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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3.25]한인 쿠바 이민 100년
[비바라비다] '최악 치명률' 멕시코서 코로나와 싸우는 한인의사 최수정
대형 사립병원 내과 전공의…"일가족 사망진단서 쓸 때 가슴 아파"
"1년간 집과 병원만 오가…한인사회 위해 봉사하고 싶다"
2021. 02. 08 by 고미혜

[비바라비다] '최악 치명률' 멕시코서 코로나와 싸우는 한인의사 최수정

대형 사립병원 내과 전공의…"일가족 사망진단서 쓸 때 가슴 아파"

"1년간 집과 병원만 오가…한인사회 위해 봉사하고 싶다"

 

[※ 편집자 주 : '비바라비다'(Viva la Vida)는 '인생이여 만세'라는 뜻의 스페인어로, 중남미에 거주하는 한인, 한국과 인연이 있는 이들을 포함해 지구 반대편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소식을 전하는 특파원 연재 코너입니다.]

 

 

멕시코서 코로나19와 싸우는 한인 의사 최수정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멕시코 멕시코시티의 대형 사립병원에서 1년간 코로나19와 맞서온 4년차 내과 전공의 최수정(29) 씨. 2021.2.8.


mihye@yna.co.kr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의 대형 사립병원 에스파뇰병원에서 근무하는 4년차 내과 전공의 최수정(29) 씨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의 싸움을 시작한 것은 1년 전이다.

멕시코에 코로나19 확진자가 처음 나온 건 지난해 2월 말이었지만, 인근 중국 대기업 때문에 중국인 환자가 많은 최씨의 병원엔 일찍부터 의심환자들이 찾아왔다.

3월부터 본격적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쏟아지기 시작하자, 일찌감치 코로나19 대응에 투입됐던 최씨가 코디네이터를 맡아 코로나19 병동 구축과 직원 교육 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지난 5일(현지시간) 병원에서 만난 최씨는 "체계가 잡히기 전엔 모든 게 어려웠다"며 "16시간까지 연속으로 근무해야 했고, 의료진뿐 아니라 침대 옮기고 청소하시는 직원분들께도 방호복 입고 벗는 법 등을 상세히 가르쳐드려야 했다"고 돌아봤다.

그렇게 시작된 코로나19와의 싸움은 1년째 지속됐다. 숨돌릴 틈도 없는 악화일로였다. 멕시코의 하루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 병상 포화도는 모두 최근에 최고치를 찍었다.

멕시코의 코로나19 사망자는 미국, 브라질에 이어 전 세계 3위고, 치명률(8.6%)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전 세계에서 멕시코보다 치명률이 높은 유일한 나라는 예멘인데, 예멘은 전체 확진자가 2천여 명으로 적어 28.9%라는 비현실적인 수치가 나왔다.

1년이 채 안되는 기간 동안 최씨도 무수한 사망자를 봤다. 멕시코에선 대부분이 확진 후에도 집에 머물다 중증이 되면 급히 병원을 찾는다.

"일가족이 차례로 돌아가시는 것을 여러번 봤어요. 똑같은 분이 그제는 할머니, 어제는 아버지, 오늘은 어머니의 사망진단서를 떼러 오시기도 하죠. 알고 지내던 환자분들이 손쓸 틈도 없이 돌아가시는 경우도 많아 가슴이 아픕니다."

세계 평균(2.2%)을 크게 웃도는 멕시코의 코로나19 치명률에 대해 최씨는 확진자가 과소 집계된 것 외에도 높은 기저질환 유병률, 지역·계층 간의 의료 불평등, 다소 느긋한 멕시코인의 성격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코로나19 치명률 세계 최고인 멕시코 묘지에 새로 조성된 묫자리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는 "의료 체계가 열악한 지방에선 의료붕괴가 일어나 집에서 돌아가시는 분들도 많다"며 "비만과 고혈압, 당뇨 인구도 많다. 중증으로 가는 환자의 80%가 비만"이라고 말했다.

멕시코는 코로나19로 희생된 의료진 수에서도 전 세계 1위(작년 9월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조사)를 기록한 곳이다. 마스크와 장갑 등 기본 보호장비도 충분치 않아 의료인들의 시위가 잇따르기도 했다.

멕시코시티 빅5 사립병원 중 하나로 꼽히는 최씨의 병원에선 장비 부족은 없었으나, 많은 의료진이 감염됐다. 고령자나 기저질환 의료진이 코로나19 진료에서 배제돼 최씨 같은 젊은 의사들에게 일이 몰렸는데 최씨는 다행히 감염을 피했다.

"같은 멕시코에 계신 부모님도 안 찾아뵙고 1년간 집과 병원만 오가면서 철저히 사회와 격리된 생활을 했어요. 방호복을 입고 있는 12시간 동안 화장실도 안 가고 물도 안 마셨죠."

지난달 화이자 백신 1차 접종을 마친 최씨는 인터뷰 중에도 사진 찍을 때를 제외하곤 마스크를 벗지 않으며 긴장을 놓지 않았다.

멕시코에선 동포와 주재원 등 한인들의 코로나19 감염과 사망도 잇따르고 있는데, 병원을 찾는 절박한 한인 환자들에게 최씨는 매우 든든한 존재다.

서울서 태어나 중학교 때 가족과 함께 멕시코로 이주한 그는 주로 부모님 또래인 한인 환자들을 만나면 최선을 다해 통역이나 병상 확보를 도와준다. 통원 환자에게도 수시로 전화해 산소포화도 등을 체크한다.

"멕시코 의료체계가 자국민에겐 나쁘지 않은 편이지만, 아무래도 외국인이 접근하기엔 한계가 있어요. 재외국민이 해외에서 받는 의료혜택은 국력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의료기관과의 양해각서(MOU) 체결 등을 통해 안정적으로 병상을 확보하면 좋을 것 같아요."

코로나19를 계기로 한인 사회에 기여할 방법을 고민하게 됐다는 최씨는 주멕시코 한국대사관에도 봉사 의사를 밝히고 논의 중이다.

그는 "어서 코로나19 위기가 끝났으면 좋겠지만, 그때까진 힘닿는 대로 봉사하고 싶다"며 "한국의 의료와 K방역을 직접 배울 기회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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