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부부의 안타까운 죽음…구멍 난 '맞춤형 복지'
다문화 부부의 안타까운 죽음…구멍 난 '맞춤형 복지'
  • 천정인
  • 승인 2020.01.07 13: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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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출혈로 아내 쓰러진 뒤 돌봄 받지 못한 장애인 남편 함께 숨져
가난·장애·다문화 취약 요소에도 사회 안전망 미작동

다문화 부부의 안타까운 죽음…구멍 난 '맞춤형 복지'

뇌출혈로 아내 쓰러진 뒤 돌봄 받지 못한 장애인 남편 함께 숨져

가난·장애·다문화 취약 요소에도 사회 안전망 미작동

고독사(PG)
[제작 이태호]

(광주=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형편이 어려운 장애인 남편과 결혼이주여성이 숨진 채 발견된 것과 관련해 맞춤형 복지 시스템의 구멍이 드러났다.

사회 보살핌이 필요한 가난·장애·다문화라는 취약 요소를 모두 가진 부부였지만 수많은 각종 복지 대책들은 이들을 보호하지 못했다.

7일 광주 남부경찰서와 남구 등에 따르면 전날 오전 9시 30분께 광주 남구 주월동 한 주택에서 뇌병변 장애가 있는 남편 A(63)씨와 필리핀 출신 아내 B(57)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아내가 뇌출혈로 먼저 쓰러지자 거동이 어려운 남편이 이불을 덮어주려다 침대에서 떨어진 뒤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다.

침대엔 전기장판이 켜져 온기를 머금고 있었지만, A씨 부부는 차디찬 바닥에 쓰러진 채 발견됐다.

2004년 필리핀에서 온 B씨와 결혼한 A씨는 생활 형편이 좋지 않아 이듬해 기초생활 보장 수급자로 인정됐다.

월 100만원 남짓한 기초생활 수급비로 빠듯하게 생계를 유지하던 A씨는 2015년 2월 교통사고로 뇌병변 장애가 생겼다.

침상에 누워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된 A씨는 최근까지 아내와 인근에 사는 동생의 돌봄을 받아왔다.

지방자치단체는 고독사를 방지한다며 중증장애인과 독거노인 가정을 주기적으로 방문하고 있었지만, A씨의 경우 돌봐줄 보호자가 있다는 이유로 그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다.

한 달에 한 번 통장이 쓰레기봉투를 제공하거나 민간 봉사단이 반찬을 두고 가긴 했지만, 부부를 직접 만나지 않고 부엌에 물건을 두고 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아내는 16년간 동안 한국에서 지내면서도 한국어에 서툴 정도로 외부 활동이나 접촉을 꺼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나마 '중증환자 응급안전 서비스' 일환으로 A씨 부부 집 안에 설치된 움직임 감지 장치도 무용지물이었다.

고독사 (PG)
[장현경 제작] 일러스트

남구가 2015년부터 최근까지 중증장애인과 독거노인 가정 191곳에 7천600여만원을 들여 설치한 것이었다.

움직임을 살피고 비상 호출을 할 수 있게 해 주민 생명을 지키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 장치를 모니터링하는 업무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모니터링 요원이 1명에 불과해 혼자 191개 가정을 모두 살펴야 하고, 기계가 고장나면 고치는 역할까지 해야 했다.

게다가 교대 인력이 없어 주말·공휴일, 늦은 시각에는 모니터링 자체가 아예 이뤄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담당 모니터링 요원은 움직임 감지 장치에서 신호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도 닷새가 지나서야 A씨 부부 집을 방문했다가 숨져있는 이들을 발견했다.

남구 관계자는 "과거에 같은 일로 방문했다가 B씨가 크게 역정을 냈다"며 "이후 감지 센서에 움직임이 없으면 전화나 문자로 연락해 안부를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에도 전화로 안부를 확인했지만 받지 않아 문자를 보냈는데 답이 없었다"며 "이후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에 곧바로 집을 찾아가 본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안전장치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인력을 확충하고, 인적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광주복지공감플러스 박종민 대표는 "점점 개인화·고립화하면서 사회적 약자의 사망을 방지하려는 각종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런 안타까운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며 "응급 벨 등 안전장치가 갖춰져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활용할 인력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이 안부를 확인하는 '동네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i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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