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상 수상 '아프간 콩 박사'…"탈레반도 우리 활동은 지지"
아산상 수상 '아프간 콩 박사'…"탈레반도 우리 활동은 지지"
  • 왕길환
  • 승인 2021.11.25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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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동포 권순영 '영양과 교육 인터내셔널(NEI)' 대표, 아산상 사회봉사상 받아
18년간 현지 콩 재배, 가공산업 육성해 영양실조·기아 해소 기여
"내년부터 '아프간 모델' 필리핀서 실행…'거버넌스 펀딩' 요청 계획"

아산상 수상 '아프간 콩 박사'…"탈레반도 우리 활동은 지지"

美동포 권순영 '영양과 교육 인터내셔널(NEI)' 대표, 아산상 사회봉사상 받아

18년간 현지 콩 재배, 가공산업 육성해 영양실조·기아 해소 기여

"내년부터 '아프간 모델' 필리핀서 실행…'거버넌스 펀딩' 요청 계획"

아산상 사회봉사상 받은 권순영 '영양과 교육 인터내셔널'(NEI) 대표
[연합뉴스 DB 사진]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이슬람 무장 조직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의 현재 상황이 좋지 않지만, 탈레반이 우리가 펼치는 '콩 사업'만큼은 저지하지 않고 있어 마무리를 잘 지을 것 같습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본부를 둔 '영양과 교육 인터내셔널(NEI)' 권순영(미국명 스티브 권·74) 대표는 아프가니스탄의 영양실조와 기아 해소를 위해 18년 동안 전개한 콩 재배와 가공산업 육성 프로젝트를 계속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권 대표는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25일 오후 서울시 송파구 아산사회복지재단 아산홀에서 열리는 '제33회 아산상' 사회봉사상을 받는다.

그는 수상에 앞서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탈레반이 장악하면서 많은 비정부기구(NGO)가 아프가니스탄을 떠났지만, NEI는 끝까지 남아 난민들을 돕고 있다"며 "탈레반 경찰이 NEI 카불 사무소에 직접 찾아왔을 때 난민에게 제공할 식량 꾸러미 만드는 것을 보고는 '처지가 딱한 사람들을 도와달라'고 하면서 활동을 격려했다"고 전했다.

과거에도 탈레반은 NEI를 불러 몇 차례 조사를 벌인 적이 있지만, 그때마다 '좋은 일 한다. 계속해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NEI가 이처럼 탈레반의 마음을 얻은 데는 그동안 아프가니스탄에서 펼쳐온 활동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NEI에 감사함을 표하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
[권순영 대표 제공]

오랜 내전으로 굶주림과 영양부족에 시달리던 아프가니스탄 주민들은 호구지책으로 드넓은 땅에 양귀비를 재배해 유럽 등에 수출했다.

하지만 삶은 더 핍박해지고 기아는 해결되지 않았다. 아이 5명 가운데 1명이 다섯 살도 안 돼 세상을 떠나고, 평균 16살에 결혼해 대체로 6명의 아이를 낳는 엄마 가운데 일부는 출산하다가 세상을 떠나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을 목격한 권 대표는 2003년 자비를 털어 NEI를 설립했다. 기아와 영양실조를 해결할 수 있는 대책으로 단백질 공급원인 콩을 제시하고 현지인들을 설득했다.

고려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해 UC 데이비스와 오하이오주립대에서 식품생화학 석·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1986년 세계적 식품회사인 네슬레에 입사해 콩으로 만든 영아용 대체 분유를 비롯해 의료식품 개발을 담당했다.

NEI를 세우고 한국과 카불에 사무소를 낸 그는 2008년 회사를 조기 퇴직했고, 아프가니스탄 콩 재배와 가공공장 설립 등에 매진했다.

현재 아프가니스탄 34개 주 가운데 30개 주가 콩을 심고 있다. 나머지 4개 주는 정부군과 탈레반의 싸움이 치열했던 곳이다. 권 대표는 미군 철수로 사실상 전쟁이 끝났기에 4개 주에서도 곧바로 콩 사업을 전개할 계획이다.

권 대표는 아프가니스탄의 양귀비밭에 한 번도 재배한 적 없던 콩을 심어 '상전벽해'(桑田碧海·뽕나무밭이 푸른 바다가 됐다는 뜻의 고사성어)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이런 이유로 그에게는 '아프가니스탄 콩 박사'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이 영양실조를 스스로 퇴치할 수 있도록 NEI가 돕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밝혔다.

"콩 종자 개발 및 생산, 콩 재배 확산, 콩 가공공장 건설, 콩 시장 개발 등 '콩 가치사슬'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2030년까지 연간 30만t의 콩을 생산해 국가 스스로 영양실조를 퇴치하도록 함께 협력하며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부녀자가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산란계 사업을 확대하고, 난민촌과 보육원, 빈촌 등의 부녀자와 초등학생을 위한 급식 사업도 계속 펼칠 계획이다.

NEI는 2007년부터 14년 동안 200만 명의 학생에게 급식했다. 두유를 만들어 빵과 함께 제공, 단백질을 섭취하도록 했다.

카불에 몰려든 난민들에게 식량을 제공하는 NEI 사무소 관계자들
[권순영 대표 제공]

권 대표는 아프가니스탄의 '자조자립형 영양실조 퇴치 모델'을 제3국에 전파할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스리랑카, 탄자니아, 필리핀, 인도 등이 NEI에 그 모델을 도입하겠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밝혔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의 '콩 사업'은 이제 현지 농축산부에 이양한 상태로, 우리는 운전석에 있다가 조수석에 옮겨탄 상황"이라며 "내년부터는 필리핀에 들어가기로 했고, 곧 준비작업에 들어간다"고 전했다.

권 대표는 사업기금 마련을 위해 한국과 미국, 유럽 정부에 '거버넌스 펀딩'을 요청할 계획이다.

그는 아산상 수상소감을 묻자 "뜻이 좋고 선하다면, 가난하고 불행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돕는 것이라면 하늘이 돕는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가난하고 희망 없이 살아가는 지구촌 곳곳의 이웃들이 스스로 설 수 있도록 함께 도움으로써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더 아름다운 세상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상금 2억원을 좋은 일에 쓰겠다"고 덧붙였다.

권 대표는 2013년 국민이 직접 추천한 우리 주변의 숨은 공로자로 선정돼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았다.

난민들에게 식량 꾸러미를 전달하는 모습
[권순영 대표 제공]

ghw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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