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난민 연극 '아라베스크' 연출 최진아 "난민 문제는 숙제"
제주 난민 연극 '아라베스크' 연출 최진아 "난민 문제는 숙제"
  • 이상서
  • 승인 2020.11.12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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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난민 연극 '아라베스크' 연출 최진아 "난민 문제는 숙제"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 = "어쩌면 난민은 앞으로 우리가 다른 문화와 종교를 가진 이들과 어울려 살아갈 방법을 찾는 첫 번째 과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를 둘러싸고 여러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그런 과정의 한 모습이겠죠."

난민 소재 연극 '아라베스크' [극단 놀땅 제공]

최근 막을 내린 연극 '아라베스크'는 2018년 제주 예멘 난민 심사 과정을 소재로 제작됐다. 당시 제주도에 온 예멘인 수백 명이 난민을 신청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큰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작품의 작·연출을 맡은 극단 놀땅의 최진아 씨는 12일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난민 유입이 옳고 그르다는 메시지를 뚜렷하게 전달하기보다는, 관객이 '나라면 어떻게 할까'라는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의 장을 만들려고 했다"고 말했다.

연극에서 난민 심사관은 자신 앞에 앉아 있는 중동 출신의 남성을 보고 연신 의구심을 표시한다. 모국에서 발발한 전쟁을 피해 한국에 왔다고 밝힌 그의 진술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았기 때문이다. 연극은 난민 인정 유무를 밝히지 않은 채 끝난다.

최 씨는 "관객 스스로가 고민하고 답을 내리도록 유도하려고 했다"며 "한 사람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관점과 깊은 생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연극이 초연되기까지 1년여의 세월이 걸렸다. 사전 조사는 물론이고 이주 시민 단체 관계자와 실제 난민 인정자도 여러 명 만났다.

준비 과정에서 가장 고민스러웠던 부분은 당사자들이 연극을 봤을 때 행여나 상처받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과거 유럽에서 동양인이 등장한 연극을 본 적이 있어요. 그때 저건 현실이 아니라 서구의 시각에서 본 굴절된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품을 준비하면서 그때 생각이 났죠. 만약 난민이 연극을 봤을 때 '저건 우리 얘기가 아니야'라고 여기지 않을지 걱정이 들었거든요."

제주 예멘 난민 소재 연극 '아라베스크' 작·연출 최진아 씨

그는 "다행히 공연을 접한 한 난민 인정자가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다'고 해 마음을 놓았다"면서도 "다만 극 중에서 특정 인물이 악역으로 그려지는 것을 경계했다"고 고백했다.

"가령 의심하고 거짓을 찾아내는 임무를 맡은 심사관 역시 그들만이 느끼는 압박이 있지 않을까요? 나라에서 부여한 역할을 맡았을 뿐이고, 자국민 이익과 혹시 모를 선의의 난민 신청자가 피해 받지 않도록 하는 데 많은 부담이 있을 거라 봤기 때문이죠."

제주 예멘 사태를 처음 뉴스로 접했을 때 최 씨 역시 불안했던 게 사실이다. '그들을 다 받아줘도 내가 누리는 것이 모두 그대로일까'라는 걱정이 들어서다.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인 제주도의 모습이 행여나 훼손되지는 않을까 우려도 컸다.

그는 "작품을 위해 난민을 취재하고 공부 하면서 나 혼자만 잘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방인을 혐오하지 않고 수용하는 것은 글로벌 시대에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확신 때문"이라고 말했다.

연극은 8일 동안 300여명의 관객을 불러 모았다. 난민이 대중적인 관심을 받는 소재가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성적표다.

그는 "홍보 부족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탓에 결과가 기대에 못미쳤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주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묵묵히 진행했다"고 말했다.

연극 명인 아라베스크는 식물 줄기와 잎을 도안화한 아랍 문화권의 전통 무늬로, 유럽에서도 유행될 정도로 아름다운 것이 특징이다.

그는 "이슬람을 연상하면 테러 집단이나 전쟁 등 폭력적인 이미지가 따라붙지 않느냐"며 "그보다는 아름다움을 먼저 떠올리게 하고 싶어서 지었다"고 귀띔했다.

"우리나라에 살고 싶어하는 난민 신청자만 7만명이 넘는다고 하잖아요. 전쟁 난민 뿐만 아니라 기후 난민도 더 많아질 거라고 하니 앞으로 우리에게 큰 숙제가 될 거라고 봐요. 이번 연극이 우리가 이방인을 대하는 태도와 방향 등을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난민 소재 연극 '아라베스크' [극단 놀땅 제공]

shlamaz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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