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신부' 이야기에서 시작된 결혼이주여성들의 초상사진 작업
'사진신부' 이야기에서 시작된 결혼이주여성들의 초상사진 작업
  • 황희경
  • 승인 2023.06.12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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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선 성곡미술관 개인전

'사진신부' 이야기에서 시작된 결혼이주여성들의 초상사진 작업

김옥선 성곡미술관 개인전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사진작가 김옥선(56)은 이주와 이산(디아스포라)의 삶, 경계에 선 이들에 오랫동안 관심을 둬 왔다. 국제결혼 후 제주로 이주해 30여년간 그곳에서 살았던 작가는 자신이 겪은 이주의 경험을 바탕으로 가족을 비롯한 주변의 '이방인'들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계속해 왔다. 최근에는 근현대 역사 속에서 이산을 경험한 뒤 이주한 곳에서 뿌리를 내린 인물들을 사진으로 담고 있다.

서울 신문로 성곡미술관에서 열리는 김옥선의 개인전 '평평한 것들'은 20여년간 계속된 그의 여러 시도를 모은 전시다.

김옥선〈bsp_ahs130>《신부들, 사라 Brides, Sara》2023, Digital c-print(왼쪽), 〈bsp_sph796〉《신부들, 사라 Brides, Sara》2023, Digital c-print[성곡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신작 '신부들, 사라' 연작은 베트남, 몽골, 중국 등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결혼이주여성들의 초상을 사진으로 찍은 것이다. 작업의 출발은 '사진신부' 이야기였다.

1910∼1924년 미국 하와이의 사탕수수 농장 등에서 일하던 조선인 남성들은 사진교환을 통해 고국에서 신붓감을 데려왔다. 1910년 '사진 신부 1호'였던 최사라를 시작으로 14년간 1천여명의 조선 여성이 사진 교환만으로 하와이에 건너와 결혼을 했다.

사진신부들이 사진 하나만 보고 머나먼 이국땅까지 건너온 사연은 다양했고 사진과는 다른 나이 든 신랑의 모습에 좌절한 여성들도 많았다.

사진신부를 바라보는 여러 시각이 있지만 12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당시 사진신부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기 힘들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삶에서 벗어나 더 나은 현재를 살고자 이주라는 선택을 했다는 점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그는 "사진신부 이야기를 통해 지금 우리나라에 와 있는 결혼이주여성들에 대해서도 새롭게 인식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신부들, 사라' 연작의 주인공은 짧게는 7년에서 길게는 20년 가까이 한국에서 가정을 이루고 적응해 살아가는 결혼이주여성들이다. 서울 황학동의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들은 조명에 신경을 써 입체감을 극대화하고 크게 인화해 피사체의 존재감을 강하게 드러낸다. 작가는 당당한 모습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찍은 고전적인 초상 사진들을 통해 옛 하와이 사진신부들을 오마주하고 결혼이주여성들의 삶에 존중을 표한다.

이 작업은 독일 베를린에 사는 한인 간호사 모습을 담은 '베를린 초상'(2018) 연작의 연장선상으로도 볼 수 있다. 작가는 '베를린 초상'에서도 파독 간호사들이 단순히 '외화벌이'나 가족을 위해 희생했다는 시각에서 벗어나 이들이 주체적으로 삶을 선택했다는 점에 초점을 맞췄다.

김옥선,〈acp_srw259〉 《아다치 초상 Adachi Portraits》

2023, Digital c-print[성곡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또 다른 신작 '아다치 초상'은 재일외국인들의 모습을 담았다. 일본 후쿠오카 아다치 지역에서 머물던 중 재일교포 2세와 일본인-미국인 부부, 그들의 자녀 등의 초상 사진 작업이다. 집과 근무지, 주변 동네와 자연 등 그들과 관계된 다양한 장소를 배경으로 한 작업은 이전 제주에서 이방인들의 모습을 담았던 전작들을 떠올리게 한다.

전시에서는 구작들도 함께 볼 수 있다. 우리보다 결혼이주여성들이 더 일찍 자리 잡은 대만에서 다문화 2세들의 모습을 담은 '공원 초상' 등이다. 전시는 8월 13일까지. 유료 관람.

김옥선 '평평한 것들' 전시 전경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서울 신문로 성곡미술관에서 열리는 김옥선 개인전 '평평한 것들' 전시 전경. 2023.6.12. zitrone@yna.co.kr

zitro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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