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에도 발레연습 나이지리아 소년 "춤추면 고통이 잊혀져요"
장맛비에도 발레연습 나이지리아 소년 "춤추면 고통이 잊혀져요"
  • 이상서
  • 승인 2020.07.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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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비에도 발레연습 나이지리아 소년 "춤추면 고통이 잊혀져요"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 = 장맛비가 쏟아지는 어느 허름한 공터에서 깡마른 흑인 소년이 발레 연습에 여념이 없다.

맨발이고 아스팔트 바닥이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점프와 턴 동작을 수십번 반복한다.

최근 트위터와 유튜브 등에 공개된 이 영상은 조회 수 360만을 넘기며 큰 화제를 낳았다.

영국 BBC와 AFP 통신 등 주요 외신도 이 소년을 나이지리아의 빌리 엘리어트라고 소개하며 보도했다.

발레리노를 꿈꾸는 영국 탄광촌 아이의 성장기를 그린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주인공과 빼닮았다는 이유에서다.

발레리노를 꿈꾸는 나이지리아 소년 음소마 마두 앤서니
[리프 댄스 아카데미 제공]

주인공인 음소마 마두 앤서니(Mmmesoma Madu Anthony·12) 군은 26일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내 고향 나이지리아 이모주(州)에는 남자 무용수가 없기 때문에 발레는 여자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여긴다"며 "그러나 불가능한 일이라고 여긴 적은 단 한번도 없다"고 말했다.

"발레를 할 때마다 황홀한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발레에 빠진 특별한 계기는 없었고 그냥 좋았어요. 4년 전부터 음악이 들려올 때마다 자연스럽게 춤을 췄고 그때마다 발레리노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어요."

영상에 나온 연습 장소는 그가 다니는 리프 댄스 아카데미의 뒷마당이다.

나이지리아의 발레 꿈나무를 육성하는 학원으로 전교생 12명 중 남학생은 그를 포함해 3명이 전부다.

맨발로 시멘트 바닥에서 연습하는 게 고통스럽지 않냐고 묻자 그는 "당연히 아프다"면서도 "춤출 때만큼은 그 아픔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답했다.

학원 원장이자 그를 가르치는 다니엘 오세니 아잘라 씨는 "앤서니는 열정적인 학생"이라며 "나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남자 무용수에 박힌 사회적 편견을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연습 영상이 전 세계적으로 큰 이슈가 될 줄은 몰랐다고 입을 모았다.

나이지리아 발레 꿈나무의 화제 영상
[유튜브 캡처]

"어느 날 선생님이 다급하게 오더니 말씀하셨어요. '이거 봐. 네 영상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고 있어. 심지어 비올라 데이비스가 극찬을 퍼부었다고!'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난 거죠."

2017년 영화 '펜스'로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휩쓸었던 톱스타 비올라 데이비스는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해당 영상을 리트윗 하며 "열악한 환경 속에서 연습하는 이 소년이 나에게 열정이란 감정을 다시 상기시켜줬다"고 글을 남겼다.

앤서니 군은 "이런 일은 처음이라 믿기지 않는다"면서도 "유명세를 치른 것보다 더 행복했던 부분은 이제 많은 사람이 나이지리아에도 남자 발레 무용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것"이라고 고백했다.

그는 "TV로 종종 한국 영화와 음악을 접한다"며 "학원에서도 K팝 가수의 춤을 정기적으로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따라 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나중에 프로 발레리노의 꿈을 이뤄 여러 나라를 누비면서 공연을 하고 싶다"며 "더 많은 관객에게 나이지리아에도 훌륭한 남자 무용수가 많다는 사실을 알리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영화배우 비올라 데이비스가 앤서니의 발레 영상을 보고 남긴 포스팅
[트위터 캡처]

전 세계 미디어와 팬에게 그가 꼭 당부하고 싶은 한가지가 있다고 한다.

"더이상 저를 빌리 엘리어트와 비슷하다고 얘기하는 일은 그만해줬으면 좋겠어요. 가장 중요한 차이점이 있으니까요. 영화와는 달리 제 부모님은 제 꿈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주시거든요."

shlamaz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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