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의 집]① "바람 불면 멀미…" 파도치는 양식장 위의 집
[이주노동자의 집]① "바람 불면 멀미…" 파도치는 양식장 위의 집
  • 홍덕화
  • 승인 2020.05.1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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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의 집]① "바람 불면 멀미…" 파도치는 양식장 위의 집

[편집자 주: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은 인권과 복지의 사각지대에 산다고 한다. 특히 '본국보다 나은' 돈벌이를 위해 불법체류자의 길을 택한 이주 노동자들의 삶은 더 고단하고 때로 비참합니다. 처참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법한 생활환경을 감내해야 하고, 임금체불과 폭행, 성폭행 등 범죄에 노출되어도 목소리를 내는 순간 받을 불이익 때문에 숨죽입니다. 연합뉴스는 뉴스통신진흥회 제2회 탐사·심층·르포취재물 공모 최우수작인「비닐하우스·컨테이너 속에 갇힌 외국인 노동자의 주거권」(세명대학교 단비뉴스 특별취재팀 김지연, 이정헌, 최유진, 홍석희)을 재구성해 이주노동자의 주거 실태에 관한 4편의 기사를 송고합니다.

바다 위 가두리 양식장의 이주노동자 숙소용 가건물
전남 여수시 남면에 있는 한 섬의 바지선 위에 이주노동자 숙소와 창고로 쓰는 컨테이너가 설치되어 있다. [사진=단비뉴스 특별취재팀 최유진]

(서울=연합뉴스) 탐사보도팀 = "바람 불면 멀미 나서 많이 힘들어! (머리를 가리키며) 천장 높이 작아, 위에 공간 많이 없어. 키가 머리 위에 닿았어."

스리랑카 출신의 30대 이주노동자 안바디(가명)씨와 그의 동료는 지난 2월 8일 전남 여수시 연등동에 있는 사단법인 여수 이주민센터에서 단비뉴스 특별취재팀에 자신들의 주거 여건을 이렇게 설명했다.

바다 한가운데 있는 가두리양식장의 가건물이 그들의 주거 공간이다. 배를 타지 않고는 들어갈 수도 나올 수도 없는 곳에 7명이 함께 살고 있다고 한다. 응급환자가 나오거나 불이라도 나면 속수무책으로 치명적인 상황을 맞을 수밖에 없다.

안바디씨는 "센 바람에 컨테이너가 흔들리면 멀미가 나서 많이 힘들다. 잠에서 깬 적도 여러 번"이라고 말했다.

여수 이주민센터의 김덕영 실장은 "너울이 치면 그냥 흔들리는 게 아니라 위아래로 진동이 올 정도"라며 "차라리 배가 움직이면 나은데 '가두리 양식장 집'은 고정된 상태에서 계속 롤링만 하기 때문에 멀미가 더 심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가두리 양식장 위 이주노동자 숙소
전남 여수시 남면의 한 섬에서 가두리 양식장에 배를 댄 채 물고기에게 먹이를 주는 이주노동자. 오른쪽 창문이 두 개 있는 컨테이너 숙소가 보인다. [사진 = 단비뉴스 특별취재팀 최유진]

취재진은 지난 1월 10일부터 3월 27일까지 경기도 포천과 이천, 전남 여수 등 전국 7개 사업장에서 외국 노동자 31명을 만나 작업장 및 주거 환경 등에 대한 애로를 들었다.

이들 중 다수는 숙소의 화장실 부족, 냉·난방시설 부재, 생산라인의 기계 소음, 농약 및 화학물질 중독 등 불편을 호소했다. 일부 이주 노동자는 안전사고에 극도로 취약한 가건물 숙소에서 목숨을 걸고 살아간다고 털어놓았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미얀마 출신 이주 노동자는 "기숙사가 작업장하고 너무 가까워 야간작업하면 잠을 못 잔다"고 했다.

숙소가 공장 안에 있어 너무 시끄럽고 화학물질 냄새로 고통스럽다는 몽골 출신 제조업체 종사자(남성)의 호소도 극도로 열악한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숙소 실태를 웅변했다.

경기도 이천의 공장 내 컨테이너 숙소에서 지내는 네팔 출신의 니마(가명·30대 초반)씨는 숙소 문제로 업주와 갈등을 빚다가 결국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사업주와의 마찰을 각오하고 언론에 제보하게 됐다고 한다.

비전문취업(E-9) 비자로 4년 6개월간 한국에서 일해온 그는 "컨테이너 숙소가 너무 불편해 참을 수 없었다. 겨울이면 몹시 춥고 여름에는 너무 더운 데다 차량 운행 소음으로 잠도 못 잘 지경인데도 월급에서 기숙사비 명목으로 월 13만9천600원을 빼간다"고 불평했다.

농촌 지역에는 작물을 키우기 위해 설치한 비닐하우스에서 거주하는 이주노동자가 부지기수이다. 경기도 포천시의 채소농업 단지 비닐하우스에 살며 일하는 캄보디아 출신의 40대 여성 이주노동자 쏙(가명)씨는 한 달에 이틀만 쉬어야 하는 상황도 힘들지만 숙소 안전 문제가 더욱 시급하다고 했다.

열악한 주거 환경 속 이주 노동자들은 화재 등 상황에서 목숨을 잃거나 다치는 경우도 허다하다. 실제로 지난 2017년 12월 부산광역시 사상구 학장동의 공장 컨테이너 숙소에서 잠자던 32세의 베트남 이주 노동자는 전열기 과열 화재로 숨졌다.

마석가구단지의 공장 화재는 언론에 보도된 것만 해도 2015~2017년 3년 동안 7건이나 된다. 필리핀 이주노동자 제이 월은 공장 화재로 얼굴과 손에 3도 화상을 입었다.

2019년 3월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마석가구단지 내 한 공장에 불이 나 필리핀 이주 노동자 21명이 잠자던 조립식 샌드위치 패널 숙소가 전소됐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이들은 한순간에 갈 곳을 잃었다.

여성 이주노동자들은 허술한 숙소의 불편과 함께 안전 문제까지 걱정해야 한다. 숙소의 잠금장치가 허술하거나 좁은 공간에 성별 구분 없이 잠을 잘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어 성폭력 범죄까지 걱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2018년 이주와인권연구소(소장 이한숙)가 농업 분야 여성 이주노동자 2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발표한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자의 12.4%가 강간, 강제추행, 성희롱 등의 성폭력 피해를 봤다고 답했다. 다른 사람의 성폭력 피해를 들은 경험이 있다는 응답 비율은 36.2%에 달했다.

제조업 분야 여성 이주노동자 385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11.7%가 성희롱 또는 성폭행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한숙 소장은 "성추행이나 폭행, 희롱 사례가 빈번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은 그런 '위험'만으로 사업장을 변경할 수 없고 성폭행 사건이 일어나도 증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2018년 22개 이주 인권단체 및 노동조합과 함께 이주노동자 1천215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85%는 회사에서 제공하는 숙소에 거주한다고 답했다.

응답자 중 절반 이상인 55.4%는 작업장 부속 공간 또는 조립식 패널, 컨테이너 같은 임시 주거 공간에 살고 있다고 했다. 숙소에 에어컨이 없다는 응답 비율은 42.6%, 실내화장실이 없다는 응답도 39%에 달했다.

부실하고 때론 위험에 무방비인 이런 숙소를 위해 이주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수준이거나 그보다 적은 월급에서 1인당 월 13∼20만원가량을 떼어내 사업주 등에게 지불하고 있다고 했다.

광주전남 캄보디아공동체에서 만난 20대 남성 썸낭(가명)씨는 "10평 정도 집에서 7명이 살았는데, 한 사람당 15만원씩 돈을 냈다"고 했다. 그와 그의 동료들은 돼지농장의 사무실 위에 딸린 방에 살면서 월세를 무려 105만원이나 낸 셈이다. 서울 강남에서 욕실과 냉난방시설, 침대, 냉장고, 소파 등을 갖춘 10평 원룸에 무보증 월세로 살 수 있는 수준이다.

사업주들이 이주노동자에게 이렇게 숙박료 '바가지'를 씌울 수 있는 것은 고용노동부의 '숙식 정보 제공 및 비용 징수 지침'이 엉성하기 때문이다.

2017년 2월부터 시행된 공제 지침은 주거의 '질적인 기준'은 제시하지 않은 채, '서면동의를 받은 사업주가 숙식을 제공하고 이주노동자의 임금에서 일정 비율의 금액을 징수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공제 비율은 주거시설의 형태와 음식 제공 여부에 따라 통상 임금의 8∼20% 수준이다.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찜통더위에 시달리는 이주 노동자들
캄보디아 출신의 40대 여성 노동자인 쏙(가명) 씨는 6.61㎡(약 2평) 크기의 비닐하우스 방에서 동료 2명과 함께 지낸다. [사진 = 단비뉴스 특별취재팀 김지연]

비영리단체인 이주민지원 공익센터 '감사와 동행'의 이현서 변호사는 "숙식비는 숙소의 면적, 상태 등을 기준으로 정해져야 상식이죠. 누구나 그렇게 집을 알아보고 다니면서 월세를 비교하잖아요. 그런데 이 지침에 따르면 (이주노동자의) 숙소는 비닐하우스도 상관없고, 화장실이 없어도 괜찮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무리 열악한 주거 시설이라도 이주노동자를 위한 집으로 인정받고, 이를 제공한 대가로 월세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 악덕 사업주는 형편없는 시설에 이주노동자를 모여 살게 하고는 개별 숙식비를 걷는 방식으로 급료를 깎는다.

이주노동자 쉼터인 '지구인의 정류장'의 김이찬 대표는 "집이 아닌 곳에 사람을 살게 하면 안 된다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며 "숙식비 공제 지침은 (외국인노동자를) 집 아닌 곳에 살도록 하면서 (사업주가) 임금을 뜯어갈 수 있게 해주는 제도"라고 비판했다.

이현서 변호사는 "사업주 입장에서 안전한 숙소를 만들어야겠다는 경각심이 사라졌다. (노동부 지침은) 숙소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만 남긴 지침"이라고 꼬집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12월 발간한 '제2차 이주 인권 가이드라인'을 통해 노동부에 주거환경 실태조사와 숙식비 공제의 합리적 기준을 마련하고, 숙식비용 징수에 관한 지침을 폐지하도록 권고했으나 아직 변화의 조짐은 없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이주노동자들의 주거실태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있을까. 이를 알아보려고 홈페이지를 검색해 본 결과 ILO는 사업주가 이주노동자에게 직접 숙소를 제공하는 방식이 '일반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임을 확인했다.

인권·노동운동가들은 이주노동자에게 최소한의 주거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 메아리는 거의 없다.

이현서 변호사는 "이주노동자가 숙소를 사업장 외부에 직접 구하도록 권장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런 것이 통하지 않는다"며 "인권이란 누구나 누려야 할 기본적 권리다. 국내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이주노동자의 인권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이어 "주거라는 하나의 필수적인 바탕이 갖춰지면 그 뒤에 일어나는 모든 것들에 좋은 영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우리가 함께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려면, 외국인이라고 덜 주고 안 해줘도 괜찮은 게 아니라, 누구나 다 안전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보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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