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민자 뉴요커의 터전' 美플러싱 디아스포라 작가 유순호
[인터뷰] '이민자 뉴요커의 터전' 美플러싱 디아스포라 작가 유순호
  • 이준서
  • 승인 2019.08.02 08: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편소설 '뉴욕좀비' 출간…'코리안 차이니즈 아메리칸' 경계인의 삶 녹여내

[인터뷰] '이민자 뉴요커의 터전' 美플러싱 디아스포라 작가 유순호

장편소설 '뉴욕좀비' 출간…'코리안 차이니즈 아메리칸' 경계인의 삶 녹여내

장편소설 '뉴욕좀비'의 유순호 작가
(서울=연합뉴스) 이준서 특파원 = 장편소설 '뉴욕좀비'를 펴낸 유순호 작가가 1일(현지시간) 소설의 무대인 퀸즈 플러싱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jun@yna.co.kr 2019.8.2

(뉴욕=연합뉴스) 이준서 특파원 = 한때 '뉴요커 재미교포'들의 터전이었던 퀸즈 플러싱은 이제 차이나타운을 방불케 한다.

다운타운을 남북으로 가르는 메인스트리트 주변은 중국어 일색이다. 동쪽으로 한 블록 옮기자 한국어 간판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중국과 한국이 공존하는 플러싱은 아시아계 이민자들의 디아스포라가 녹아든 장소다.

장편소설 '뉴욕좀비'(서울셀렉션 펴냄) 작가 유순호의 인생 유전도 꼭 플러싱을 닮았다. 중국 동포였다가 미국으로 건너와 재미교포로 지내는 '코리안 차이니즈 아메리칸'이다.

1일(현지시간) 플러싱에서 만난 유 작가는 이곳에서도 '경계인'의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유 작가는 10대 시절부터 중국 지린성 옌볜(延邊)에서 촉망받는 소설가였지만, 중국 내에서 정치적 문제로 활동이 금지되자 2002년 미국 뉴욕으로 건너왔다.

당시만 해도 한인들로 북적였던 플러싱에 정착했고, 어느새 중국어 간판들이 늘었다.

유 작가는 "한인 동포 사회는 '너희는 중국인 아니냐'라면서 잘 받아주려 하지 않았고, 중국인들은 '너희는 중국인인데 왜 한국계에 끼려고 하느냐'고 비난하곤 했다"고 말했다.

한국인도, 중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경계인으로 18년을 살아온 탓일까. 하루하루 경계의 삶을 사는 대다수 이민자의 고단한 일상이 눈에 들어왔다.

유 작가는 "매춘업에 종사하는 한 한인 여성이 손님에게 폭행당하고 경찰서에 불려왔던 적이 있었다. 지인의 소개로 경찰서까지 가서 통역하고 신원보증을 해주게 됐다"면서 "그 여성에게서 뉴욕 매춘산업, 마약 등의 실상을 알게 됐고 언젠가는 이를 소재로 쓰고 싶었다"고 했다.

'뉴욕좀비'는 그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망명 작가인 주인공 리우는 채희·샹샹·루시, 이들 세 여성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는다.

중국동포 출신인 채희는 매춘으로 빚을 갚고 영주권까지 얻는다. 중국계 샹샹도 훗날 사랑 없는 결혼을 통해 영주권을 얻고는 이혼한다.

'금발의 백인' 루시는 리우와 서로 몸을 탐할 뿐 아니라 정신적 위로도 주고받는 사이다.

장편소설 '뉴욕좀비'의 표지
[서울셀렉션 제공]

이들은 마치 '좀비'처럼 뉴욕에서의 삶을 꾸역꾸역 이어간다. 이들에게 플러싱은 '현실'이고 맨해튼은 '이상향'이다.

유 작가는 "플러싱에서 맨해튼을 잇는 전철 노선이 지상철에서 지하철로 뒤바뀌는 구간이 있다"면서 "플러싱의 가난한 이민자들이 마치 뉴욕의 심장부인 맨해튼으로 진입하기 위해 땅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뉴욕 사회의 상층·하층을 가르는 경계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소설은 성과 욕망이라는 키워드를 내세워 뉴욕 주류사회와 비주류사회의 경계를 보기 좋게 허물어뜨린다.

어쩌면 오히려 모두가 선망하는 맨해튼이 '좀비들의 세상'일지도 모른다고 유 작가는 말했다. 맨해튼의 화려한 야경을 걷어내면 인간 내면의 욕망이 드러난다.

"로어 맨해튼의 부자들만 산다는 트라이베카(Tribeca)의 프레임 숍에서 10년 넘게 일했다. 낮에는 아주 조용하고 차분한 동네다. 그런데 밤만 되면 별의별 분장의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술집마다 온갖 불빛이 명멸하고 새벽녘까지 술 마시고 춤을 춘다. 결국은 그들도 모두 좀비 아닌가"

정도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우리 모두 '좀비'일 수 있다는 얘기다. 허전함과 존재의 불완전함을 채우고자 끊임없이 욕망하고 타인을 물어뜯기 때문이다.

'코리안 차이니즈 아메리칸'으로서 본인의 뉴욕 생활 18년을 담아낸 디아스포라 문학이라는 점도 주목할 지점이다.

유 작가는 "한민족의 삶 자체가 세계를 무대로 살아가는 디아스포라로 볼 수 있다"면서 "한국 문학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는 풍부한 '이민 문학'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편소설 '뉴욕좀비'의 유순호 작가
(서울=연합뉴스) 이준서 특파원 = 장편소설 '뉴욕좀비'를 펴낸 유순호 작가가 1일(현지시간) 소설의 무대인 퀸즈 플러싱의 다운타운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jun@yna.co.kr 2019.8.2

jun@yna.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