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전 日에 우리 음식 소개한 조부 같은 요리사 되고 싶어"
"70년전 日에 우리 음식 소개한 조부 같은 요리사 되고 싶어"
  • 이상서
  • 승인 2020.08.30 0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日 유명 한식당 '식도원' 개업한 임광식 옹 손자 임기학 프랑스요리사 인터뷰

"70년전 日에 우리 음식 소개한 조부 같은 요리사 되고 싶어"

日 유명 한식당 '식도원' 개업한 임광식 옹 손자 임기학 프랑스요리사 인터뷰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 = "일본에 우리 음식을 알렸던 할아버지처럼 저 역시 우리나라에 진짜 프랑스 요리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한국과 일본을 넘나들며 70년 넘게 이어온 요리사 가문의 철칙도 지켜가면서요."

평양에 살던 임광식 옹은 광복 직후인 1946년 일본 오사카부(大阪府)로 넘어가 한식당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식도원(食道園)을 개업했다. 그가 소개한 야키니쿠(불고기)와 냉면 등 한국 음식은 재일조선인과 재일동포 뿐만 아니라 일본인에게도 큰 인기를 끌었다.

재일동포 2세인 아들 역시 선친의 길을 이어 일본에서 일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당시 극심했던 일본인의 차별과 소외를 이겨내고 작은 선술집이던 식도원은 지금 현지에서도 손 꼽히는 유명 식당으로 자리 잡았다.

임기학 셰프
[본인 제공]

임광식 옹의 손자인 임기학(44) 셰프도 서울 강남에서 프랑스 식당을 개업해 10년 넘게 운영하고 있다.

임 셰프는 30일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내가 자란 곳은 식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주방을 오가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면서 요리사라는 꿈을 품었다"고 말했다.

임 셰프에게 부엌은 어릴 때부터 놀이터였다. 자연스럽게 한국과 일본의 다양한 음식과 식재료 등을 경험했고 요리의 재미도 느꼈다.

막연했던 요리사의 꿈은 그가 27살이던 2003년께 수많은 유명 요리사를 배출해낸 미국 로드아일랜드 주에 있는 존슨앤웨일즈대학에 입학하면서 조금씩 현실에 가까워졌다.

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과 서울 등의 유명 호텔 레스토랑에서 수련을 거친 뒤 그는 2008년 서울에 자신만의 프랑스 식당을 개업했다.

집안 어른들이 다루던 음식과 분야는 다르지만 철학만큼을 물려받으려 노력했다고 임 셰프는 강조한다.

그는 "(지금이야 익숙하지만) 70년 전에 일본에서 한국 음식이 얼마나 생소했을까 싶다"며 "그럼에도 할아버지는 이북에서 조리하던 방식 그대로 불고기와 냉면 등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굳이 일본인의 입맛에 맞추려는 소위 '현지화'를 하지 않겠다는 고집이 느껴졌다"며 "그 식당이 일본에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그런 신념이 통했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다"고 설명했다.

식도원은 현재 일본에 10곳이 넘는 지점이 생길 정도로 성장했다.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일본판에 따르면 식도원을 기점으로 시작된 일본 내 야키니쿠 업계의 시장 규모는 1조엔(약 11조원)이 훌쩍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타협하지 않고 제대로 만든 음식은 결국 국적을 떠나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 셈이다.

"식당을 개업할 때 최대한 프랑스 현지 음식과 가까운 조리 방식으로 운영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국내에 있는 대부분의 프랑스 식당은 이탈리아와 미국 등 여러 서구 음식이 섞인 '양식'이지 정통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고 봤습니다."

한식이나 우리나라에서 현지화된 서양식과 프랑스 요리와의 차이점은 영양 성분이다. 한식은 탄수화물 중심이라면 프랑스는 단백질 위주의 식단으로 구성된다.

그는 "주 식재료가 육류나 가금류 또는 생선인 프랑스 요리는 단백질이 풍부한 반면 밥이 밥상의 주인인 한식에 비해서는 탄수화물이 적다"며 "이 때문에 탄수화물에서 나오는 단맛이 부족하다 보니 생소하게 보는 손님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지만 프랑스 음식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도록 하겠다는 목표는 변함이 없다"며 "그래야 그 나라 음식을 정확히 정의내릴 수 있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조부로부터 물려받은 또 다른 하나의 신념은 '음식으로 장난치지 않는 것'이다.

"전쟁 후 힘든 시기를 보내고, 현지인의 차별과 텃세를 이겨내면서 할아버지가 지키려고 했던 것은 '음식만큼은 양심적이고 속이지 않고 만든다'는 신념이었습니다. 외식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위생이나 조리법 등 엄격한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주의하려고 해요."

그는 "프랑스에 가서 음식을 접한 한국인이 '서울에서 먹던 그 요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길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라며 "처음에는 다소 낯설겠지만 최선을 다한다면 언젠가는 누구나 '맛있다'고 느끼는 인기 메뉴가 되리라 믿는다"고 활짝 웃었다.

shlamazel@yna.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