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석 작가 "카메라에 담은 고려인…슬픔 아닌 기쁨 더 많았죠"
김진석 작가 "카메라에 담은 고려인…슬픔 아닌 기쁨 더 많았죠"
  • 이상서
  • 승인 2021.09.0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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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 사진집 펴낸 '길 위의 사진 작가' 인터뷰

김진석 작가 "카메라에 담은 고려인…슬픔 아닌 기쁨 더 많았죠"

고려인 사진집 펴낸 '길 위의 사진 작가' 인터뷰

 

 

카메라와 사진집, 그리고 사진작가
(서울=연합뉴스) 황광모 기자 = '길 위의 사진가'라는 별명을 가진 김진석(48) 사진작가가 2일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앞두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 = "한국에서 촬영 나왔다고 하니 한 고려인 할머니께서 '사진 찍는 거 싫어"라고 하세요. 왜냐고 물었죠. '다들 나를 슬프게만 찍어서 안 좋다'고 답하시더라고요."

'길 위의 사진가'라는 별명을 가진 김진석(48) 사진작가는 2019년 초부터 1년 6개월에 걸쳐 동유럽과 러시아, 독립국가연합(CIS) 지역 11개국 20여개 도시를 돌면서 4천여 명의 고려인을 만났다.

최근 펴낸 사진집 '고려인, 카레이츠'에는 그가 마주친 이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겼다.

 

고려인의 애환을 카메라에 담다…'고려인, 카레이츠' 발간
큐리어스 출판사 제공

 

김 작가는 5일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카메라 앞에 선 고려인이 가장 많이 드러낸 감정은 슬픔이 아닌 기쁨이었다"고 말했다.

2016년 '고려인 삶을 주제로 촬영을 해달라'는 카자흐스탄 정부의 부탁을 받은 것을 계기로 그는 고려인과 연을 맺었다. 수도 누르술탄 등에서 머물면서 만든 작품은 이듬해 카자흐스탄 국립박물관에 전시됐다.

그러나 두 달이라는 짧은 시간이 못내 아쉬웠다. 2017년부터 대통령 비서실 행정관으로 근무하며 대통령 전속 사진을 담당했던 김 작가는 2018년 8월 청와대를 나오면서 '고려인이 사는 모든 곳을 직접 가보자'고 결심했다.

 

러시아 사할린에 살고 있는 유성철(64)씨 가족의 설 명절 차례.
김진석 작가 제공

 

"홍범도 장군 묘역이 있는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 갔는데 전혀 관리가 안 된 상태였어요. 잡풀도 무성하고 문도 잠겨있고…. 화도 나고 죄송스러웠습니다. 고려인 역사가 이어졌다면 그러진 않았을 텐데 생각이 들었어요."

김 작가는 "정확한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직업적 소명 의식이 컸다"며 "사실 역마살이 좀 낀 팔자이기도 하다"고 웃었다.

 

타지키스탄 두산베에서 딸 김 또냐와 함께 살고 있는 최 파밀리아(82) 할머니.
김진석 작가 제공

 

1930년대 겪은 강제 이주와 공산주의 체제, 실향민의 설움 등을 떠올리며 김 작가 역시 고려인을 슬픔이라는 렌즈를 끼고 바라봤다.

선입견과는 반대로 그가 마주했던 것은 행복한 표정이었다.

각국 인구의 1%도 미치지 못하는 소수민족이지만 대부분 생활 수준이 높고 교육열도 강했다. 미나리처럼 어디서나 강인하게 뿌리내리고 사는 우리 민족의 유전자(DNA)가 이어졌다는 사실을 체감할 정도였다.

 

카자흐스탄 김 드미트리 씨 가족
김 드미트리씨는 보안 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김진석 작가 제공

 

김 작가는 "이제까지 고려인을 찾은 많은 미디어는 그들의 한(恨)을 끄집어내려고만 했다"며 "그러나 어찌 사람 인생에 아픔만 있겠냐"고 반문했다.

이어 "대부분의 삶이 그렇듯 슬픔보단 기쁨과 즐거움, 다양한 재미가 녹아들어 있었다"며 "모국에서 나를 찍기 위해 찾아왔다는 감사함도 함께 담겨 있었다"고 기억했다.

 

카자흐스탄 고려인 어린이 무용단 '비둘기'
김진석 작가 제공

 

잊지 못할 고려인도 많이 만났다. 표정 하나에 한 세기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던 이들이다.

벨라루스에 사는 고원호 씨는 자신을 제주 고씨라고 소개하며, 어머니가 해녀라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가진 어른이었다.

키르기스스탄 고려인협회장을 지낸 최 발레리 씨는 자국에서 알아주는 건설사 대표이자 손꼽히는 부자였다. 한편으로는 동네 아저씨처럼 소탈했다.

김 작가는 "한국 사람을 만났다는 사실만으로 크게 기뻐할 정도로 향수(鄕愁)가 컸던 분이 바로 최 씨"라며 "꼭 한 번 다시 뵙고 싶었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돌아가셨다"고 안타까워했다.

 

우즈베키스탄 쌍둥이 자매
타슈켄트에서 살고 있는 쌍둥이 자매. 송 아나스타시아, 송 알리사(14). 김진석 작가 제공

 

강제 이주 당시 선인들이 겪었던 고통을 조금이라도 이해해보고자 비행기 대신 열흘 동안 시베리아 열차를 타고 이동한 적도 있다.

그는 "나야 침대칸에서 살았으니 망정이지 그때는 화물칸에 한 달 넘게 수십 명이 한데 모여 버틴 거 아니냐"며 "여정은 말 그대로 고통의 시간이었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김 작가는 사진집의 출간이 마침표가 아닌 시작점이길 바란다.

 

단지동맹비와 북두칠성
러시아 연해주의 크라스키노. 안중근 의사의 단지동맹비 위로 수많은 별들이 떠있다. 그중 안중근 의사의 어릴적 아명 안응칠을 상징하는 북두칠성이 자리 잡고 있다. 김진석 작가 제공

 

그는 "우리 사회와 고려인 동포가 좀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며 "독자들이 고려인을 이방인이 아닌 한 명의 똑 같은 사람으로 바라봐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책에 등장한 이들을 기점으로 다시 취재를 이어나가고 싶다"며 "고려인 책 보내기 운동도 함께 진행해 나갈 것"이라고 귀띔했다.

 

'길 위의 사진가' 김진석 작가
(서울=연합뉴스) 황광모 기자 = '길 위의 사진가'라는 별명을 가진 김진석(48) 사진작가가 2일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shlamaz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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