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용의 글로벌시대] 윤동주를 재외동포 시인으로도 기억하자
[이희용의 글로벌시대] 윤동주를 재외동포 시인으로도 기억하자
  • 이희용
  • 승인 2019.07.17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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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용의 글로벌시대] 윤동주를 재외동포 시인으로도 기억하자

 

 

1941년 12월 연희전문 졸업을 앞두고 찍은 윤동주의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2018년 11월 개봉한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에는 등장인물들의 이중적 시선이 잘 드러나 있다. 이는 귀환 중국동포(조선족) 3세인 장률 감독이 모국 동포들의 내면에서 포착한 불편한 진실이기도 하다.

 

주인공 송현(문소리)이 군산의 일본식 가옥을 보고 "여기 너무 좋다. 진짜 일본 같아. 나 일본 진짜 좋아하는데"라고 말하자 상대역인 윤영(박해일)은 "윤동주 시인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나? 윤동주 시인이 일본 형무소에서 죽었잖아"라고 핀잔을 준다. 송현은 서울에서 중국동포 권익 신장을 위한 집회에 참여하고도 군산에서 누군가 자신을 조선족이라고 오인하자 불쾌감을 감추지 않는다.

 

해병대 군복을 입고 다니는 윤영 아버지(동방우)는 중국동포 가사도우미(김희정)를 빨갱이라고 비난한다. 윤영은 그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다가 윤동주의 친척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자 손을 부여잡고 반색을 표시한다. 송현이 "윤동주가 연변 출신이잖아. 근데 그쪽에서 계속 살았으면 어떻게 됐을까?"라고 물으니 윤영은 "어, 뭐, 조선족이지, 뭐"라고 대답한다.

 

 

중국동포 3세 장률 감독의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한 박해일(왼쪽)과 문소리. [트리플픽쳐스 제공]

 

윤동주는 28년이란 길지 않은 생애 가운데 3분의 2가 넘는 20년을 지금의 지린(吉林)성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인 중국 북간도 일대에서 보낸다. 조국 땅에 머문 기간은 평양 숭실중 1년과 서울 연희전문 4년을 합쳐 5년뿐이고 나머지 3년 동안에는 일본 도쿄(東京)의 릿쿄(立敎)대와 교토(京都)의 도시샤(同志社)대를 다니다가 후쿠오카(福岡)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그는 처음부터 중국에서 나고 자랐는데도 조국의 가슴 아픈 현실에 괴로워하며 젊음을 바쳤고, 맑은 감성을 아름다운 우리말로 풀어냈다.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비롯한 한인들이 비록 몸은 조국을 떠났어도 공동체를 이뤄 살며 항일독립투쟁을 벌이고 2세들의 민족교육에 힘을 쏟은 덕분이다.

 

 

중국 지린성 옌볜조선족자치주 룽징시 명동촌에 위치한 윤동주의 생가. [시몽포토에이전시 제공]

 

윤동주의 조부 윤하현은 김약연·김하규·문병규·남도전 등 4가문의 가족 142명이 중국 지린(吉林)성 허룽(和龍)현에 터전을 마련하자 1년 뒤 합류했다. 이들은 '동쪽을 밝힌다'는 뜻으로 마을 이름을 명동촌(明東村)이라고 짓고 1908년 명동서숙(이듬해 명동학교로 개칭)을 지어 인재를 길렀다. 중심인물은 '간도 대통령'이라고 불린 김약연이었다.

 

명동촌 사람들은 사돈 관계를 맺어 인척으로 엮였다. 윤하현의 아들 윤영석은 김약연의 누이동생 김용과 결혼해 윤동주를 낳았고, 윤영석의 여동생 윤신영은 명동학교 조선어 교사 송창희 사이에서 송몽규를 얻었다. 동갑내기 친구이자 평생 동지인 윤동주와 송몽규는 내외종 간이었다. 이들보다 한 살 아래인 문익환의 부모는 문병규의 손자 문재린과 김하규의 딸 김신묵이었다.

 

 

1948년 정음사가 펴낸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본. [서울옥션 제공]

 

1925년 송몽규·문익환과 함께 명동소학교에 입학한 윤동주는 외삼촌인 김약연 교장의 훈육을 받으며 민족의식에 눈을 떴다. 1932년에는 캐나다장로회 선교회가 운영하는 룽징(龍井)의 은진중학교에 진학해 교내 잡지를 만들며 글솜씨를 익혔다. 시를 본격적으로 쓴 것은 1935년 평양의 숭실중으로 편입한 뒤의 일이다. 숭실중학생회가 발행하는 '숭실활천'에 '공상'이란 시를 처음 발표했다.

 

1941년 12월 연희전문을 졸업하기 직전에는 재학 시절 쓴 시 19편을 묶어 필사본 시집 3부를 만든 뒤 은사인 이양하 교수와 후배 정병욱에게 1부씩 건네고 자신도 1부를 보관했다. 연희전문 친구 강처중에게도 이듬해 일본 유학을 떠나기 전 '참회록' 등을 맡기고, 일본에서도 편지에 시 5편을 담아 보냈다. 이 시들은 1948년 1월 간행된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통해 빛을 볼 수 있었다.

 

 

중국 룽징시 명동촌 윤동주 생가 입구에 세워진 표지석. 한글과 한자로 각각 '중국 조선족 애국 시인'이라고 새겨놓아 논란을 빚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윤동주는 1944년 3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은 뒤 1945년 2월 16일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함께 수감된 송몽규도 3월 10일 옥사해 룽징에 나란히 묻혔다. 일부에서는 윤동주와 송몽규가 혈장 대신 생리식염수를 주입하는 생체실험을 받다가 숨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이 배우는 도덕 교과서에는 윤동주를 '독립을 향한 열망과 자신에 대한 반성을 많은 작품에 남기고 떠난 재외동포 시인'이라고 설명해놓았다. 사회 교과서에는 안중근 의거를 도운 사람의 하나로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을 거명하며 재외동포로 명시했다. 해외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들을 교과서에서 재외동포라고 소개한 것은 처음이다.

 

그러나 중국의 지방정부가 2012년 윤동주 생가 입구에 세운 표지석의 문구 '중국 조선족 애국 시인'은 잘못된 표현이다. 중국에 살던 동포들이 나중에 귀화해 중국 내 소수민족의 일원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윤동주는 망명 한인들의 공동체 속에서 성장했고 중국이 아니라 한국을 사랑한 애국 시인이기 때문이다.

 

 

윤동주를 재외동포 시인으로 소개한 초등학교 6학년 도덕 교과서 표지와 본문. [재외동포재단 제공]

 

지금의 중국동포나 러시아를 비롯한 CIS동포(고려인)는 각각 윤형주 친척이자 최재형 이웃의 후손이나 다름없다. 이들의 선조가 조국을 떠나 이국땅에 자리 잡은 사연은 각기 다르지만 많은 이가 직간접적으로 독립운동을 도왔고 일제의 핍박으로 크고 작은 희생을 치렀다.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에서 송현이 "1930년대에 만주에 가셨던 할아버지가 한국에 돌아오지 않았다면 나는 조선족이었을 거야"라고 말한 것처럼 불과 두 세대만 거슬러 올라가면 그들과 우리는 비슷한 처지였다.

 

18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는 재외동포재단과 KBS 주최로 '3·1운동 100주년 기획 '윤동주 콘서트 별 헤는 밤'이 펼쳐진다. 8월 15일 오후 6시 KBS 2TV로 녹화방송될 이 무대에는 윤동주의 6촌 동생인 가수 윤형주를 비롯해 이적, YB(윤도현밴드), 백지영, 다이나믹듀오, 포레스텔라, 스윗소로우, 뮤지컬배우 민우혁, 배우 박혜수·장동윤, 전자바이올리니스트 이하림, 연세대응원단 등이 오른다. 배우 김영철과 한혜진이 MC를 맡아 윤동주의 생애를 노래로 들려주고, 윤동주가 남긴 시를 낭독하고, 국내외에 남아 있는 윤동주의 숨결을 화면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재외동포재단과 KBS는 이번 행사의 기획 의도를 '재외동포 윤동주'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제는 그를 민족 시인이나 저항 시인만이 아니라 재외동포 시인으로도 기억하는 계기가 되고, 나아가 재외동포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다시 생각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한민족센터 고문)

 

 

hee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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