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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3] 쿠바 이민 100년
[쿠바 이민 100년] ① 두 번 배에 오른 사람들…굴곡진 디아스포라의 삶
1905년 멕시코 이민 1천여명 중 300여명, 1921년 쿠바로 재이주
100년간 쿠바 굴곡 함께 겪으며 뿌리 내려…1천여명 후손 거주
2021. 12. 13 by 고미혜

[쿠바 이민 100년] ① 두 번 배에 오른 사람들…굴곡진 디아스포라의 삶

1905년 멕시코 이민 1천여명 중 300여명, 1921년 쿠바로 재이주

100년간 쿠바 굴곡 함께 겪으며 뿌리 내려…1천여명 후손 거주

 

 

쿠바 마탄사스 엘볼로 마을의 한인 이주 기념비
(마탄사스[쿠바]=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100년 전인 1921년 쿠바에 처음 도착한 한인 이민자들이 모여살던 마탄사스 엘볼로 마을에 2005년 세워진 한인 이민 기념비. 주변엔 당시 한인들이 일하던 농장에서 재배했던 에네켄이 심겨 있다. 2021.12.13.


mihye@yna.co.kr

 

[※ 편집자 주 = 올해는 카리브해 쿠바에 한인 이민자들이 처음 도착한 지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미수교국 쿠바에는 현재 1천여 명의 후손들이 한인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쿠바 현지 취재를 토대로 여전히 많이 알려지지 않은 쿠바 이민 100년사와 독립운동사, 후손들의 현황과 바람 등 관련 기사 5꼭지를 일괄 송고합니다.]

 

(아바나·마탄사스·카르데나스=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쿠바 수도 아바나에서 해안을 따라 100㎞ 남짓 떨어진 도시 마탄사스엔 엘볼로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지금은 가난한 현지인들의 터전이 된 이 오래된 농촌 마을에 약 100년 전 한인 100여 가구가 에네켄(용설란의 일종) 농장에서 일하며 모여 살았다.

2005년 미국 한인교회의 도움으로 마을 입구에 세워진 빛바랜 기와지붕의 낡은 한인 이민 기념비, 그리고 비 주위에 심어진 억센 에네켄만이 1세기 전 한인들의 고단한 삶을 짐작하게 한다.

대장정의 시작은 1904년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황성신문 등에 실린 광고였다.

"북미 묵서가(墨西哥·멕시코)는 미합중국과 이웃한 문명 부강국이니 수토(水土)가 아주 좋고 기후도 따뜻하며 나쁜 병질이 없다는 것은 세계가 다 아는 바이다. 부자가 많고 가난한 사람이 적어 노동자를 구하기가 극히 어려우므로 (중략) 한국인도 그곳에 가면 반드시 큰 이득을 볼 것이다."

 

첫 멕시코 이민선 일포드호
[연합뉴스 자료사진]

 

선박용 밧줄의 원료인 에네켄을 재배하는 멕시코 농장의 노동자를 구하는 광고를 보고 1천33명의 남녀가 1905년 4월 제물포항에서 영국 선박 일포드호에 몸을 실었다.

힘겨운 항해 끝에 도착한 멕시코 유카탄반도는 광고가 말한 '약속의 땅'이 결코 아니었다.

1세대 멕시코 한인들은 지옥 불같은 땡볕에서 채찍질까지 당하며 노예처럼 일했고 4년간의 계약기간이 끝난 후에도 사실상 국권을 빼앗긴 조국에 돌아가지 못한 채 멕시코 곳곳으로 흩어져 살길을 찾았다.

그러던 중 한인들의 마음을 흔드는 소문이 또다시 들려왔다.

"쿠바에서는 사탕수수를 자르는 노동자들도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일한다. 물 대신 우유를 마시고 원하는 대로 맥주를 마신다는 에덴동산과 같다."(라울 루이스·마르타 임 김 '쿠바의 한인들' 중)

먼저 쿠바로 넘어갔던 일부 이민자들로부터 전해진 달콤한 말에 300여 명의 멕시코 한인들이 더 나은 미래를 찾기 위해 다시 한번 배에 몸을 실었다.

 

쿠바 한인 독립운동가 임천택 선생이 1954년 펴낸 '큐바이민사'
[연합뉴스 자료사진]

 

1905년 한인들이 멕시코에 처음 도착했던 항구인 프로그레소항에서 쿠바행 타마울리파스호가 떠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21년 3월의 일이다.

그렇게 시작된 쿠바 한인 이민 100년사도 멕시코 이민사와 마찬가지로 출발이 그다지 순탄하지는 않았다.

한인들이 자신들을 일본인으로 분류하는 데 반발해 저항하면서 마나티항 도착 후 하선 과정에서부터 차질이 생겼고, 결국 이들은 미국과 멕시코의 대한인국민회의 도움으로 한인 신분을 인정받을 수 있게 됐다.

힘겹게 도착한 쿠바도 '에덴동산'은 아니었다.

한인들이 도착할 무렵 설탕 가격의 급락으로 쿠바 사탕수수 산업은 급격히 몰락했고, 사탕수수 농장의 일자리가 여의치 않자 일부는 중부 마탄사스로 이동해 지긋지긋하지만 익숙했던 에네켄 농장에서 일했다.

이후 다수가 마탄사스 인근 카르데나스의 에네켄 농장으로도 이주했고, 일부 한인들은 수도 아바나로 넘어가 바닥부터 삶을 일궜다.

 

쿠바 마탄사스 엘볼로 마을에 있는 옛 한글학교 건물
[연합뉴스 자료사진]

 

쿠바에 정착한 한인들은 쿠바의 정치 격랑 속에서 속수무책 휩쓸렸다.

1930년대부터 쿠바 정권의 외국인 노동자 차별 속에 잇단 '노동 정지'로 극심한 생활고를 겪었고 1959년 쿠바 혁명 이후엔 일부 성공한 한인들이 재산을 몰수당하거나 몰수를 피해 쿠바를 떠났다.

동시에 혁명은 여러 한인이 생활고를 덜고 외국인 차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혁명 이후 60여 년간 한인들은 여러 쿠바인과 마찬가지로 쿠바의 성쇠를 함께 겪고 있다.

어려움 속에서도 1세대 한인들은 지역별로 대한인국민회를 만들고 한글학교에서 국어 교육을 하며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켰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독립자금을 보냈다.

마나티항에 처음 발을 내디뎠던 1세대 한인 300여 명은 현재 5세, 6세까지 뻗어가 1천88명으로 늘었다. 쿠바인 이민 행렬에 섞여 미국으로 간 이들과 멕시코, 한국 등으로 이주한 이들을 포함한 전체 수는 2천 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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