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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쿠바 이민 100년] ① 1천여명 후손들 "한-쿠바 수교 희망"
멕시코서 300여 명 쿠바로 이주…에네켄 농장서 일하며 독립운동
미국·멕시코로도 퍼져, 현지화 속에서도 한민족 정체성 지켜와
2021. 03. 25 by 강성철

[한인 쿠바 이민 100년] ① 1천여명 후손들 "한-쿠바 수교 희망"

멕시코서 300여 명 쿠바로 이주…에네켄 농장서 일하며 독립운동

미국·멕시코로도 퍼져, 현지화 속에서도 한민족 정체성 지켜와

 

 

매년 광복절을 기념하는 쿠바 한인 후손들
쿠바한인후손회는 매년 수도 아바나 소재 한인후손문화원에서 광복절 기념행사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쿠바 전역에 1천여 명이 사는 한인 역사는 10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구한말 멕시코의 에네켄(용설란) 농장으로 농업이민을 떠났던 한인 가운데 300여 명이 1921년 3월 25일 쿠바 마나티항에 도착한 것이 한인 쿠바 이주의 시작이다.

대부분 한인인 이들 가운데 멕시코인과 결혼해 낳은 후손과 현지인도 있었다. 선박용 밧줄 원료인 에네켄 농장의 혹독한 환경에서 벗어나 조금 더 나은 생활을 위해 쿠바 사탕수수 농장 취업을 희망했지만 현실은 더 혹독했다.

공교롭게도 1차 세계대전 후 경기침체로 설탕 가격이 폭락하면서 원료인 사탕수수 농장이 대부분 파산하면서 이들은 어쩔 수 없이 다시 에네켄 농장에서 일해야만 했다.

쿠바 한인들은 미국 신문이나 재미동포들과의 서신에서 3·1운동 후 본격화한 해외 독립운동 소식을 접했고 1923년 대한인국민회의를 결성해 독립운동에 나섰다.

대표적 인물인 임천택은 쿠바지회의 서기·총무·회장·고문을 역임하는 한편 국어학교와 청년학원을 열어 한국어를 가르치고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데 앞장섰다.

모국 독립 열정은 쿠바에 흩어져 사는 한인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원동력이 됐고, 농장에서 힘겹게 일해 번 돈의 일부를 내놓아 상하이(上海) 임시정부와 광복군의 독립운동 자금에 보탰다.

또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한글 교육기관을 세워 후손들에게 우리말과 역사도 가르쳤다.

하지만 1940년 한인들도 쿠바인으로 포함한 쿠바 헌법이 제정되면서 후손들의 현지화가 앞당겨졌다. 숫자적으로도 적은 이들은 현지인과의 결혼이 늘어났다.

한인 후손 중에는 쿠바 혁명에 가담하기도 했다. 대표적 인물로 임천택 씨의 아들인 헤로니모 임(임은조) 씨는 혁명정부에 인사·법무 담당을 거쳐 산업부 인사담당관으로 당시 체 게바라 산업부 장관과 함께 일하기도 했다.

2015년부터 독립유공자 후손 찾기에 앞장서 온 김재기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33명의 쿠바 한인 서훈자 가운데 지금까지 찾은 후손이 20명"이라며 "유공자 후손 찾기는 한인 역사 복원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정부가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늘날 한인들은 쿠바 전역으로 퍼져 살면서 다양한 직업에 종사한다. 후손들은 현지화해 한민족이라는 뿌리 의식이 약하지만 3세 이상의 고령 세대는 한민족의 전통을 지금도 지켜오고 있다.

'쿠바의 한인들'을 펴낸 한인 3세 마르타 임 김 씨는 "70대 이상의 한인이 사는 가정에서는 대부분 김치뿐만 아니라 간장도 담가 먹는다"며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지 못해도 광복절을 기억하며 지내고 있다"고 소개했다.

 

'쿠바 한인 100년의 발자취' 사진전
25일 서울 서초구 외교타운 국민외교센터에서 열린 쿠바 한인 이주 100주년 기념 '쿠바 한인 100년의 발자취' 사진전 개막식에서 관계자들이 테이프 커팅식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황경태 외교부 중남미 국장, 이성호 외교부 경제외교조정관, 엘리자베스 산체스 리베로 한인후손 대표, 김재기 전남대 교수. [외교부 제공]

 

 

◇ 미국·멕시코로 퍼져나가 '한-쿠바 수교' 희망

공식적으로 쿠바 한인 후손은 1천여 명이지만 미국·멕시코 등으로 이주한 후손까지 합하면 2천여 명이 훌쩍 넘을 것으로 한인후손회는 추산한다.

6세대까지 나왔고 한국에 거주하는 이들도 20여 명에 이른다.

한인 후손들의 직업은 대학교수·의사에서부터 택시 기사까지 다양하다. 사회주의 국가인데다 낙후한 경제로 대부분이 빈부격차 없이 어렵게 산다.

쿠바인과 결혼해 현지에 정착한 정호현 한인후손문화원 간사는 "한인들 가정마다 미국이나 멕시코에 이민한 친척이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쿠바는 주요 수입원이 관광산업인데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극심한 경기침체를 겪고 있다. 한인들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인데 그나마 친인척의 해외 송금으로 버틴다고 한다.

정 씨는 "일반 식료품 마트에서는 3∼4시간 줄 서는 건 기본이고 그나마 재고도 없어서 근근이 버틴다"며 "재고가 풍부한 달러 전용 마트가 있는데 친인척 송금이나 인터넷 결제가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한인후손회는 이민 100년을 기념해 기념식 등 다양한 행사를 열려고 했으나 코로나19로 모두 취소했다.

마르타 임 김 씨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거리두기로 한인후손문화원에 소수만 모여서 조촐하게 음식을 나눠 먹는 것으로 기념식을 대체했다"고 말했다.

한인사회에서는 최근 한국 이주 희망이 늘고 있다. 한류의 확산으로 모국이 선진국이라는 인식이 늘고 독립유공자 후손의 경우 한국 국적 취득도 가능하다는 것이 알려지면서다.

재외동포재단은 멕시코·쿠바 한인 후손 초청 직업연수를 추진해 후손들의 경제적 자립을 도왔고 이들 가운데 일부도 모국에 정착했다.

안토니오 김 쿠바 한인후손회장은 "쿠바는 북한과 수교를 맺고 있지만 한국 문화를 개방하는 등 교류의 문을 열고 있다"며 "우선 문화교류를 확대하고 장기적으로는 수교도 해서 후손의 모국 왕래가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쿠바 아바나 소재 한인후손문화원 전경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중미·카리브지역협의회가 주도해 쿠바 수도 아바나에 2014년 문을 연 한인후손문화원. [연합뉴스 자료사진]

 

wakar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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