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더부살이 끝 탄생…베네치아비엔날레 26번째 국가관 한국관
10년 더부살이 끝 탄생…베네치아비엔날레 26번째 국가관 한국관
  • 황희경
  • 승인 2024.04.19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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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첫 참가 후 이탈리아관 빌려 전시…백남준이 한국관 설립에 큰 역할

10년 더부살이 끝 탄생…베네치아비엔날레 26번째 국가관 한국관

1986년 첫 참가 후 이탈리아관 빌려 전시…백남준이 한국관 설립에 큰 역할

(베네치아=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세계 최대·최고 비엔날레인 베네치아비엔날레는 '미술 올림픽'으로도 불린다. 세계 각국이 대표 작가를 선정해 소개하는 국가관 전시와 시상 제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베네치아비엔날레 국가관 전시에는 88개국이 참여했다.

베네치아비엔날레는 1885년 시작됐지만 국가관 전시 시작은 1907년이다. 1907년 벨기에관이 처음 문을 열었고 이어 헝가리관, 독일관, 영국관, 프랑스관, 네덜란드관, 러시아관 등이 잇따라 세워졌다. 1960년대에는 우루과이관, 노르딕관(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브라질관이 설립됐고 이후 1988년 호주관까지 25개 국가관이 마련됐다. 이들 국가관은 모두 이탈리아어로 '공원'을 뜻하는 자르디니 지역에 있다.

2009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연합뉴스 자료사진]

한국은 국가관 전시에 1986년 처음 참가했다. 비엔날레에서 참가 요청을 받고 당시 미술평론가 이일 홍익대 교수가 커미셔너를 맡아 서양화가 하동철(1942∼2006)과 고영훈(72)을 출품작가로 선정했다. 한국관이 따로 없었던 터라 작가들은 본전시장인 아르세날레 한구석에서 작품을 전시해야 했다. 벽면 길이 20m 정도의 전시장이었다.

한국도 다른 나라처럼 자르디니에 독립된 전시관을 마련하려 했으나 베네치아 당국은 도시 보호 등을 이유로 더 이상 자르디니에 국가관 건립을 허용하지 않았다. 독일 통일로 비게 된 옛 동독관 사용 가능성도 있었지만 무산됐고 본전시장 옆의 민간 소유 건물을 장기 임차하는 방안도 논의됐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이 때문에 1988년 박서보, 김관수, 1990년 조성묵, 홍명섭, 1993년 하종현 작가까지 계속 이탈리아관 더부살이 신세를 면치 못했다.

1995년 베네치아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포스터[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예술기록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베네치아비엔날레는 이후 100주년인 1995년을 맞아 국가관 추가 건립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당시 중국과 아르헨티나 등 23개국이 독립관 설치를 신청했고 이 중 중국이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지만 한국이 모든 경쟁국을 제치고 26번째 국가관을 설립하게 됐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두 번째였다. 한국관을 끝으로 더 이상 자르디니에는 국가관이 설치되지 않았다. 추가로 국가관은 들어서지 않았지만 체코-슬로바키아 국가관 분리 등으로 지금은 31개국, 28개 전시관(31개국)이 있다. 자르디니에 국가관이 없는 나라들은 별도 건물을 빌려 전시를 열고 베네치아비엔날레에서 이를 국가관으로 인정하는 형식으로 국가관 전시가 진행된다. 올해 볼리비아에 국가관을 대여한 러시아관 사례처럼 국가관을 다른 나라에 빌려주거나 국가관을 서로 바꿔 전시하기도 한다.

2015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연합뉴스 자료사진]

자르디니에 한국관이 세워지는 데는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백남준이 큰 역할을 했다. 1993년 베네치아비엔날레 독일관 작가로 참여해 국가관 황금사자상을 받은 백남준은 당시 수상 소식을 듣고 건축가 김석철에게 "한국 현대미술에 기여하고 싶다"며 한국관 설립 추진에 나섰다. 백남준은 김영삼 대통령을 만나 한국관 설립을 건의했고 이후 정부도 적극적으로 한국관 설립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백남준은 베네치아 당국에도 "남북한이 하나의 관에서 전시를 하게 된다면 노벨평화상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며 설득했고 이는 당시 소련 붕괴와 독일 통일 등 냉전 종식 분위기와 맞물리며 한국관 설립이 결정되는 배경이 됐다.

일본관과 독일관 사이에 자리 잡은 한국관 자리는 원래 관리사무소와 화장실 부지였던 곳이다. 김석철과 베네치아대의 프랑코 만쿠소 교수가 함께 설계를 맡아 219.7㎡, 연면적 242.6㎡, 약 73평 규모에 3개 전시장으로 구성됐다.

1995년 제46회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특별상 수상한 설치작가 전수천[연합뉴스 자료사진]

1995년 열린 한국관 전시 첫 작가로는 전수천과 윤형근, 김인겸, 곽훈이 선정됐다. 당시 언론 보도 등에 따르면 한국관 개관에 맞춰 한국 미술계 인사 1천여명이 베네치아를 찾았고 한 공중파 방송에서는 비엔날레 현장을 90분간 위성 중계하는 등 관심이 집중됐다. 전수천 작가는 설치작품 `방황하는 혹성들속의 토우-그 한국인의 정신'으로 특별상을 받았다.

문화예술위원회는 내년 건립 30년을 맞아 한국관 증ㆍ개축을 추진하고 있지만 지지부진한 상태다. 예술위는 2018년 증축 계획을 발표했지만, 증축안이 베네치아 도시법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하는 상황이다. 예술위는 2025년까지 증축안 승인을 추진하고 있다.

1995년 한국관 개관 기념 행사로 열린 곽훈의 '겁소리 - 마르코 폴로가 가져오지 못한 것' 퍼포먼스[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zitro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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