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시선] 해 넘기는 재일동포 대표단체 민단의 내분
[특파원시선] 해 넘기는 재일동포 대표단체 민단의 내분
  • 김호준
  • 승인 2021.12.2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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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장 선거 때 불거진 갈등 올해 내내 지속…해결책 없나?

[특파원시선] 해 넘기는 재일동포 대표단체 민단의 내분

단장 선거 때 불거진 갈등 올해 내내 지속…해결책 없나?

광복절 축사하는 여건이 단장
(도쿄=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여건이 재일본대한민국민단 중앙본부 단장이 8월 15일 도쿄 고토구 공회당(公會堂)에서 열린 제76주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2021.8.15

(도쿄=연합뉴스) 김호준 특파원 = 올해 초 단장 선거 과정에서 불거진 재일동포 대표 단체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이하 민단)의 내분이 해를 넘기게 됐다.

약 30만명의 재일동포가 소속된 민단의 단장을 뽑는 선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이유로 우편 투표 방식으로 진행됐다.

후보는 재선에 도전한 여건이 단장과 도전자인 임태수 당시 부단장 2명이었다.

올해 2월 26일 열린 중앙대회에서 투표함을 개봉해 단장을 선출할 예정이었지만, 임 후보의 자격 문제가 거론되면서 개표가 연기됐고, 3월 12일 다시 열린 중앙대회도 임 후보 자격 박탈 문제로 대립이 이어져 개표는 이뤄지지 않았다.

4월 6일 세 번째로 열린 중앙대회에서 결국 임 부단장의 후보 자격이 박탈되면서 개표 없이 여 단장의 연임이 결정됐다.

중앙대회 다음 날인 4월 7일 민단 중앙위원·대의원(491명), 그리고 선거인(853명)이 투표한 1천344명분의 투표용지는 문서 세절기로 파기됐다. 개표를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개표 없이 세절된 민단 단장 선거 투표용지
(도쿄=연합뉴스) 올해 4월 6일 제55회 민단 중앙대회에서 여건이 단장은 경쟁 후보인 임태수 전 민단 부단장의 후보 자격이 박탈되면서 투표함을 열지 않은 상태로 재선됐다. 다음 날인 4월 7일 민단 중앙위원·대의원(491명), 그리고 선거인(853명)이 투표한 1천344명분의 투표 용지는 세절기로 파기됐다. [박상홍 전 민단중앙본부 사무부총장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1.08.20

선관위는 임 전 부단장의 과거 범죄 이력을 문제 삼아 후보 자격을 박탈했지만, 박탈의 근거가 되는 명확한 민단 규정이 없어 심각한 내부 갈등이 초래됐다.

민단 지역 조직을 주축으로 결성된 '민단중앙정상화위원회'(이하 정상화위)는 선거 파행에 항의하며 여 단장의 신임을 묻기 위한 임시 중앙대회 개최를 요구하고 나섰다.

민단 규약 제13조에 따르면 대의원과 중앙위원 과반의 요구가 있으면 의장은 30일 이내에 임시 중앙대회를 소집해야 한다.

정상화위는 서명 운동에 돌입해 대의원과 중앙위원 308명(과반 262명 이상)의 서명을 받아 6월 24일 서명자 명부를 민단 중앙에 제출했으나 석연치 않은 본인 확인 과정을 거치면서 서명자가 241명으로 줄어 중앙대회 개최가 무산됐다.

민단 중앙 간부와 민단 중앙에 동조하는 지역본부의 고문이 서명한 대의원 등에게 전화를 걸어 철회를 요구한 복수의 사례가 연합뉴스의 취재 결과 확인된 바 있다.

민단 내 갈등이 계속되자 재외동포재단은 사실상의 분규 단체로 간주하고 민단 중앙본부 지원 예산 약 20억원의 집행을 보류하고 있었다.

이에 정상화위는 강창일 주일본 한국대사와 김성곤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에게 각각 편지를 보내 "동포사회를 위한 각종 사업의 중단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중앙본부 지원금의 정상 지급을 요구하는 편지를 8월 19일 발송했다.

이에 김 이사장은 같은 달 24일과 25일 여건이 단장, 정상화위 대표인 이수원 민단 도쿄본부 단장과 각각 온라인 회의를 한 뒤 지원금을 지급했다.

당시 재외동포재단의 보도자료(8월 26일자)를 보면 "지원금을 송금하고 10월 5일 세계한인회장대회에 민단 중앙 임원들을 예년과 같이 초청하기로 했다. 대신 여건이 단장은 현재의 갈등을 이른 시일 내에 해결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을 약속했다"고 돼 있다.

민단중앙정상화위, 임시 중앙대회 개최 추진
(도쿄=연합뉴스) 김호준 특파원 = '민단중앙정상화위원회'는 4월 28일 도쿄 소재 재일한국YMCA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단 임시 중앙대회 개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발언하는 이수원 민단 도쿄본부단장(오른쪽)과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오공태 전 민단 단장(왼쪽). 2021.04.28 [민단중앙정상화위원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러나 민단 내 갈등은 해결되기는커녕 보류됐던 정부 지원금의 지급 결정 과정을 놓고 양측이 진실 공방을 벌이는 상황이 벌어졌다.

전 민단 중앙 상임고문 5명은 정상화위가 지원금 조기 지급 요청서(편지)를 제출하고 이를 받은 재외동포재단은 여 단장이 민단 내 혼란을 연내 정상화하고 유감을 표명하는 조건으로 지원금이 지급했는데 여 단장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는 문서를 지난달 민단 회원 등에게 발송했다.

여 단장은 정상화위의 요청서 제출로 지원금이 송금된 것이 아니며, 지원금이 지급될 예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정상화위가 황급히 편지를 보낸 것이라고 주장하는 문서를 발송하며 맞대응했다.

정상화위는 민단 중앙 지원금 지급과 함께 해체됐지만, 이후에도 갈등이 해소되지 않아 이달 16일 '임시(중앙)대회 개최를 요구하는 모임'이 다시 발족했다.

이 모임은 내년 2월 18일 열리는 연례 민단 중앙위원회에 임시 중앙대회 개최 안건을 상정하기로 했다.

민단 내 분열을 해소하고 사상 초유의 무개표 단장 당선으로 훼손된 민단 내 민주적 절차를 회복하려면 대의원 등이 참여하는 중앙대회를 열고 여 단장의 신임 여부를 묻는 방법밖에 없어 보인다.

여 단장이 신임을 받으면 계속 단장직을 수행하면 되고, 불신임을 받으면 새 단장을 뽑는 선거를 다시 하면 될 것이다.

hoj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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