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노골적 '혐한발언' 공익인정 판결은 인권후진국 자인한 셈"
"日, 노골적 '혐한발언' 공익인정 판결은 인권후진국 자인한 셈"
  • 강성철
  • 승인 2020.06.3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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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학교 비방 日 극우인사 소송 맡은 재일3세 구량옥 변호사

"日, 노골적 '혐한발언' 공익인정 판결은 인권후진국 자인한 셈"

조선학교 비방 日 극우인사 소송 맡은 재일3세 구량옥 변호사

 

 

日 조선학교 헤이트스피치 소송 맡은 재일3세 구량옥 변호사
[구량옥 제공]

 

(서울=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재일동포 초등학생이 다니는 조선학교를 상대로 헤이트스피치(hate speech·특정 집단 공개적 차별·혐오 발언)를 일삼았는데 어떻게 공익을 도모할 목적이 있었다고 판결할 수가 있나요? 정상적인 인권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 입니다."

일본 재특회(在特會·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 모임)의 전 간부인 니시무라 히토시(西村齊)는 2017년 4월 23일 교토(京都) 재일동포 밀집 지역인 조선학교 인근에서 '조선인은 한반도로 돌아가라' '조선학교가 일본인을 납치한다' '조선학교는 스파이 양성기관이다' '조선학교를 부숴버리자' '조선인은 밤길을 조심해라' 등 노골적인 혐한(嫌韓) 발언을 쏟아냈다.

조선학교는 아이들을 위협하고 차별을 선동하는 니시무라를 명예훼손으로 형사고발 했고 지난해 11월 29일 교토재판부는 50만엔의 벌금을 부과하면서도 그의 발언이 공익을 위한 행위였다고 명시했다.

원고 측인 조선학교 대리인으로 참여한 재일3세 구량옥 변호사(38)는 30일 연합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사실상 재판부가 피고에게 면죄부를 준 셈"이라며 "원고뿐만 아니라 재판을 지켜본 양심 있는 일본 시민단체와 지식인 모두 일본 인권이 후퇴했다고 개탄했다"고 강조했다.

구 변호사는 "헤이트스피치를 일삼는 무리는 일본인 납치사건을 내세워 재일동포에게 언어폭력을 휘둘러 왔다"며 "재판과정에서 니시무라는 조선학교가 납치사건과 연관 있음을 전혀 입증하지 못했음에도 공익을 위한 행동이라고 법원이 손을 들어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일본인 납치사건은 1977년 일본 니가타(新潟)에서 요코다 메구미(橫田惠·실종 당시 13세)가 학교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길에 실종된 뒤 나중에 북한으로 납치된 것을 가리킨다.

징역형 또는 집행유예를 기대했던 조선학교는 즉각 반발해 항소하려 했으나 부담을 느낀 검찰이 응하지 않았다.

반면에 힘을 얻은 니시무라는 무죄판결을 받아내겠다며 항소했고, 오사카 고등법원에서 7월 13일 1차 공판이 열린다.

그는 "피해를 본 원고의 항소는 무시되고 적반하장격으로 피고의 항소는 받아들여진 상황"이라며 "이런 식이면 결국 피고에게 유리한 판결이 내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구 변호사는 법원에 항의서를 제출하려고 6월 초부터 연대 서명운동을 벌였다. 지금까지 변호사 160여 명이 참여했고 일반인도 3천여명 동참했다. 여기에는 한국 시민단체인 몽당연필과 지구촌동포연대 회원 등도 함께했다.

7월 3일 서명이 동봉된 항의서를 검찰청에 제출하고 기자회견도 열 계획이다.

그는 "고등법원에서는 공판을 한 번만 열고 9월 14일에 판결을 내린다고 공시했다"며 "보통 수차례 이상 열던 공판을 1회로 한정한 것 차제가 제대로 심의할 생각이 없는 것이므로 여론을 조성해 압박할 작정"이라고 말했다.

 

조선학교 앞 난동 피우는 日 극우단체
2010년 일본 교토 조선학교 앞에서 재특회가 벌인 헤이트스피치 가두 시위. [연합뉴스 자료사진]

 

구 변호사는 조선학교 출신으로 중학교 2학년 때 전철에 오르는데 일본인 중년 남성이 머리를 뒤에서 잡아당기며 '조선인 주제어 어디 먼저 타느냐'고 겁박을 당했던 기억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한국인이라는 배경만으로 차별받는 세상은 바뀌어야 한다"며 "재일 조선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 인권의 문제로 장애인, 성적 소수자, 원주민 등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어서 앞장선 것"이라고 밝혔다.

오사카시립대 법학과를 나와 변호사로 발령받은 그는 2009년 니시무라가 주도한 재특회 교토지부가 조선학교 앞에서 헤이트스피치를 벌였고 아무런 저항도 못 하고 벌벌 떠는 학생들을 지켜보면서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결심했다.

당시 재일동포 출신 변호사가 100여명 있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튀어서 좋은 거 없다며 주변의 만류도 있었지만 자기 일이라고 생각해 주저하지 않고 소송에 나섰다.

헤이트스피치에 가담했던 인사들을 고소했고 업무 방해로 벌금형과 민사소송에서 손해배상 판결도 끌어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2017년 일본변호사협회 장학생으로 미국 뉴욕대 로스쿨에서 인종차별을 연구했고, 2018년에는 영국 에섹스대학 국제인권 로스쿨에서 석사학위도 취득했다.

11년째 인권 변호에만 매달리는 이유를 묻자 그는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한 게 약자를 돕는 데 앞장서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재일동포 차별의 상징인 교토 우토로 마을 출신으로 강제퇴거 위기에 몰렸을 때 아무 조건 없이 달려와 무료 변론에 나섰던 일본인 변호사들을 보며 이 길을 꿈꾸게 됐다는 것.

구 변호사는 "일본 사회는 갈수록 보수·우익이 득세하고 시민단체의 힘은 줄어들고 있다"며 "일본인 동료 변호사들은 인권 수준이나 시민사회 성숙도 모두 한국이 월등히 앞섰다고 부러워한다"고 전했다.

그는 "재일동포에 차별 의도를 갖고 행한 언동이라도 납치 문제를 내세워 '공익을 도모할 목적'으로 인정받게 두면 혐한 가두시위는 더욱 늘어날 것이기에 이번 재판이 중요하다"며 "9월 판결 전 추가 항의 서명 명부를 제출할 계획이므로 많은 분이 동참해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wakar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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