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러시아 두 조국에 충성한 한인 디아스포라 최재형
조선·러시아 두 조국에 충성한 한인 디아스포라 최재형
  • 임형두
  • 승인 2020.09.07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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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최재형', 순국 100주년에 선생의 삶과 러시아의 한인사회사 조명

 

조선·러시아 두 조국에 충성한 한인 디아스포라 최재형

신간 '최재형', 순국 100주년에 선생의 삶과 러시아의 한인사회사 조명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20년 4월 4일과 5일에 벌어진 일이었다. 일본군은 1920년 초부터 득세하기 시작한 러시아혁명세력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 하바롭스크, 스파스크, 포시예트 등지의 러시아혁명세력과 한인들에 대해 불의의 습격을 가했다.

일본군이 대대적인 체포와 방화, 학살을 자행해 '4월참변(四月慘變)'으로 불리는 이 사건으로 1천여 명의 러시아혁명군과 소비에트, 빨치산부대의 일꾼들, 그리고 일반 주민들이 살해되고 고문을 당했다. 5일 아침, 최재형 선생도 일본군에 체포된 뒤 재판 없이 곧바로 총살되고 말았다.

두 개의 조국, 즉 러시아와 조선 모두에 충성했던 최재형(1860~1920·러시아 이름 '최 표트르 세묘노비치') 선생. 제정러시아 시기의 한인사회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그가 순국한 지 올해로 만 100주년을 맞았다. 러시아 한인사회의 개척자이자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였던 선생은 한인동포는 물론 러시아인들로부터도 신임과 존경을 받은 지도자였다.

순국 100주년을 계기로 출간된 책 '최재형'은 당시 연해주 한인사회를 대표했던 선생의 열성적이고 헌신적인 생애와 함께 조선에서 연해주로,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이주해야 했던 러시아 한인들의 고단한 역사를 다시 조명한다. 집필은 한국 근현대사와 러시아사, 중국 근현대사, 일본 근현대사를 연구해온 반병률 한국외국어대 사학과 교수가 맡았다.

1860년 함경북도 경원에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선생은 1869년 아버지, 형과 함께 러시아로 이주했다. 소년으로서 6년 동안 힘든 선원 생활을 하다가 열여덟 살 때 처음 비즈니스 세계를 경험했으며, 러시아군대에 군수품을 납품하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아픈 근현대사에서 조국을 떠나야 했던 해외동포는 '역사적·혈통적 조국'과 '현실적·법적 조국'이라는 두 개의 정체성을 갖고 있었다. 선생은 해외동포사에서 두 조국에 충실했던 대표적 사례로, 오늘날도 본받을 만한 롤 모델이 되고 있다.

1917년 러시아혁명 이전 시기까지 선생만큼 그곳 한인사회에서 영향력이 큰 사람은 찾기 힘들었다. 선구적으로 러시아어를 습득해 체질화한 그는 한인으로선 러시아 최초로 면장(面長)에 해당하는 도헌(都憲)에 선출되고 러시아 정부로부터 수차례 훈장을 받는 등 현지 사회에도 크게 공헌했다.

선생은 한말에 러시아 최초의 의병부대인 동의회(同義會)를 조직해 연해주 의병운동을 이끌었으며, '대동공보' 사장으로서 언론 활동을 통해 애국계몽운동에 매진하기도 했다.

일제의 본격 감시 대상이 된 계기는 1917년의 10월혁명이었다. 소비에트 정권이 들어서자 일본 정부는 러시아혁명세력과 러시아 한인 간의 연대에 위기의식을 크게 느꼈고, 선생도 일제 당국의 주요 감시 대상이 됐다. 그리고 4월참변 때 김이직, 엄주필, 황경섭과 함께 체포돼 생을 마감했다.

책은 '아령(러시아령) 한인사회의 개척자', '아령 한인사회의 제일 인물', '시베리아 동포의 대은인'으로 불리는 선생의 순국 100주년을 맞아 그동안 연구해 온 자료들을 정리한 것이다.

제1장 '최재형(최 표트르 세묘노비치)'은 2004년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에서 처음 개최된 '최재형 선생 추모제'에서 참석자들에게 배포했던 선생의 약전이며, 2장 '4월참변 당시 희생된 한인 애국지사들'은 일본군에 의해 함께 희생된 4명의 한인 지도자들의 삶을 소개했다.

이어 3장 '안중근과 최재형'은 동의회의 국내 진공작전, 하얼빈의거 등 러시아 지역에서 동지로 활동했던 안중근 의사와 최 선생의 인연을 들려주고, 4장 '한국인의 러시아 이주사'는 러시아 한인이주사를 압축적으로 정리한다. 마지막 5장은 지난해 근현대사기념관에서 진행된 독립민주학교 특강의 내용이다.

저자는 "순국 100주년을 계기로 국내외에서 최재형 선생을 기리는 행사들이 다양한 형태로 진행될 것을 예상하고 참고자료로 활용될 수 있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준비했다"며 "2004년부터 현재까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는 '최재형 선생 추모제(2006년 이후 '4월참변 추모제'로 개칭)'를 되돌아보고 중간 정리하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고 말했다.

한울엠플러스. 368쪽. 3만9천원.

 

 

id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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