시장이기도 하다.

시장조사기관 GfK에 따르면 지난해 이탈리아 가전 시장의 규모는 41억9천만달러로, 이중 빌트인 시장은 21억6천만달러 규모다. 빌트인 시장 비중은 2021년 48%에서 2022년 51%, 2023년 52%로 점차 커지는 추세다.

이처럼 규모가 큰 데다, 통상 빌트인 제품의 가격이 프리 스탠딩 대비 15% 이상 높게 책정돼 있어 유럽 점유율 확대를 노리는 가전 업체들에는 매력적인 시장일 수밖에 없다.

이에 중국 가전 업체의 경우 하이얼이 이탈리아 가전 업체 '캔디'를, 하이센스가 슬로베니아 가전 업체 '고렌예'를 인수하는 등 인수·합병(M&A)을 통해 시장에 진입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이탈리아 밀라노 미디어월드 체르토사점에서 삼성 제품을 둘러보는 모습
[삼성전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삼성전자는 유럽 빌트인 맞춤 라인업 도입, 빌트인 전담 영업조직 구축, 이탈리아 프리미엄 주방 유통 기업들과의 협업을 통해 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석 프로는 "빌트인은 한번 고장이 나면 조립을 다 분해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품질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며 "그간 전통적인 유럽 브랜드인 보쉬, 지멘스 등이 장악했는데, M&A로 들어온 중국 브랜드를 제외하면 아시아 브랜드 중에서는 삼성이 가장 성공적으로 들어왔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에는 이탈리아 빌트인 시장에서 12% 매출 성장을 달성했다.

이탈리아 주방 가구 1위 브랜드 '스카볼리니' 매장
[촬영 장하나]

현재 이탈리아 주방 가구 브랜드 1, 2위를 다투는 스카볼리니와 루베를 비롯해 베네타 쿠치네, 스토사, 아레도3 등 현지 5대 브랜드와 전략적 협업 관계를 맺고 있다.

이날 미디어월드에 이어 찾은 '가구 거리' 코르소 셈피오네 지역의 스카볼리니와 루베 매장에서는 삼성전자가 신규 출시하는 와이드 BMF(상냉장·하냉동) 냉장고 등이 빌트인 형태로 전시돼 있었다.

매장 내 사무실에서는 고객 상담이 한창이었다.

밀라노 스카볼리니 매장에서 삼성 제품 설명하는 석혜미 프로
[촬영 장하나]

업계 관계자는 "고객이 원하는 가구 매장을 찾아 상담하면 가구 디자이너가 거기에 맞는 빌트인 가전 패키지 목록을 추천하는 식이기 때문에 그 목록 자체에 오르지 못하면 (빌트인 가전) 판매가 어려운 시장"이라고 설명했다.

주방 가전 유통에서 팔리는 제품의 80% 이상은 패키지로 판매되고 있다. 삼성전자 역시 빌트인 냉장고와 오븐, 쿡탑, 식기세척기 등 4종을 주방 빌트인 기본 구성으로 선보이고 있다.

가구 디자이너를 대상으로 삼성 키친 클럽도 운영하고 있다.

석 프로는 "디자이너가 어떤 모델을 팔았는지 인보이스와 함께 업로드하면 적립금을 주고, 이 적립금으로 TV나 휴대폰을 살 수 있도록 했다"며 "현재 등록된 디자이너만 1천500여명"이라고 전했다.

미디어월드 체르토사점에 전시된 '에너지 절감' 삼성 냉장고
[촬영 장하나]

최근 유럽 시장이 에너지 가격 폭등으로 에너지 절감 제품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점도 삼성전자가 강점을 갖는 부분으로 꼽힌다.

미디어월드 매장에 전시된 냉장고 등의 제품에도 'A-10%'(A등급보다 10% 절감) 등 제품별 에너지 등급이 강조돼 있었다.

석 프로는 "기존에는 F등급 소비자가 시장 대부분이었는데 코로나 기간을 거치면서 비싸진 전기세를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며 "이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A등급보다 에너지를 절감한 모델을 선보였다"고 했다.

삼성전자가 이달 초 유럽 시장 대상으로 출시한 와이드 BMF 냉장고는 기존 모델 대비 에너지를 55.9% 절감한 제품이다.

유럽의 에너지 A등급 대비 전력을 최대 40% 추가 절감할 수 있는 비스포크 AI 세탁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스마트싱스 에너지 기능을 바탕으로 한 에너지 절감도 비스포크 AI 제품들의 강점이다.

전진규 삼성전자 생활가전(DA)사업부 상무는 "삼성전자가 강점을 가진 AI 기반의 스마트한 연결 경험과 에너지 고효율 제품을 바탕으로 유럽 시장을 적극 공략할 것"이라고 말했다.

hanaj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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