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에 보내진 6·25 북한 전쟁고아 영화 만든 김덕영 감독
동유럽에 보내진 6·25 북한 전쟁고아 영화 만든 김덕영 감독
  • 이상서
  • 승인 2020.06.02 11: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동유럽에 보내진 6·25 북한 전쟁고아 영화 만든 김덕영 감독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 = 동양인이라고는 찾기 힘들던 1950년대 동유럽에 당시 26세였던 조정호(94)씨는 교사의 신분으로 북한에서 3천 여명의 전쟁고아와 함께 루마니아로 왔다.

남북을 합쳐 10만명의 고아를 만든 한국전쟁이 끝난 후 우리나라의 고아는 미국과 유럽 등 우호국에 입양됐지만, 북한의 고아는 동구권 공산국가들에 맡겨졌기 때문이다.

조 씨는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약 100km 떨어진 인적이 드문 외곽에 아이들이 생활하고 배우는 기숙 학교를 세웠다. 제오르제타 미르초유(87)씨는 여기서 미술 교사로 부임하며 조 씨를 만났다. 둘은 사랑했고 1957년 결혼식도 올렸다.

1962년 미르초유 씨는 본국의 소환 명령을 받은 남편과 함께 북한을 찾았다. 그러나 루마니아로 돌아온 것은 미르초유 씨 뿐이다. 편지로 이어가던 소식도 이내 끊겼다.

결혼 생활은 고작 5년으로 끝났고, 그는 50여년째 남편을 기다리고 있다.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의 김덕영 감독
[김덕영 감독 제공]

김덕영 감독(56)이 한국전쟁 직후 동유럽으로 간 북한 전쟁고아 1만여명이라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을 제작하게 된 계기다.

김 감독은 개봉을 앞둔 2일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이 영화는 16년간 50번 넘게 동유럽과 한반도를 오가며 얻은 결과물이자, 북한 사회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04년 서강대 철학과 2년 선배이자 영화계 선배인 박찬욱 감독은 동유럽 여행 중 우연히 알게 된 미르초유씨의 사연을 김 김독에게 전했다. "수십년째 남편이 북한으로 떠나 만나지 못하는 루마니아 노인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조정호씨와 제오르제타 미르초유씨의 모습
[김덕영 감독 제공]

'얘기가 되겠다' 싶어서 접근했지만 반세기 전 타국에서 북한과 관련한 자료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역사 서적이나 사진 자료 한장 남아있지 않았다. 당사자 대부분이 사망해 증언도 듣기 힘들었다.

막막하던 차에 그는 루마니아 기록 필름 보관소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내리는 북한 아이들의 모습이 담긴 4분 30초짜리 영상을 발견했다.

전쟁고아 대부분은 1940∼1944년생으로 당시 10살 안팎에 불과했다.

공식 외교 문서에 따르면 루마니아, 폴란드, 불가리아, 헝가리, 체코 등 동유럽 국가로 떠난 북한 전쟁고아는 5천여명이다. 그러나 김 감독과 관련 전문가들은 적어도 1만명이 넘는다고 추정한다. 가장 많이 흘러갔을 거라 보는 러시아(구 소련)에서 기록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당시 북한은 각국마다 전쟁고아를 인솔하는 교육부 고위 간부를 파견했는데, 조정호 씨도 이들 중 한명이었다. 조 씨는 루마니아 조선인민학교 교장으로 부임해 아이들을 훈육했다. 김 감독은 "말이 교사였지 사실상 아이들의 생활을 모두 책임지는 아버지와 같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처음에는 오랫동안 재회하지 못한 부부 사연으로 시작했지만 취재가 거듭될수록 당시 한국전쟁 직후 북한 전쟁고아의 실상으로 주제가 확장되더라"며 "휴머니즘으로 시작해 잊힌 역사를 조명하는 리얼리즘으로 장르가 바뀐 셈"이라고 말했다.

"미르초유 씨가 이별한 이는 남편뿐만이 아니었어요. '엄마'라고 부르던 수백명의 북한 아이들이 1956년부터 갑자기 본국으로 송환됐죠. 북한이 동유럽에 퍼진 아이들을 불러 모은 거죠."

아이들이 북에 조기 송환된 것은 김일성이 동구권을 방문하는 동안 북한에서 김일성을 제거하려는 종파 사건이 벌어진 데다, 헝가리에선 반소련 봉기가 일어나면 북한이 체제의 문을 걸어 잠그려 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남편과 마찬가지로 연락이 두절됐다. 아이들이 서툰 루마니아어와 한글을 섞어 "보고 싶어요, 그리워요"라고 적어 보낸 편지는 다시 오지 않았다. 금방 따라가겠다던 남편의 소식도 끊겼다. 김 감독은 "강제 이혼이자 생이별"이라고 표현했다.

미르초유씨가 북한 아이들에게 받은 편지
[김덕영 감독 제공]

그는 최근 영화 개봉을 앞두고 이념 논쟁이 발생하는 것을 경계했다. "북한을 막연하게 낭만적으로 또는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많은 이유는 객관적인 자료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우리가 진영 논리를 걷어내고 북한을 마주했던 적이 얼마나 있었을까요? 북한의 실상을 냉철하게 이해하는 것을 돕는 영화로 봐주길 바랍니다."

그는 "영화가 정치적으로 편향됐다면 미국 뉴욕국제영화제나 프랑스 니스국제영화제 등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초청받을 수 있었겠냐"고 반문했다.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 예고편
[김덕영 감독 제공]

반세기 전 타국으로 떠난 북한 전쟁고아와 우리가 무슨 상관이 있냐는 의문에도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우리 역시 해외 입양 문제에 자유롭지 못하며, 먹고 살만해진 지금도 마찬가지"라며 "매년 100여명의 아동이 해외로 입양되는 것을 감안하면 자화상 같은 영화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만난 미르초유 씨는 아흔살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정정했다고 한다. 한국어를 배우고 루마니아어로 쓴 한국어 사전도 펴냈다고 김 감독은 전했다.

왜 공부하냐고 묻자 미르초유 씨는 "나중에 남편을 만났는데 내가 한국말을 잊어버리면 서운해하지 않겠냐"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는 "남편의 생사는 희박했지만 언젠가 다시 만나리라는 믿음이 강했다"라며 "남편을 다시 보기 전에는 죽을 수 없다는 간절함이 그의 젊음을 붙잡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고 떠올렸다. 영화는 한국전쟁 발발일인 25일 개봉된다.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
[김덕영 감독 제공]

shlamazel@yna.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