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한문서' 피소 日기업 "온정을 원수로 갚는다"며 피해자 왕따
'혐한문서' 피소 日기업 "온정을 원수로 갚는다"며 피해자 왕따
  • 이세원
  • 승인 2020.07.15 07: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재일한국인 여성 비난하는 소감문 배포…'돈 받고 퇴직' 회유도
법원 "재판받을 권리 억압…자유로운 인간관계 방해" 판시

'혐한문서' 피소 日기업 "온정을 원수로 갚는다"며 피해자 왕따

재일한국인 여성 비난하는 소감문 배포…'돈 받고 퇴직' 회유도

법원 "재판받을 권리 억압…자유로운 인간관계 방해" 판시

욱일기를 들고 있는 혐한 시위대
[연합뉴스 자료사진]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도를 넘은 혐한(嫌韓)문서를 배포한 일본 부동산업체 후지주택은 재일 한국인 여성(이하 A씨로 표기)이 소송을 제기하자 이를 비방하는 문서를 사내에 배포하는 등 조직적으로 고립시키려고 한 것으로 확인됐다.

후지주택 종업원인 A씨가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판결문을 연합뉴스가 15일 확인해보니 이 업체는 피소된 후 A씨와 관련한 91건의 글을 8일에 걸쳐 사내에 배포했다.

사건에 관한 직원들의 감상 또는 소송 사실을 보도한 기사에 붙은 댓글 등을 소개하는 형식이었는데 A씨를 일방적으로 비난·매도하는 내용이 많았다.

예를 들어 2015년 9월 7일 사내에 배포된 문서는 "특별히 문제가 없는데 문제 삼지 말라. 완전히 제정신이 아니므로 귀국하면 될 것이니까"라는 댓글을 소개했다.

같은 날 "온정을 원수로 갚는 멍청한 놈에게 분노를 느끼면 그런 자를 부추기는 변호사와 매스컴에 분노를 넘어선 감정을 느낀다. 한층 더 당사 사원이라는 것에 자긍심을 가지고 당당하게 과(課) 구성원들이 대응할 수 있도록 결속을 다지겠다"는 한 중간 관리자의 업무 메모가 문서로 공유되기도 했다.

소송 낸 재일한국인 여성 비방한 후지주택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재일 한국인 여성이 후지주택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1심 판결문에 회사 측이 배포한 문서의 내용이 기재돼 있다. 회사 측은 '완전히 제정신이 아니다'(위쪽 붉은 밑줄), '온정을 은혜로 갚는 바보' 등의 표현으로 여성을 비하하는 내용이 담긴 문서를 배포한 것으로 드러났다. 2020.7.15

다른 중간 관리자는 "화가 나는 이야기다. 한 명의 오해·곡해로 전사원에 큰 폐를 끼치고 있다. (중략) 그런 사실이 없다는 것은 후지주택 전 사원이 자신을 가지고 증명할 수 있다"는 메일을 보냈는데 회사 측은 이런 내용도 배포했다.

후지주택은 "그 파트타임 여성분은 매우 오해하고 있으면 피해망상이 너무 심한 분이라고 생각한다"며 "개인 공격이나 차별을 할 사원은 후지주택 사원 중에는 1명도 없다는 것은 확신하고 있다"는 사원 의견도 문서로 돌렸다.

A씨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겪은 피해를 회사가 조직적으로 부인하고 있는 것처럼 느낄만한 내용이다.

재판을 계속할 의지를 꺾기 위한 집요한 공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A씨는 소송에 앞서 혐한 문서 배포나 우익 성향의 교과서 채택을 목표로 한 교과서 전시회 참가 권유를 중단할 것을 회사에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는 이후 오사카(大阪)변호사회에 인권 구제를 신청했는데 회사 측은 문제를 개선하기는커녕 300만엔(약 3천400만원)을 줄 테니 퇴직하라며 회유하기도 했다.

A씨는 압박에 굴하지 않고 소송을 제기했고 약 5년에 걸친 법정 투쟁 끝에 110만엔 배상 판결을 최근 받았다.

사건을 심리한 오사카지방재판소(지방법원) 사카이(堺)지부는 혐한 문서 배포와 우익 교과서 채택을 위한 전시회 참가 권유, A씨의 소송 제기를 비난하는 문서 배포가 모두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특히 A씨를 압박한 문서에 대해서는 "원고(A씨)를 사내에 고립시킬 위험을 높이는 것이며 원고의 재판받을 권리를 억압함과 더불어 직장에서의 자유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할 자유나 명예감정을 침해하는 것이라서 위법"이라고 판시했다.

하지만 후지주택은 판결에 승복하지 않고 항소했다.

1심 판결 이후에도 사내에서 A씨에게 고통을 주는 문서 배포 행위는 이어졌다.

sewonlee@yna.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