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일간 동해 찾기 캠페인, 뉴질랜드 모든 교민이 이뤄낸 성과"
"40일간 동해 찾기 캠페인, 뉴질랜드 모든 교민이 이뤄낸 성과"
  • 오수진
  • 승인 2019.10.0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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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오클랜드 한인회 변경숙 회장 인터뷰
1980년 뉴질랜드 정착…"이민자 가족 갈등 해결에 노력할 것"

"40일간 동해 찾기 캠페인, 뉴질랜드 모든 교민이 이뤄낸 성과"

뉴질랜드 오클랜드 한인회 변경숙 회장 인터뷰

1980년 뉴질랜드 정착…"이민자 가족 갈등 해결에 노력할 것"

뉴질랜드 오클랜드 한인회 변경숙 회장
(서울=연합뉴스) 오수진 기자 = 2019 세계한인회장대회 참석차 서울을 찾은 뉴질랜드 오클랜드 한인회 변경숙 회장의 모습. [2019.10.4]

(서울=연합뉴스) 오수진 기자 = 다인종·다문화의 국가, 사람보다 양이 15배 많이 사는 평화로운 섬나라 뉴질랜드.

이곳에서 지난 7월 오클랜드 한인회장에 취임한 변경숙 회장(67)은 뉴질랜드 한인사회의 살아있는 역사로 통한다.

지난 1980년 이곳에 정착한 그는 40년간 뉴질랜드 공공기관에서 한국인을 위한 각종 통역을 제공했고 한인들에게 어려움이 생기면 달려가 해결사 노릇을 자처했다. 그가 뉴질랜드에 온 1980년은 뉴질랜드 내 한인 정식 이민이 시작된 첫해였다.

영국계 뉴질랜드인과 결혼한 변 회장은 3남 1녀를 키우며 남편과 함께 뉴질랜드 한인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 2005년 뉴질랜드 정부가 이 같은 공로를 인정해 '영국여왕공로훈장'(Queen's Service Medal)을 수여하기도 했다.

지난 2일 개막한 재외동포재단 주최 2019 세계한인회장대회 참석차 서울을 찾은 변 회장을 5일 만났다.

그는 "초기 이민자였기 때문에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연스럽게 한인들을 도울 수밖에 없었다"며 "오랫동안 한인들과 맺어온 관계 덕분에 한인회장을 맡을 수 있게 됐다"고 겸손해했다.

현재 뉴질랜드에는 약 3만명의 한국인이 살고 있는데 이 중 80%는 오클랜드에 있다. 오클랜드 한인들의 절반 이상은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직이나 각 업종의 중간관리자(Manager)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차분한 오클랜드 한인사회에 최근 큰 경사가 하나 생겼다. 지난해 오클랜드 한인회가 진행한 '동해 찾기 캠페인'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됐기 때문이다.

동해 찾기 캠페인은 지난해 10월 17일 한 교민이 오클랜드 전쟁 기념 박물관에 있는 지도에 동해가 '일본해'(Sea of Japan)로 표기됐다는 사실을 오클랜드 한인회에 알려온 직후부터 시작됐다.

변경숙 오클랜드 한인회장
(서울=연합뉴스) 오수진 기자 = 오클랜드 한인회가 지난해 진행한 '동해 찾기 캠페인'을 설명 중인 변 회장의 모습. [2019.10.4]

오클랜드 한인회와 주 오클랜드 대한민국 분관은 다음날 바로 박물관 담당자에게 대한민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 해역을 일본해 대신 '동해/일본해'(East of Sea / Sea of Japan)으로 병기해달라고 메일을 보냈다.

10월 말부터는 오클랜드 한인회가 앞장서 뉴질랜드 전 교민을 대상으로 서명운동도 시작했다.

변 회장은 "전쟁 기념 박물관 담당자들이 관련 문제에 대해 잘 알지 못해 이런 일이 발생했다"며 "키위(뉴질랜드 현지인을 일컫는 말)들은 합리적이라 제도와 절차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잘못을 바로 인정하고 수정한다. 이 때문에 동해 병기도 빠르게 일이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같은 지도 내 대한민국의 공식 명칭이 'KOREA'로만 돼 있어서 이 부분도 'THE REPUBLIC OF KOREA'로 수정했다"며 "40일간 진행된 동해찾기 캠페인은 뉴질랜드 모든 교민이 이뤄낸 성과"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변 회장은 1975년 중앙대학교 유아교육학과를 졸업하고 3년여간 육영재단이 발행하는 어린이·청소년 잡지인 '어깨동무', '꿈나라' 편집기자로 일했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나 전문직 여성으로 일하던 변 회장의 뉴질랜드 정착기는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

남편인 로이 윌슨 씨는 변 회장이 뉴질랜드에 오기 전부터 '한국인 선원들을 돕는 뉴질랜드인'으로 유명했다. 변회장과 윌슨 씨의 결혼도 원양 어선을 타고 한국과 뉴질랜드를 오가던 한국인 선원이 맺어줬다.

그는 "웰링턴 우체국에서 근무하던 남편은 이곳에 정박한 한국인 선원들의 언어 문제를 해결해주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며 "남편과 친하게 지내던 한국인 선원이 '한국인 여자를 소개시켜주겠다'면서 자신의 아내 친구를 연결해줬는데 그게 바로 나였다"고 회상했다.

사실 윌슨 씨는 당시 한국인 여성을 소개해주겠다는 한국인 선원에게 "결혼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며 완곡하게 거절했다고 한다. 하지만 영어와 서양문화에 서툰 한국인 선원은 그의 이런 말을 단순한 겸손의 표현이라고 생각했고 그와 결혼할 여성을 찾아 달라고 본국에 여러 차례 전보를 보냈다고 한다.

변 회장은 "사실 저도 남편이 보낸 첫 편지를 받고 아는 사람에게 부탁해 '당신이 찾는 그런 여자는 한국에 없다. 올바른 사고를 가진 한국 여성은 국제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써서 보내 달라고 했다"며 "그런데 대체 그분이 영어를 어떻게 썼는지 내 남편은 그 편지를 받고 '이 여성이 나에게 관심이 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고 웃었다.

몇 차례 편지를 주고받은 윌슨 씨는 변 회장과 결혼을 결심하고 1979년 말 김포공항을 통해 한국에 입국해 1980년 서울에서 변 회장과 결혼식을 올렸다. '뉴질랜드 남성과 한국인 여성의 결혼식'은 당시 워낙 희귀한 일이라 주한 뉴질랜드 대사관 직원이 총출동해 지켜볼 정도였다고 한다.

변 회장은 2년간의 임기 간 뉴질랜드 이민 1세대들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싶다고 강조했다.

한국 문화와 뉴질랜드 문화 사이에서 여전히 혼란스러워하는 이민 1세대들은 자신의 자녀들과 갈등을 빚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저처럼 다문화 배경을 지닌 가정을 꾸린 이민자도 뉴질랜드 사회 적응이 어려웠는데 이민 1세들은 자녀들과도 가치관이 달라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노년기에 접어든 이민 1세대들을 위한 한국인 타운도 건립하고 싶다"고 바랐다.

sujin5@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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