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 北축구대표 안영학 "'남북단일팀 월드컵 출전 꿈' 이뤄질 것"
前 北축구대표 안영학 "'남북단일팀 월드컵 출전 꿈' 이뤄질 것"
  • 이상서
  • 승인 2020.12.2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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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北축구대표 안영학 "'남북단일팀 월드컵 출전 꿈' 이뤄질 것"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 = "저도 그 영상 봤어요. 세계 유명한 스포츠 브랜드가 재일(在日)조선인이 겪는 차별을 주제로 광고를 만들었다는 게 놀랍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합니다."

지난달 말 나이키가 유튜브에 올린 한 광고에는 일본 학교에서 다니며 차별과 따돌림을 당하는 10대 소녀 축구선수가 등장한다. 그가 흰색 저고리와 검은색 치마를 입고 지나가자, 행인들이 노골적으로 쳐다보면서 수군대기도 한다. 영상은 조회수가 1천100만뷰를 넘길 정도로 큰 화제를 모았지만 일본에서 불매 운동 조짐이 일어나기도 했다.

전 북한 축구대표팀 미드필더 안영학.

[본인 제공]

전 북한 축구 국가대표 출신으로 한국과 일본 프로리그를 모두 경험한 안영학(43) 씨는 27일 연합뉴스와 화상 인터뷰를 갖고 "나이키 광고는 재일동포 사회에서도 큰 화제로 떠올랐다"며 "일본에서 언급하기 꺼리는 예민한 이슈인 재일조선인 문제를 환기하는 계기였다"고 말했다.

안 씨의 국적은 북한도, 한국도 아닌 조선이다. 그와 같은 이들을 재일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 소속의 '조선적'(朝鮮籍) 동포라 부른다.

남북한으로 나눠지기 전의 한반도를 조국으로 여긴다는 신념의 표현이지만, 조선이라는 나라는 이미 없어졌으므로 사실상 무국적인 셈이다. 따라서 외국에 나갈 때는 여권 대신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한다.

재인조선인 차별 등을 다룬 나이키 일본 광고 [유튜브 캡처]

안 씨는 2013년부터 일본 도쿄(東京) 이타바시(板橋)구에 있는 그의 모교인 조선학교에서 축구를 가르치고 있다. 2016년에는 집 근처 요코하마(橫浜)의 조선학교에도 축구교실을 열었다.

"열심히 하자는 게 제 축구 철학이에요. 축구라는 종목이 성실성이 중요하기도 하고요. 아이들이 축구로 많은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는 방법을 배운다면 더할 나위 없죠."

일본에서 태어나 조선학교에 다니며 성장해 온 안 씨이기에 재일조선인이 사회에 적응하고 인간 관계를 맺는 데 느끼는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과거에 비해 차별적인 발언이나 선입견은 줄긴 했으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종종 재일조선인에게 상처가 될 만한 글이 보이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2002년 J리그에서 프로선수생활을 시작한 그는 2006년부터 4년간 부산 아이파크와 수원 삼성에서 활약하며 '조선적 출신 중 가장 유명한 K리거'라는 훈장을 얻었다. 2010년에는 북한 국가대표로 뽑혀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 출전하기도 했다.

4년이란 짧은 시간이지만 한국에서 보낸 시절은 여전히 좋은 추억으로 간직되고 있다.

"처음에는 많이 걱정했어요. 그런데 당시 팀 주장이던 이장관 선수가 '영학아 환영한다! 어려운 일 있으면 형한테 다 얘기해'라고 해줬어요. 그 말 한마디에 맘이 놓였죠. 이런 게 바로 한국의 정이구나 싶었죠."

특히 조부의 고향인 전남 광양으로 원정 경기를 떠났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그는 "여기서 우리 할아버지가 태어나 일본으로 넘어온 거라는 생각이 들자 감회가 새로웠다"며 "경기 전후에 조용하고 작은 그 도시를 몇 번이고 거닐었다"고 떠올렸다.

그는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알게 된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은 내 좌우명이나 다름없다"며 "축구를 시작하면서 가슴 속에는 늘 꿈을 품고 살아왔다"고 말했다.

축구선수로 성공해 월드컵에 출전하겠다는 꿈을 현실로 바꿔왔고, 어려울 때마다 꿈을 생각하며 버텨왔다.

"재일조선인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꿈을 포기할 수가 없었어요. 우리도 열심히 노력만 한다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제가 꿈을 이뤄야 후배들도 희망을 품을 수 있을 테니까요."

2010년 6월 16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엘리스파크에서 열린 2010남아공월드컵 북한과 브라질의 경기에서 북한 안영학(오른쪽)이 브라질 실바와 볼다툼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일본 법무성에 따르면 조선적은 매년 급감해 2018년 말 기준으로 3만 명도 되지 않는다. 일본이나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이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그는 "통일을 기다리며 조선적이라는 국적을 간직하고 있다"며 "'하나의 코리아'로 월드컵에 출전하는 모습을 보는 게 또 다른 꿈"이라고 말했다.

희미하지만 화합과 희망의 조짐도 보인다고 했다. 아들이 4년 전 일본 요코하마의 조선학교에 입학했을 때 일본인 20여 명이 이를 축하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제가 조선학교에 다녔던 시절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어요. 내 아이가 우리말과 역사, 문화를 배우면서 동시에 이 사회에서 살아갈 희망도 얻어가길 바랍니다."

shlamaz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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