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용의 글로벌시대] '27일 유엔군 참전의 날'…한국의 별이 된 영웅들
[이희용의 글로벌시대] '27일 유엔군 참전의 날'…한국의 별이 된 영웅들
  • 이희용
  • 승인 2020.07.20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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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용의 글로벌시대] '27일 유엔군 참전의 날'…한국의 별이 된 영웅들

2019년 4월 26일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영국군 설마리 전투 추모공원'에서 열린 한국전쟁 임진강 전투 68주년 추모행사에서 추모객들이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1. 1951년 4월, 영국군 제29여단 소속 글로스터셔연대 제1대대는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마지리에 주둔하고 있었다. 중국인민지원군(중공군) 2개 사단이 이곳을 집중 공격하자 감악산 기슭 설마리로 밀려났다. 3일간 악전고투한 끝에 60여 명만이 살아남고 500여 명이 전사하거나 포로로 붙잡혔다. 패전의 상처는 깊었으나 3일간 중공군의 서울 진격을 저지해 '제2의 1·4 후퇴'를 막았다.

전적지에는 '영국군 설마리 전투 추모공원'이 꾸며졌고 감악산 출렁다리에는 '글로스터 영웅의 다리'란 이름이 붙었다. 영국 글로스터셔주 글로스터시도 나토(NATO) 신속대응군 기지와 군인박물관 인근 도로를 각각 '임진기지'와 '파주길'로 명명했다. 파주시는 지난 5월 자매도시인 글로스터시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물품을 보내기도 했다.

1951년 4월 경기도 연천의 율동 전투에서 빼어난 활약을 펼친 필리핀 제10대대전투단 특수중대장 콘라도 디 얍 대위. 2019년 4월의 6·25 전쟁영웅이다. [국가보훈처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 같은 시기에 필리핀 제10대대 전투단은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율동리(현 상리)에서 중공군에 포위됐다. 주변 부대와 연락이 끊겼음에도 결사 항전해 공격을 물리쳤다. 필리핀군은 전사자가 12명밖에 안 되는데 중공군은 500명이 넘었다. 이 승리로 미군 제3사단은 안전하게 철수할 수 있었고, 사단장 로버트 솔 소장은 '파이팅 필리피노'라며 격찬했다.

국가보훈처는 2019년 4월 '이달의 6·25 전쟁영웅'으로 율동 전투에서 맹활약한 필리핀군 특수중대장 콘라도 디 얍 대위를 선정했다. 철수 명령을 받은 그는 "생존자를 구출하고 전우들의 시신을 수습해 철수하겠다"고 보고한 뒤 역습을 감행해 고지를 탈환했다. 돌격대를 이끌고 직접 중공군 기관총 진지를 수류탄으로 폭파하기도 했다. 그러나 적의 총탄에 치명상을 입고 들것에 실려 본대로 복귀하자마자 숨을 거뒀다.

2016년 5월 20일 경기도 포천시 태국군 참전비에서 열린 '유엔 태국군 참전용사 헌화식'에서 태국군 참전용사가 참전비에 경례하며 눈물짓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3. 연천군 천덕산 인근 234m 높이의 봉우리는 돼지갈비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6·25 당시 포크촙 고지로 불렸다. 1952년 10월 23일 이곳에 진출한 태국군 제3대대는 백병전까지 벌이며 11월 1∼10일 3차례에 걸친 중공군의 대규모 공세를 막아냈다. 태국군은 129명이 전사하고 1천139명이 부상하는 피해를 봤지만 중공군 피해는 훨씬 컸다. 미군 지휘관들은 태국군의 용맹함을 치하하며 '리틀 타이거'란 별명을 붙였다.

태국은 1950년 6월 30일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참전을 결정했다. 유엔군 가운데 육해공군을 모두 보낸 나라는 태국과 함께 미국·캐나다·호주 4개국뿐이다. 태국은 1972년까지 한국에 주둔하며 전후 복구사업을 도왔다. 2014년 국방부와 롯데그룹은 태국 방콕 근교에 참전용사회관 '리틀타이거홀'을 지었다.

국가보훈처는 2020년 7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인도 제60야전병원을 이끈 란가라지 중령을 선정했다. 그의 얼굴을 담은 이달의 전쟁영웅 포스터. [국가보훈처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4. 인도는 전투병을 파견하지 않고 이탈리아·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독일(당시 서독)과 함께 의료지원단을 보냈다. 인도 제60야전병원은 의사 15명을 포함해 341명으로 편성됐다. 1950년 11월 20일 부산에 도착한 뒤 란가라지 중령이 이끄는 본대는 영국군 제27여단을 지원하고, 배너지 소령이 지휘하는 분견대는 대구 후방부대에 배치됐다.

본대는 총탄이 빗발치는 최전선에 투입돼 부상자들을 옮기고 치료에 헌신해 찬사를 받았다. 란가라지 중령은 야전병원을 진두지휘하며 직접 수술조를 편성해 전장을 누볐다. 국가보훈처는 이례적으로 전투병이 아닌 란가라지 중령을 2020년 7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뽑았다.

박삼득 국가보훈처장이 5일 경기 오산시 죽미령 평화공원 평화마당에서 열린 '유엔군 초전(初戰) 기념 미국 스미스부대 전몰 장병 추도식 및 평화공원 개장식'에 참석해 주요 내빈과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국가보훈처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미국 해리 트루먼 대통령과 트뤼그베 할브단 리 유엔 사무총장은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전면 남침을 감행했다"는 보고를 받자마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했다. 이날 오후(현지시간) 유엔 안보리는 만장일치로 "즉각적인 전투 중지와 38선 이북으로 북한 병력 철수" 결의안을 채택했다. 상임이사국 중 하나인 소련은 자유중국(대만) 대신 중화인민공화국(중공)을 상임이사국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에 항의해 안보리 회의를 보이콧하고 있었다.

이틀 뒤 트루먼 대통령은 미 해군과 공군을 한국에 파병하겠다고 공표했고, 안보리는 "북한의 무력 공격을 격퇴하고 국제 평화와 안전을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자원을 한국에 제공할 것을 유엔 회원국에 권고한다"는 두 번째 결의안을 채택했다. 6월 30일에는 미국이 2개 사단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이튿날 일본에 주둔하던 24사단 21연대(스미스부대)가 부산에 도착한 뒤 7월 5일 경기도 오산의 죽미령에서 북한군과 첫 전투를 벌였다.

4월 7일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에서 6·25 참전용사인 미군 병사 고 보이드 왓츠의 안장식이 열리고 있다. 고인은 만 18세였던 1950년 12월부터 1952년 1월까지 참전해 전공을 세웠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7월 7일 유엔 안보리는 통합사령부 설치에 관한 세 번째 결의안을 채택했다. 유엔군 사령관에는 미 극동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가 임명됐다. 3년여 동안 16개국 195만7천733명이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했다.

미국이 178만9천 명으로 91%에 이르고 다음은 영국(5만6천 명), 캐나다(2만5천687명), 터키(1만4천936명), 호주(8천407명), 필리핀(7천320명), 태국(6천326명), 네덜란드(5천322명), 콜롬비아(5천100명) 등의 차례였다. 이 가운데 3만7천902명이 전사·사망했고 부상 10만3천460명, 실종 3천950명, 포로 5천817명 등이었다.

2019년 7월 27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에서 참전국 국기가 차례로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오는 27일은 '유엔군 참전의 날'이다. 1953년 정전협정이 체결된 날을 법정기념일로 제정해 정전 60주년을 맞은 2013년부터 기리고 있다. 올해도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참전 유공자와 참전국 외교사절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27일 오전 10시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기념식이 열린다. 코로나19 여파로 지난해보다 초청 규모를 10분의 1로 줄였다. 참전국 재외공관과 지방 보훈관서에서도 온·오프라인으로 기념행사를 마련한다. 올해는 6·25 발발 7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다. 생존한 유엔군 참전용사는 전체의 20%가량인 약 40만 명이다. 평균연령이 90세여서 이 숫자는 빠른 속도로 줄고 있다. 이들은 젊음을 바쳐 지켜낸 세계 최빈국 대한민국이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하고 국제사회를 이끄는 나라로 성장한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유엔군의 희생과 헌신이 헛되지 않고 참전용사들의 자부심이 더욱 높아질 수 있도록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힘써야 한다.

hee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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