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청소년대표 출신 농구 유망주 "태극마크 다는 게 꿈∼"
필리핀 청소년대표 출신 농구 유망주 "태극마크 다는 게 꿈∼"
  • 이상서
  • 승인 2021.07.04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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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청소년대표 출신 농구 유망주 "태극마크 다는 게 꿈∼"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 = 최근 국내 농구팬 사이에서 화제에 오른 영상이 하나 있다. 지난 시즌 KBL 신인상 수상자인 서울 SK 오재현과 이벤트성 대결을 치른 필리핀 출신 아마추어 선수의 모습이다.

필리핀 청소년 국가대표 출신으로 현재 한국에서 농구선수의 꿈을 이어가고 있는 사무엘 준틸라. [본인 제공]

하프라인 근처에서 3점 슛을 넣고, 수비를 제치고 재 빠르게 골 밑까지 돌파하는 그의 활약을 담은 영상은 조회수 15만회를 넘길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주인공은 필리핀 청소년 국가대표 출신으로, 현재 한국에서 농구선수의 꿈을 이어가고 있는 사무엘 준틸라(20) 씨다.

그는 4일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상황이 어려워도 프로농구선수가 되겠다는 목표를 포기한 적이 없었다"며 "언젠가는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꿈도 이루고 싶다"고 말했다.

농구는 필리핀에서 복싱과 함께 인기 스포츠로 꼽힌다. 열성 팬이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그 역시 4살부터 자연스럽게 농구공을 잡았다.

초등학교 4학년이던 2013년, 부모님을 따라 처음 한국에 온 그에게 농구는 타국 생활에 적응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줬다.

마침 농구부로 유명한 서울 용산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농구선수의 기대를 품기도 했다. 그러나 넉넉치 못한 가정 형편 탓에 정식 부원으로 가입하지는 못했다.

그는 "매달 30만 원씩 내야 하는 회비 부담이 컸다"며 "타지에서 힘들게 일하시는 부모님에게 손을 벌릴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학생 선수로 뛰지는 못했지만 얻은 점도 많았다. 친구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극도 받고, 때로는일대일 대결도 하면서 실력과 꿈을 함께 키워갔다.

2014년부터는 다문화 어린이 농구단 '글로벌 프렌즈'에 소속돼 여러 아마추어 대회에 출전해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특히 2017년 11월 열린 서울시민 체육대회 농구 종목에 용산구 대표로 나가 생애 처음으로 우승컵을 들어 올리기도 했다.

당시 사무엘을 지도했던 천수길 한국농구발전연구소장은 "개인기 위주인 필리핀 농구 특성상 팀플레이에 단점이 있는데 생각보다 빨리 적응하고 보완해 나갔다"며 "성실하고 재능도 있는데 주변 상황 탓에 날개를 펴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2019년에는 부모님과 함께 귀향한 뒤 고등학교 대회에 출전해 마닐라 지역 우승을 차지하며 청소년 국가대표에 뽑히기도 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필리핀프로농구(PBA) 입성도 가능하리라 믿었다.

그러나 지난해 터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가족이 운영하던 식당 경영이 어려워졌고,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부모님의 경제적 부담을 덜고자 사무엘 군 역시 1년째 경기도 일대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일주일에 6일을 오전 4시 30분 일어나 오후 6시에 퇴근하는 고된 일상이지만, 그래도 하루의 끝은 농구장에서 매듭을 짓는다고 한다.

사무엘 준틸라의 3:3 경기 모습. [유튜브 캡처]

"연습할 시간이 부족한 게 가장 아쉬워요. 일과 병행하다 보니 몸도 고되고요. 그래도 기량을 더 키워서 언젠가는 KBL 신인 드래프트에도 나가고 싶어요. 상황이 썩 긍정적이진 않지만 제가 혼신의 힘을 다해 노력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집 주변에 농구 골대가 없어서 마포 한강 공원까지 가야 하는 환경이지만 어디서든 연습할 수 있다면 감사하다는 마음이다.

그는 "매일 고생하는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농구선수로 성공하고 싶다"며 "언젠가는 귀화선수들처럼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뛰겠다"고 말했다.

이어 "롤모델은 서울 SK김선형 선수인데, 인기스타이면서도 겸손한 태도를 가졌기 때문"이라며 "나도 꿈을 이루더라도 항상 감사한 마음을 잃지 않고 몸을 낮추는 스타가 되겠다"고 웃어보였다.

shlamaz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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