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가족사진 5천회 촬영…'샐러리맨 신화' 10년째 봉사
다문화 가족사진 5천회 촬영…'샐러리맨 신화' 10년째 봉사
  • 이희용
  • 승인 2019.08.29 08: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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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외 인클로버재단 이사장 "1만번 촬영을 위해 건강 챙깁니다"
"가족사진은 화목의 상징"…"사진은 세상을 아름답게 보도록 만들죠"

다문화 가족사진 5천회 촬영…'샐러리맨 신화' 10년째 봉사

한용외 인클로버재단 이사장 "1만번 촬영을 위해 건강 챙깁니다"

"가족사진은 화목의 상징"…"사진은 세상을 아름답게 보도록 만들죠"

한용외 인클로버재단 이사장이 27일 오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5천 번째 다문화 가족사진 촬영 소감을 털어놓고 있다. [인클로버재단 제공]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가족사진은 화목과 다복의 상징이었다. 예전에는 특별한 날 사진관에서 가족사진을 찍는 게 중산층 가정의 관례였고, 오래된 집 대청이나 거실 벽 한가운데는 으레 3대의 가족사진이 걸려 있었다.

스마트폰이 일반화되고 핵가족이 보편화한 요즘에는 일반 가정에서도 전문 사진사에게 가족사진 촬영을 맡기는 일이 드물지만, 다문화가족은 이른바 '폰카'로 찍은 가족사진조차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부부가 모두 생업과 육아에 쫓겨 아이들과 함께 사진 찍을 여유가 없는 탓이다. 심지어는 결혼식을 올리지 않거나 신부 나라에서 약식으로 치러 결혼식 사진마저 없는 경우도 있다.

이런 다문화가족을 위해 10년째 무료로 가족사진을 찍어주는 사람이 있다. 인클로버재단의 한용외(72) 이사장은 2010년 8월 8일 서울 구로구 한국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현 한국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를 시작으로 매달 두 차례씩 전국을 돌며 촬영 봉사에 나선다. 2016년 6월 3천 가족을 넘어설 때는 제주도 서귀포시청 강당에서 셔터를 눌렀다.

오는 9월 7일 서울 양천구 해누리타운에서는 5천 가족을 돌파한다. 아마도 그가 전국의 30만 다문화가족(가구수 기준) 가운데 가장 많은 식구를만나 대화를 나눈 인물일 것이다. 2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신천동 인클로버재단 사무실에서 한 이사장을 만나 소감을 물었다.

2016년 6월 19일 제주도 서귀포시청 강당에서 인클로버재단 한용외 이사장이 3천 번째로 베트남 출신 루엔티반 씨의 가족을 촬영하고 있다. [인클로버재단 제공]

"저도 처음에는 이렇게 오랫동안 많은 가족을 찍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죠. 그동안 제 카메라 앞에 섰던 가족들 얼굴이 떠오릅니다. 5천 가족을 찍어드렸다고 하니 이제 1만 가족이란 목표가 생깁니다. 앞으로 더 부지런히 찍고, 건강을 유지해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영남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한 이사장은 1974년 제일합섬에 평사원으로 입사한 뒤 삼성그룹 비서실과 삼성전자 등을 거쳐 삼성전자·삼성그룹재단·삼성사회봉사단 사장을 지낸 '샐러리맨 신화'의 주인공이다.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이란 말이 생소하던 1994년부터 관련 업무를 맡았고, 전문성을 기르기 위해 사회복지학 학위 과정에도 도전했다. 자원봉사와 사회복지에 기여한 공로로 2000년과 2006년 각각 대통령 표창과 국민포장을 받았다.

2009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며 사재 10억 원을 들여 인클로버재단을 설립했다. 기업과 대학에서 쌓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인생 제2막을 연 것이다. 재단 이름은 '행복한 세상 속으로'란 뜻으로 한 이사장이 지었다. 2004년 시작한 대학원 공부는 2011년 박사학위로 결실을 봤다.

"2007년 경남 지역에 봉사활동을 갔다가 '농촌 총각 결혼시켜 드립니다'라는 군수 명의의 플래카드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순혈주의가 강한 나라에서 다문화가정 자녀들이 차별받지 않고 잘 자랄 수 있을까 걱정됐죠. 이들이 청소년이 되는 10년쯤 뒤에는 정말 큰일 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서 다문화가정 돕기에 나섰습니다. 박사 논문도 '다문화복지 조직 네트워크'를 주제로 썼죠."

한용외 인클로버재단 이사장이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다문화 가족사진 촬영을 시작한 동기와 보람을 설명하고 있다. [인클로버재단 제공]

인클로버재단의 사업은 다문화가정 도서 나눔과 수기 공모, 다문화 청소년 재능교육·역사문화 탐방·장학금 지급, 학술연구 등 다양하다.

가족사진 촬영은 1990년대 삼성문화재단 대표 시절부터 삼성경제연구소 CEO 강좌를 통해 조세현 작가 등 전문가들에게 배우고 익힌 사진 솜씨가 밑거름이 됐다. 아마추어 수준을 훌쩍 뛰어넘어 2013년과 2017년에 개인전을 열었다.

삼성문화재단이 1997년 울릉도에 독도박물관을 건립한 인연으로 5차례나 독도에서 묵으며 풍경을 찍기도 했다. 직접 헬기를 빌려 타고 부감 촬영도 시도했다.

"누구든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아름답거나 의미 있다고 여기는 피사체를 찾아 앵글에 담으려고 하잖아요. 다문화 청소년들에게 사진 찍기를 가르치는 것도 진로 탐색에 도움을 주는 동시에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눈을 만들어주려는 겁니다."

인클로버재단의 가족사진 촬영은 원스톱 서비스다. 미용사와 메이크업 전문가가 헤어스타일을 다듬고 얼굴 화장을 해준다. 한 이사장이 사진을 찍고 나면 가족의 주문에 따라 포토샵으로 사진을 보정한다. 이어 즉석에서 컬러 프린터로 A3 사이즈 사진을 인화해 액자에 넣어 선물한다. 한 이사장 말고도 7∼8명의 자원봉사자가 따라나선다.

보통 시군구별로 있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통해 신청을 받고 군청 회의실 등을 빌려 촬영한다. 많으면 하루에 60여 가족까지 찍는다.

"사진을 찍기 전부터 가족 간의 대화가 시작됩니다.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머리를 만져주기도 하고 옷매무새를 챙겨주기도 하죠. 사진을 받아든 뒤에도 누가 잘 나왔다느니 표정이 딱딱하다느니 품평을 주고받습니다. 집에 가서 액자를 걸어둔 뒤에도 두고두고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가족 사랑을 확인하고 다짐하게 됩니다. 두세 차례 찍은 가족도 있는데, 어른은 늙어가고 아이는 자라는 모습을 한눈에 알 수 있죠. 비용 대비 효과로는 이것만 한 봉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용외 인클로버재단 이사장이 6남매 사진 액자를 가리키며 당시 느낌을 털어놓고 있다. [인클로버재단 제공]

한 이사장은 똑같은 옷을 새로 맞춰 입고 오는 가족에게는 고맙다는 마음이 든다고 한다. 한복이나 모국의 전통의상 차림으로 카메라 앞에 서는 가족도 있다. 다자녀 집안이거나 할아버지 할머니가 함께 와 가족 수 많으면 더욱 신이 난다.

지금까지 가장 기억나는 가족도 충남 태안에서 찍은 한국·일본 6남매 가정이라고 털어놓았다. 하도 기분이 좋아 아이들만 앉혀놓고 다시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집무실 책상에도 6남매의 사진 액자를 세워두고 틈날 때마다 보며 미소짓는다.

"반대로 기분이 몹시 상한 순간도 있었죠. 어느 지역에 촬영을 나갔을 때 할아버지 할머니가 눈에 띄지 않아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직원에게 물었더니 '할머니 할아버지도 가족인가요?'라며 반문하는 겁니다. 충격받았죠. 아무리 핵가족 시대를 지나 1인 가구 시대로 접어들었다지만 너무하다 싶었습니다."

오는 11월 28일 오후 5시 서울 중구 퇴계로 충무아트홀에서는 인클로버재단 창립 10주년 기념식이 열린다. 재단에서 사진을 배운 청소년들의 사진전도 마련된다. 지난 10년간 우리나라의 다문화 인식은 얼마나 달라졌다고 보는지 궁금했다.

"다문화 인식이 많이 높아진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겉으로는 다문화를 포용한다고 말하면서도 막상 자녀가 피부 빛깔이 다른 친구를 데리고 집에 오면 나중에 아이한테 '왜 그런 친구와 어울리느냐'며 혼을 내는 부모가 적지 않죠. 아직도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많은 셈이죠."

hee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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