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한문서' 후지주택과 싸운 재일한인 "5년간 바뀐게 없다"
'혐한문서' 후지주택과 싸운 재일한인 "5년간 바뀐게 없다"
  • 이세원
  • 승인 2020.07.15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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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것은 이상하다고 말하고 스스로 역사 생각해야"

'혐한문서' 후지주택과 싸운 재일한인 "5년간 바뀐게 없다"

"이상한 것은 이상하다고 말하고 스스로 역사 생각해야"

 

 

도쿄에서 벌어진 혐한 시위 장면
[교도=연합뉴스 자료사진]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혐한(嫌韓) 문서를 사내에 배포한 후지주택과 법정 투쟁을 벌인 재일 한국인 3세 여성(이하 A씨로 표기)은 "판결이 나올 때까지 5년이나 되는 시간이 있었는데 어느 것 하나 바뀌지 않았다"고 회사 측의 태도를 평가했다.

회사 측의 행위가 불법임을 인정한 1심 판결을 계기로 연합뉴스와의 화상 인터뷰에 응한 A씨는 후지주택의 행위에 관해 "왜 그러는 것인가"하는 의문과 "무섭다"는 두려움을 함께 느꼈다고 소감을 밝혔다.

A씨는 후지주택이 "타인에게 집, 살 곳을 제공함으로써 유지되는 회사다. 손님 중에는 중국인도 있고 나처럼 재일 한국·조선인도 있으며 최근에는 (한반도 출신임이 드러나는) 실명을 쓰는 사람도 꽤 있다. 그런 사람들을 상대하고 있는데…"라며 회사의 모순된 태도를 지적했다.

 

후지주택 홈페이지의 '경영이념' 코너에 이마이 미쓰오(今井光郞) 후지주택 회장의 사진과 함께 "손님의 기대에 부응해 신뢰를 쌓는다. 성장의 열쇠는 '인재'에 있다"는 메시지가 표시돼 있다. [후지주택 홈페이지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그는 재판에서 쟁점이 된 사건이 "헤이트(혐오·증오) 문제도 있지만, 노동자와 고용주 사이의 문제도 있고 일본의 판결치고는 매우 힘을 내서 써 준 것"이라면서도 "역으로 말하면 '현재 일본의 한계'라는 생각이 든다"고 평가했다.

1심을 담당한 오사카(大阪)지방재판소 사카이(堺)지부는 사내에 혐한 문서를 배포하거나 종업원이 교과서 전시회에 가서 우익 교과서 채택을 위해 설문을 작성하도록 권장한 행위 등이 위법이라고 판결하고 110만엔(약 1천240만원) 배상을 명령했다.

하지만 혐한 문서가 "한국 국적을 가진 원고(A씨)를 구체적으로 염두에 두고 기술된 것이 아닌 것은 명백"하다며 그 자체가 "원고 개인을 향한 차별적 언동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일본 오사카지방재판소(지방법원) 사카이(堺)지부가 이달 2일 선고한 손해배상청구 소송 판결문(사본)에 후지주택이 사내에 배포한 문서의 내용이 열거돼 있다. 후지주택은 "자이니치(在日, 재일한국·조선인을 의미)는 죽어라"(화면 위쪽 붉은 선), "종군 위안부 강제연행은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며 실제는 종군위안부라는 것은 급여가 높은 전시 매춘부다"(화면 아래쪽 붉은 선)는 등의 내용이 담긴 문서를 사내에 배포한 것으로 확인됐다.

 

후지주택이 배포한 문서에는 한국인을 "야생동물"에 비유하는 글이 적혀 있었다.

또 "위안부들은 통상 독실이 있는 대규모 2층 가옥에서 숙박하고 생활하면서 일을 했다. 그녀들의 생활 모습은 사치스럽다고도 할 수 있을 정도"라는 등의 내용도 담겨 있었다.

A씨는 이런 판단이 자신이 느낀 것과는 동떨어졌다고 반응했다.

그는 "나는 계속 엄청나게 상처를 받아 왔다. 내 이름이 나와 있지 않으니 괜찮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비방·증오의) 대상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A씨의 소송을 대리한 무라타 고지(村田浩治) 변호사는 "일본의 회사에 '회사의 말에 절대 거역하지 말라'는 분위기가 많은 가운데 회사가 생각하는 방향이나 사상·신조를 절대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줬다"고 판결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다만 차별적인 언론 일반을 허용하지 말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차별적 언사가 (재일한국인·조선인 등) 그런 속성을 지닌 사람들 일반에 대한 '즉각적인 차별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평가한 점은 불충분하다"고 한계를 지적했다.

 

A씨를 대리한 무라타 고지 변호사가 연합뉴스와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다. [화상회의 서비스 '줌' 화면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A씨를 대리한 변호사들은 명예훼손 여부를 다투는 사건에서처럼 개인을 특정하지 않더라도 일정한 속성을 지닌 집단(민족, 인종)의 사회적 평판을 깎아내리면 그 자체가 위법이라고 주장했으나 1심 법원은 이런 견해를 수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후지주택은 '위법 행위'라는 판결을 받고도 반성하지 않고 있다.

1심 판결 이후에도 A씨를 고통스럽게 하는 문서 배포를 반복했으며 '언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최후까지 재판에서 싸워 이겨내겠다'는 뜻을 최근 홈페이지에서 표명하고 항소장을 제출했다.

A씨는 자신의 인권을 짓밟는 회사에 변함없이 출근하고 있다.

회사에 다니며 회사를 상대로 싸워야 하는 매우 어려운 상황인 셈이다.

하지만 그는 "두 번 다시 이런 괴로움을 겪던 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으며 그런 경험을 하도록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많이 있다. 절대 그만둘 마음이 없다"고 불굴의 의지를 표명했다.

회장이 나서서 한국 혐오를 대놓고 부추기고 있는 만큼 동료들이 공개적으로 지지의 뜻을 표명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응원의 뜻을 살짝 전하는 이들도 있다고 A씨는 덧붙였다.

그는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차별·혐오 표현)나 혐한 시위 등을 없애기 위해서는 "조금씩이라도 좋으니 한명 한명이 이상한 것은 이상하다고 말해야 한다"며 당부했다.

A씨는 "강자가 말하면 '그런 역사도 괜찮다'고 해버리는 경향이 있다"고 일본 사회의 분위기를 지적하고서 "좀 더 확실하게 스스로 역사를 생각해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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