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체류자 "우리도 똑같은 사람…없으면 공장 안돌아가" 넋두리
불법체류자 "우리도 똑같은 사람…없으면 공장 안돌아가" 넋두리
  • 성도현
  • 승인 2022.10.25 15: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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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속·추방' 두려움 속 생존 노동…"개인 사정 고려를"
9월말 현재 40만명 돌파…외국인 5명 중 1명꼴

불법체류자 "우리도 똑같은 사람…없으면 공장 안돌아가" 넋두리

'단속·추방' 두려움 속 생존 노동…"개인 사정 고려를"

9월말 현재 40만명 돌파…외국인 5명 중 1명꼴

경기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 다문화음식거리 모습
[촬영 성도현]

(서울·안산=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7년 전 태국에서 관광비자를 받고 입국해 한국에 눌러앉게 된 A(43)씨는 요즘 정부가 대대적으로 불법체류(미등록) 외국인 합동단속을 한다는 뉴스를 보면서 걱정이 많다.

정부가 추방하는 불법체류자에 자신도 포함될까 봐서다.

정부는 코로나19 이전 매년 불법체류자 단속을 벌여 연간 3만여명을 추방해왔다.

지난 23일 경기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 다문화음식거리에서 만난 A씨는 "정부가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줬으면 좋겠다"는 말만 남기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등록·미등록 외국인들이 섞여 사는 이곳은 정부의 단속 재개 탓인지 다소 썰렁한 분위기였다.

단원구는 올해 9월 말 기준으로 등록 외국인이 3만4천528명이다.

경기 화성시(3만6천216명)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많다.

특히 다문화음식거리는 외국인들에게 이른바 '만남의 장'으로 통한다.

일요일이면 불법체류자를 비롯해 전국에 흩어져 일하는 외국인들이 모여 삶의 애환을 나누고 정보를 교류하기 때문에 북적인다.

한 업체 관계자는 "동남아시아에서는 한국은 여전히 기회의 땅이기 때문에 브로커에게 거액을 주고라도 들어오려고 한다"며 "불법체류자를 양산하는 방식이 아니라 정식으로 제도화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법무부가 25일 공개한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월보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불법체류자가 처음으로 40만 명을 돌파했다. 국내 체류 외국인은 217만2천278명, 불법체류자는 40만2천755명이다. 불법체류율은 18.5%로, 외국인 5명 중 1명인 셈이다.

'반인권적 단속 중단'
[연합뉴스 자료사진]

최근 이주인권단체 등을 통해 연합뉴스와 만난 다수의 불법체류 외국인들은 "우리도 똑같은 사람"이라며 한국 정부가 규제 위주의 정책을 하며 자신들을 범죄자로 규정하고 추방하려는 것에 대해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방글라데시에서 8년 전에 들어온 B(48)씨는 수도권의 한 공장에서 주 6일 일한다. 월급으로 250만 원을 받아 생활비로 80만 원을 쓰고, 나머지 금액은 본국의 가족들에게 보낸다. 돈을 아끼기 위해 흡연과 음주는 하지 않는다.

B씨는 "같이 일하는 한국 사람들의 평균 나이가 60∼65세"라며 "외국인 노동자들은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어렵고 힘든 일을 주로 한다. 우리가 없으면 공장이 운영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가 도와주면 체류 자격을 받을 수 있다. 다른 방법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불법체류자가 됐다"며 "1년에 한두 번씩 본국에 왔다 갔다 하면서 가족들과도 만나면 일도 더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

필리핀 출신 부부인 C(53)씨와 D(47)씨는 주5일 꼬박 침대회사의 공장에서 일하고 받는 월급은 각각 160만 원이다. 최저임금에 크게 못 미치는 것은 알지만, 불법체류자 신분이라 항의할 수도 없다. 이들은 추방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했다.

"안심하고 코로나19 검사 받으세요"
[연합뉴스 자료사진]

1996년부터 한국에서 사는 C씨는 "과거에 한 번 단속에 걸려 한국을 떠나야 할 위기에 처한 적이 있었다"며 "우리도 불법체류자 신분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 늘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산다"고 털어놨다.

또 "정부가 자진신고를 하면 일단 벌금을 안 내고 출국할 수 있게 해주고, 3개월 뒤에 다시 들어올 수 있다고 해서 떠난 동료들이 있다"며 "하지만 그 이후 한국에 다시 들어왔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2007년 입국한 D씨는 양말 공장과 채소 농장, 식당 등 여러 곳을 거쳐 침대공장에서 7년째 일하고 있다. D씨는 "정부의 단속 때문에 2∼3개월간 출근하지 않는 동료들도 있다"며 주변 상황을 전했다.

D씨는 "길에서 경찰을 보면 그저 피하게 되고, 자유롭게 외식을 하러 식당에 가거나 관광지에 갈 수도 없어 집에만 있는 편"이라며 "한국 입장에서도 우리가 필요한 게 아닌가. 자유롭게 일할 수 있게 해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가구공장에서 일하는 필리핀 출신 E(45)씨는 "한국인들의 일자리를 잠식한다는 비판을 들을 때마다 답답하다"며 "돈을 벌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본국으로 돌아가고 싶다. 개인의 구체적인 사정도 고려한 비자 요건을 마련해달라"고 했다.

rapha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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