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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26]우리곁의 이주민
[우리곁의 이주민] ② 고려인 3세 "한국에 우즈베크 마을 생겼으면 좋겠어요"
윤올가 씨…"우즈베크 이주민에게 도움주고파"
2019. 12. 23 by 오수진

[우리곁의 이주민] ② 고려인 3세 "한국에 우즈베크 마을 생겼으면 좋겠어요"

윤올가 씨…"우즈베크 이주민에게 도움주고파"

 

 

고양이민자통합센터 우즈베키스탄·러시아 대표 윤올가 씨
(서울=연합뉴스) 오수진 기자 = 고양이민자통합센터 우즈베키스탄·러시아 대표 윤올가(30)씨. 윤씨는 고려인 3세다. [2019.12.23]

 

(서울=연합뉴스) 오수진 기자 = 2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난 딸은 가수가 꿈이었지만 꿈을 이룰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가수의 길을 포기하고 가계에 보탬이 되기 위해 일자리를 구하러 다녔지만 마땅한 곳이 없었다.

그때 큰 도시에서 일하던 이모부가 '이곳엔 일자리가 많다'고 말했던 게 떠올랐다. 그는 오빠와 고향을 떠나 이모부가 있는 곳으로 향했고 공장에 취직했다.

취업을 위해 도시로 온 베이비부머 세대와 닮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즈베키스탄 출신 고려인 3세 윤올가(30) 씨다.

그의 고향은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 외곽에 있는 아흐마드 야사위 마을이다.

우즈베키스탄 최대 고려인 집단촌인 이곳은 한국·우즈베키스탄 정부가 함께 고려인 1세대 노인들을 위해 설립한 '아리랑 요양원'이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윤 씨는 친오빠와 함께 2015년 한국에 왔다. 이들의 남동생도 3년 전 한국에 정착했다. 윤씨는 부대찌개 전문 식당에서 일하고 있고, 오빠와 남동생은 가구 공장에서 근무 중이다.

윤 씨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다른 젊은이처럼 케이팝을 무척 좋아했다"며 "처음엔 한국에 돈을 벌러 와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 슬펐지만 이곳에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어서 즐겁게 생활 중"이라고 23일 말했다.

윤 씨는 현재 고양이민자통합센터(센터장 김세영) 내 우즈베키스탄·러시아 대표를 맡고 있으며 센터 내 외국인범죄피해지원단, GP자원봉사단에도 참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고양시 다문화청년네트워크 일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취업비자를 받아 한국에 온 그는 입국 초기 휴대전화 액정 필름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불량 필름을 찾아내는 단순 노동이 조금 힘들긴 했지만 안정적으로 월급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하지만 5개월 뒤 경영난으로 공장이 문을 닫자 그는 순식간에 실업자가 됐다. 현재 일터를 구인·구직 무가지를 뒤져 그가 직접 구했다.

윤 씨는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친구들의 월급을 생각하면 지금의 일이 매우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우즈베키스탄은 경제 상황이 나쁘기 때문에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며 "예전에는 젊은이들이 러시아나 우크라이나로 많이 떠났지만 이제 그쪽으로의 취업도 그렇게 쉽지는 않다"고 했다.

윤씨는 "많은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한국 생활을 꿈꾸고 있지만 한국 취업비자가 잘 나오지 않는다"며 "우리 가족은 고려인이라 취업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고양시청 팟캐스트에 출연한 고양이민자통합센터 각국 대표들
(서울=연합뉴스) 오수진 기자 = 지난 9월 고양시청 팟캐스트 '해피버스데이'에 출연한 고양이민자통합센터 각국 대표들과 윤올가(오른쪽에서 세번째)씨의 모습 [본인 제공]

 

그는 한국어를 할 줄 알았고 한국인과 비슷한 외모 덕분에 한국에서의 적응이 남들보다 빨랐다면서도 식당에서 다양한 손님을 대하는 것은 여전히 힘들다고 털어놨다.

윤 씨는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를 가장 힘들어했다. 다양한 손님들이 짧은 시간 각종 요구를 할 때 가장 정신이 없다고 했다.

힘든 상황에서도 같은 일터에서 4년 넘게 일할 수 있는 비결을 그에게 묻자 '한국인 사장 덕분'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사장도 고려인을 처음 봐 어색해 했지만 1달 정도 지나자 나를 더 이상 의심하지 않고 남들과 똑같이 대해줬다"고 회상했다.

윤 씨는 현재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8시에 퇴근한다. 사람들이 몰리는 점심시간을 제외하면 가게에 사정을 이야기하고 이민자들을 위한 다양한 활동에 참여 중이다.

그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을 사장이 알고 있어 미리 말만 하면 잠깐 가게를 비울 수도 있다"며 "처음에는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웠는데 흔쾌히 다녀오라고 해준다. 이제는 정말 정이 많이 들었다"고 만족해했다.

윤 씨는 "한국 생활을 원하는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고 싶다"며 "한국이 고려인에게 많은 지원을 해줘서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에서 일할 기회를 얻은 고려인처럼 우즈베키스탄 모든 사람에게도 이런 혜택이 돌아갔으면 좋겠다"며 "언젠가는 안산 고려인 마을처럼 고양시에도 우즈베크 마을을 만들고 싶다"고 덧붙였다.

sujin5@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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