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참전용사 손녀 "혈맹 한국의 매력 세계에 알리고 싶어요"
6·25 참전용사 손녀 "혈맹 한국의 매력 세계에 알리고 싶어요"
  • 강성철
  • 승인 2020.06.25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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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전쟁기념관에 조부 유물 전시…참전 기억해줘 늘 감사"

 

6·25 참전용사 손녀 "혈맹 한국의 매력 세계에 알리고 싶어요"

"용산전쟁기념관에 조부 유물 전시…참전 기억해줘 늘 감사"

 

 

터키 참전용사 후손 일라이다 아심길
터키 참전용사 후손으로 8월 한국 유학을 오는 일라이다 아심길 씨 [아심길 제공]

 

(서울=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할아버지는 생전에 살아가면서 가장 뿌듯한 것이 한국전 참전이라고 늘 말했어요.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더라도 주저하지 않고 달려갈 거라고 했죠. 오늘이 6·25 기념일이라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이 유달리 많이 납니다."

독일 베를린 자유대 학생인 일라이다 아심길(21) 씨는 8월 고려대 교환 유학생으로 한국에 온다. 유학 후에는 한국에 남아 본격적으로 '한국살이'를 할 계획이다.

그가 한국을 택한 것은 할아버지의 사득 아심길(1929∼2014)의 한국 사랑 덕분이다.

6·25 전쟁 70주년을 맞아 연합뉴스의 참전용사 후손 인터뷰에 응한 그는 "어려서부터 할아버지로부터 한국 전쟁 이야기를 많이 듣고 컸기에 멀리 떨어진 한국이 남이라는 생각이 안 들었다. 조부가 목숨 걸고 지킨 한국에서 살 생각에 자랑스럽고 설렌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의 조부는 터키 첫 파견부대로 한국에 왔다. UN의 참전이 결정된 후 1950년 터키 이스탄불항에서 한국 출발 군함을 타고 1달 후 부산에 도착했다고 한다. 미군으로부터 무기를 지급받고 한 달간 훈련을 받은 후 최전방에 배치돼 중공군과 싸웠고 1년 뒤 귀국했다.

아심길 씨는 "할아버지는 '인해전술'을 펼치는 중공군에 밀려 후퇴하는 UN군의 퇴로 확보를 터키군이 맡았는데 그때가 가장 치열했다고 종종 이야기했다"며 "많은 전우가 죽었고 본인도 총탄을 머리에 맞았는데 헬멧 덕분에 살았다는 이야기에 전쟁이 얼마나 무섭고 참혹한 일인지 잘 안다"고 밝혔다.

터키군의 참전 인원은 1만4천936명으로 참전국 가운데 미국,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1953년 7월 27일 휴전 때까지 터키군은 미국 다음으로 많은 724명의 전사자를 냈다.

조부는 2002년 월드컵 때 참전 용사 초청으로 51년 만에 한국을 다시 방문했다. 월드컵 3∼4위 결정전이었던 한국-터키전도 참관했다.

아심길 씨는 "조부는 당시의 감동을 종종 들려줬다"며 "자신들의 희생에 보란 듯이 응답해 눈부시게 발전한 한국에 기쁘고 감사하다는 말을 많이 했다"고 회상했다.

부모의 이민으로 독일에서 태어난 그는 고교 시절 베를린의 세종학당에서 한국어를 3개월간 배운 뒤 졸업한 2018년 3개월간 한국 배낭여행을 했다.

 

터키 참전용사 사득 아심길과 전쟁기념관 전시 유품
2002년 월드컵때 초청행사로 방한한 터키 참전용사 사득 아심길(좌측 사진의 왼쪽 첫번째)과 그의 유품이 전시된 용산전쟁기념관(우측). [아심길 제공]

 

한국에 오자마자 그가 처음 방문한 곳이 서울 소재 용산전쟁기념관이다.

참전국인 터키군을 소개하는 코너에 조부 사진과 유품이 전시돼 있다는 친척의 말을 들어서다. 실제로 기념관에는 터키 일간지 휘리엣이 2면에 걸쳐서 조부를 인터뷰한 신문, 전쟁 당시 찍은 사진, 참전 용사 메달 등이 전시돼 있었다.

아심길 씨는 "벅찬 감동에 눈물이 났는데 한국인 단체 관람객이 왜 우냐고 묻길래 저 사진 속 주인공이 할아버지라고 하니까 모두 손뼉을 치며 반겨줬고 감사하다는 말도 건네면서 악수도 청해왔다"며 "할아버지가 평소 한국은 남의 도움을 잊지 않는 나라라고 했는데 실제로 그렇다는 걸 실감했다"고 뿌듯해했다.

그는 "부산을 비롯해 할아버지가 참전 당시 머물던 곳곳을 둘러봤고 한국 문화를 체험하면서 여기가 내가 살 곳이라는 확신이 들었다"며 "당시 한국인의 정에 흠뻑 젖었다는 할아버지의 기억처럼 실제로 한국인은 이방인에게도 따듯했다"고 소개했다.

귀국 후 한국어 공부를 더 열심히 했고 지난해 세종학당재단의 한국어말하기대회 독일 예선에서 우승했다. 부상으로 어학연수 기회를 얻어 올해 3월부터 3개월간 성균관대 성균어학원에서 공부하기도 했다.

3월에 한국 올 때 주변에서 모두 반대했다. 당시 한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한창이었다.

그는 "부모가 극구 말렸지만 지금이 한국을 가장 잘 알 기회라고 생각해 용기를 냈다"며 "와서 한국이 코로나19에 잘 대응하는 모습을 보고 전쟁도 이겨낸 나라답게 위기상황에 잘 대처한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유튜브로 외국인이 느끼는 한국을 소개하고 있는 그는 "독일 등 외국 친구들이 한국을 물어오면 항상 '빠르고 안전하고 편리한 나라'라고 말한다"며 "하나를 더 꼽으라면 국민이 열심히 살지만 놀거나 쉴 때도 열정을 쏟는 재미있는 나라라고 소개한다"고 강조했다.

영어·독일어·터키어·한국어에 능숙한 그는 유학을 마치고 졸업하면 한국에서 독일-터키-한국 간 문화교류에 앞장서는 일에 도전할 계획이다.

그는 "참전 용사 후손이라는 사명감으로 역동적이면서도 푸근한 정이 있는 한국을 세계에 알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wakar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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