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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pines] 관광 상품이 되어버린 독특한 종교 의식(?)
icon 윤금희
icon 2019-05-14 16:18:21  |  icon 조회: 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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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은 천주교 국가다.

전 포스팅에 썼던 것 처럼, 크리스마스가 상상을 초월하는 대대적인 휴일이며,
4월의 부활절 역시 사람들 손꼽아 기다리는 Holy Week, 국가 공휴일이다.
 
올해는 목, 금 이렇게 쉬었다. 그 한 주가 내내 휴일 분위기였다.
외로운 외국인 노동자인 나는, 부활절 휴일동안 무얼할까 고민하다 필리핀 신문에서 충격적인 기사를 우연히 읽게 됐다.
 
바로 Crucifixion과 Flagellation.
필리핀 어느 시골 마을에 가면 십자가에 묶여 손과 발에 실제로 '못'을 박는(Crucifixion) 사람들이 있다는 거다.
또한 채찍으로 자신의 몸을 때리는 행위(Flagellation)의 행렬도 마주칠 수 있다고 했다.
동료에게 정보를 얻어, 이러한 행사(?)로 가장 유명하다는 Cutud란 작은 마을을 알아냈다. 그래, 가보자!
 
드디어 부활절 금요일, 마닐라에서 약 2시간 거리.
이른 아침부터 꾸불꾸불 작은 길을 트라이시클 타고 헤쳐가니,
Cutud란 곳에서는 채찍으로 자신의 몸을 때리며 걸어가고 있는 Flagellation 행렬이 이미 펼쳐지고 있었다.
 
그들의 등은 이미 피로 범벅이다. 얼굴은 검은 천으로 가렸다.
삼삼오오 혹은 혼자서, 사진과 같이 줄을 서서 채찍으로 자신의 몸을 휘갈기며(?) 걸어간다.
그들이 채찍을 휘두를 때 마다 등에서 흐른 핏방울이 거리에 쫙.쫙. 튀긴다.
옆에서 사진 찍던 내 팔다리와 옷에도 '남의 영광(?)의 피'가 쫙.쫙. 묻는다.
길거리도 피범벅. 애들은 신기하다고 행렬을 따라간다. 나도 따라간다. @.@

 

아쉽게도 이미 이 신성한 종교적 행사는 축제처럼 되어버렸다.
이 작은 마을에 약 3만명의 관광객이 몰렸단다. 외국인도 엄청 많다. 외국 미디어도 많다.
필리핀 와서 이렇게 많은 외국인은 처음 본 것 같다. (흠.. 관광 소득 증대에 기여하기에 다행인건가..?)
여기저기 카메라 들이대고 인터뷰하고 있다. 길거리에는 풍선도 팔고 아이스크림도 팔고
분홍, 초록색으로 염색한 더위에 지친 병아리도 판다. (사진을 잘보면 더위에 죽은 병아리도 있다;; ㅠ)
군데군데 정신 못차리는 외국인이 투우라도 보러온 듯(?) 거리에서 산미구엘 맥주 입에 물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여튼 이러한 Flagellation 행렬은 골고다 언덕처럼 십자가 3개를 만들어 놓은 한 광장으로 향한다.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로 광장은 넘쳐나고 있다. 남의 손발에 못박히는 걸 기다리고 있는 나를 포함한 3만명.
짝퉁(?) 골고다 언덕 아래에서는 맥도날드 햄버거도 팔고 과일주스도 판다.
사람들은 핫도그 우물거리고 콜라 사먹으면서 사람 못박히는 행사를 기다린다.
미디어 자리와 초대받은 정부 고위 관료 및 외교관 등의 VIP석도 따로 준비되어 있다.

공시된 시간보다 약 2시간이나 지연되어 행사가 시작한다. 실제 예수님이 못박히던 상황을 재연했다.
모두 의상도 갖춰 입었고 군인들이 말을 타고 등장하며 서라운딩 음향 시스템을 도입해서 못박히는 소리를 관중들(?)에게 전달했다.
망치를 들어 손발에 못을 내리 찍을 때 마다 관중들은 '악!' 소리를 지른다. 두손 두발, 네번 '악' 소리 지른다.
 
오기 전에 신문에서 읽었는데, 십자가에 못박히는 분이 몇 년 전에
3층 건물 높이에서 떨어졌는데도 불구하고 살아났다고 했다. 그래서 신께 감사하는 이유로 Crucifixion을 한다고 했다.
그 외에도 이번 부활절 기간에 필리핀 전역에서 실제 못박힌 사람이 28명이었다고 한다. 여자도 포함됐었단다.
이유도 다양했다. 신께 감사하기 위해, 예수님의 고통을 나누기 위해, 가족의 안녕을 위해 등등.
 
어쨌든, 행사의 하이라이트(?)였던 못박힘이 끝나자마자 (아직 재연 행사가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많은 사람들은 우루루 광장을 빠져 나온다. 새벽길을 달려 그 아침에 인파를 헤치고
그늘 하나 없는 땡볕 내리쬐는 짝퉁 골고다 언덕 아래서 쪼그리고 앉아서 그 공포의 광경을
두눈으로 확인하려했던 내 스스로에게 '이유'를 묻는다. 왜 꼭 보려고 했었나. 그 심리가 무얼까.
필리핀 사람들도 독특하다고 생각하니깐 3만명이라는 사람들이 몰리는 게 아닐까. 단순 종교적 이유에서만 모이는 건 아닌 것 같다.

 

3만명이 부활절 금요일 딱! 반나절동안 이 마을을 방문함에 따라 발생된 관광 소득이 어느 정도인지 정보를 얻지는 못했지만,
말이 3만명이지, 실제 엄청난 숫자다. 필리핀의 넘버원 관광지 세부의 한달 방문객이 평균 15-18만명 정도인 것을 생각하면. @.@
 
부활절에는 크리스마스와 마찬가지로 모든 상점이 문을 닫고 길거리에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로 조용하지만,
이 마을은 달랐다. 온동네 트라이시클 운전자는 다 모인 것 같고, 평소에 상점을 안하는 사람도 먹거리를 싸들고 나와서 장사를 하는 모습이다.
 
 
종교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어 의견을 피력하기 참으로 힘들긴 하다만..
우리나라 전통 샤머니즘도 외국인이 보면 기이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고조선때 부터 행하던 제천의례 행사를 바로 알고, 극락왕생을 기원하던 '굿' 문화도
역사에서 살펴보면 현재 기이하게 보일지도 모르는 샤머니즘도 이해하게 되니까.
 
 
2019-05-14 16: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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