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적 한일관계 풀려면 인권에서 실마리 찾아야"
"비정상적 한일관계 풀려면 인권에서 실마리 찾아야"
  • 오수진
  • 승인 2019.04.20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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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재일조선인 인권을 지키는 모임 소속 기무라 히데토씨

"비정상적 한일관계 풀려면 인권에서 실마리 찾아야"

나가사키 재일조선인 인권을 지키는 모임 소속 기무라 히데토씨

나가사키 재일조선인 인권을 지키는 모임 회원 기무라 히데토씨
[광주광역시 다문화평화교육연구소 제공]

(서울=연합뉴스) 오수진 기자 = 기무라 히데토(76) 씨는 고등학교 영어교사에서 퇴임한 후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 '아리랑' 등을 읽으며 한국 역사와 한일 과거사에 눈을 떴다. 강원도 철원 비무장지대(DMZ), 부산광역시, 파주 임진각 등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이 녹아 있는 대한민국 방방곡곡을 돌았다. 그의 관심은자신이 살던 나가사키 내 재일조선인에게 자연스레 옮겨갔다. 그는 10년 넘게 재일조선인, 강제노역 노동자, 원폭 피해자를 위해 싸우고 있다.

평화활동가 기무라 씨는 20일 서면 인터뷰에서 "젊은 시절을 되찾고 어릴 적 콤플렉스를 극복하려고 인권, 평화 운동을 시작하게 됐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뒤늦게 시작한 인권 운동이지만 그는 일흔이 넘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한일 양국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지난 2월 3·1 운동 100주년을 맞아 나가사키, 후쿠오카 대학생들과 한국을 찾아 한국 대학생들과 함께 한일 세미나를 진행했다.

당시 일본 외무성으로부터 '3·1 운동은 반일 운동이고 일본인이 여기에 참석하는 것은 위험하니 조심하라'는 문자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이번엔 광주광역시를 찾았다. 다문화평화교육연구소(소장 박흥순)가 마련한 '인권 서로 배우기 연속 강좌'에서 강연을 초청받았다.

방문 기간 5·18 광주민주화운동 현장 등도 예비 답사한다. 내달 일본인 활동가 12명과 광주를 다시 찾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기무라 씨는 "2007년 5·18 기념식에 참가한 경험이 있다"며 "당시 광주 시민들이 5.18 민주화운동을 소중하게 여기고 역사적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모습에 감동했다"고 떠올렸다.

재일조선인과 일본 사회의 평화 증진을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기무라 씨에겐 또 하나의 걱정거리가 생겼다.

최근 일본 법원이 조선학교 학생을 고교 무상화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적법하다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일본 후쿠오카(福岡) 지방법원 고쿠라(小倉)지부는 규슈(九州)조선중고급학교 졸업생 68명이 자신들의 학교를 무상화 정책 대상에서 배제한 처분을 두고 일본 정부를 상대로 750만엔(약 7천5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일본 고교 무상화 제도는 외국인 학교 학생도 적용된다. 하지만 2010년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 여파로 간 나오토(菅直人) 당시 총리는 조선학교 학생에 대한 고교 무상화 적용 중단을 지시했고, 현재까지 제도 적용은 보류된 상태다.

특히 이번 판결은 지난 2월 유엔 아동권리위원회가 일본 정부에 수업료 무상화 제도를 조선학교에 적용하도록 법령을 재검토하라고 권고한 이후에 나온 것이어서 기무라 씨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강연에 참석한 기무라 히데토(오른쪽)씨와 다문화평화교육연구소 박흥순 소장(왼쪽)
[다문화평화교육연구소 제공]

그는 지난 12일 다문화평화교육연구소에서 한 강연에서도 이번 판결의 부당함을 광주 시민과 평화활동가들에게 알리는 데 힘썼다.

강연을 들은 시민들이 조선학교 학생들에게 응원엽서를 쓰고 이들과 연대하기 위한 모금 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기무라 씨는 일본 법원의 판결에 대해 "일본 사법부가 일부 민간 극우단체와 같은 수준의 반응을 내놨다"며 "일본에는 사법부가 없는 것이 아닌가"고 반문했다.

그는 "조선학교에 다닌다는 이유로 모든 청소년이 받을 수 있는 혜택에서 배제된다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항변했다.

기무라 씨는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일본의 특성, 더 나아가 재일동포를 향한 혐오·증오의 원인을 일본인에게 내재한 '불안감'에서 찾았다.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리는 불황기에 우익단체와 국수주의가 어느 한 조직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사회 밑바닥에서 신음하던 일본인에게 접근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닫힌 일본인의 마음을 열고 비정상적인 한일관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권·평화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인 '인권'을 통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일관계는 자신의 고통과 아픔을 끌어안고 평화를 실천하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강제동원, 성차별, 마이너리티, 차별, 혐오를 더 넓은 시각에서 바라봐야 한다. 결국 조선학교 재판을 포함한 한일관계는 인권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

sujin5@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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