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코로나19 위기에 생활고까지…시름 깊은 중남미 한인들
끝없는 코로나19 위기에 생활고까지…시름 깊은 중남미 한인들
  • 고미혜
  • 승인 2020.07.07 0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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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진자 300만명 육박 중남미서 한인 확진·사망도 속속 나와
오랜 봉쇄에 생활고도 가중…폐업·역이민 고민

끝없는 코로나19 위기에 생활고까지…시름 깊은 중남미 한인들

확진자 300만명 육박 중남미서 한인 확진·사망도 속속 나와

오랜 봉쇄에 생활고도 가중…폐업·역이민 고민

멕시코시티 도심
[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멕시코에 사는 한인 A씨는 갑작스러운 호흡 곤란 증상에 병원을 찾았다. 대형 병원 몇 군데를 돌았지만 인공호흡기가 있는 병상을 찾기 어려웠고, 힘겹게 병상을 찾아서 입원한 후 1시간 만에 숨을 거뒀다.

A씨의 사망진단서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의심'이라는 표현이 있었지만, 확진을 받진 않아 멕시코 공식 사망자 통계에 포함되진 않았다.

미국 영주권자인 한인 B씨는 콜롬비아에 사는 형의 건강이 악화해 간호를 위해 콜롬비아로 왔다. 먼저 사망한 형은 코로나19 음성이었으나, B씨는 장례 이후 알 수 없는 경로로 코로나19에 감염돼 타국에서 홀로 사망했다.

중남미의 코로나19 위기가 깊어지면서 중남미에 거주하는 한인들의 불안과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의료체계 등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상황에서 한인들의 감염과 사망 사례도 이어지고 있으며, 오랜 봉쇄로 자영업에 종사하는 한인들의 생활고도 가중되고 있다.

◇ 중남미 코로나19 확진 300만명 육박…한인 피해도 속출

6일(현지시간) 통계 사이트 월드오미터와 각국 보건당국 발표를 종합하면 현재까지 중남미 30여개 국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290만 명을 넘어서 300만 명에 근접하고 있다. 사망자는 13만 명에 육박한다.

전 세계에서 중남미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8%지만, 코로나19 확진자 비중은 약 25%에 달한다.

페루 리마 한 병원에서 치료받는 코로나19 환자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중남미엔 10만 명(2019년 외교부 통계)의 재외동포가 거주하고 있다.

중남미의 코로나19 확산세가 가라앉지 않으면서 한인들의 확진과 사망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대부분 국가들이 확진자의 국적을 공개하지 않고 있어 본인이 알리지 않는 이상 정확한 파악은 어렵지만, 한인 동포가 많은 국가들에선 많게는 두 자릿수의 한인 확진자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1만2천 명의 재외동포가 거주하는 멕시코의 경우 현지 보건부의 최근 통계에 한국 국적으로 표기된 확진자가 13명 포함돼 있다.

공식 통계가 없는 브라질, 과테말라, 칠레, 콜롬비아, 볼리비아 등에서도 한인 확진자들이 나왔다.

중남미는 대체로 검사 건수가 적고 검사 결과를 얻기까지 시간도 오래 걸려 현지인들은 물론 한인 중에서도 숨은 감염자가 더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의료체계가 상대적으로 열악한 중남미에선 한국과 달리 대체로 위중한 환자들만 입원할 수 있고, 병상도 모자라 한인들의 불안은 더욱 크다.

이 때문에 고령의 교포나 주재원의 어린 자녀 등은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귀국길에 오르고 있다. 중남미에서 감염 사실을 모른 채 무증상으로 귀국했다 한국에서 확진을 받는 경우도 잇따르고 있다.

멕시코 국경지역의 한 한국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한국인 직원은 "현지인 직원 한 명이 감기로 2주간 결근했는데 결국 숨졌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여긴 검사도 제대로 안 돼 남은 직원들은 불안한 상황에서 계속 근무하고 있다"고 말했다.

멕시코의 한 교민은 "감염돼도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할까 걱정"이라고 불안해했다.

박원규 콜롬비아 한인회장은 "유료로 검사를 받으려해도 결과 나오기까지 2주가 걸려 의미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지 의료 사정을 고려해 주멕시코 대사관에선 자체적으로 호흡기 등 의료용품 확보에 나서는 등 현지 공관들도 재외국민 보호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봉쇄 완화한 브라질 상파울루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 오랜 봉쇄에 수입 없이 가겟세만…폐업·역이민 고려

코로나19 감염만이 걱정이 아니다. 당장 생활고도 심해지고 있다.

중남미 한인들 상당수가 의류 도소매업에 종사하고 있는데, 각국의 코로나19 봉쇄가 길어지면서 길게는 넉 달 가까이 가게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수입은 0원인데 월세와 직원 월급은 계속 줘야 하는 상황이다.

일부 국가는 정부가 생계 지원을 해주기도 하지만 외국인인 한인들에까지 혜택이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봉쇄를 풀면 감염 확산이 우려되고, 봉쇄를 유지하면 생계난이 걱정이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의류 상가를 운영하는 김모 씨는 "3월 19일부터 가게 문을 못 열었다. 그나마 정부가 직원 월급의 50%를 지원해주고 있지만, 수입이 0인 상황에서 비싼 월세와 나머지 직원 월급을 계속 내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봉쇄 직전 준비한 겨울 시즌 옷은 다 재고로 남아야 하는 상황"이라며 "교민 대화방에서는 폐업 소리가 계속 들리고, 많은 교민이 한국으로의 역이민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원규 회장도 "콜롬비아 한인사회에선 아직 본격적인 철수 움직임은 없지만 곧 생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봉쇄가 일주일 단위로 계속 연장되고 있는 칠레에선 지난해 11월 시위 사태 때부터 한인들이 제대로 가게 문을 열지 못하고 있어 더욱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현지 교민 최모 씨는 "자기 소유 건물에서 장사를 하거나 자금 여유가 있던 사람, 온라인 판매가 활성화돼 있던 일부를 제외하고 모두 어려운 상황"이라며 "귀국하려는 사람들이 점차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칠레 한인 의류상가가 몰려있는 산티아고 파트로나토
[연합뉴스 자료사진]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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