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대낮에도 흉기난동' 오명벗은 서울 대림동도 안전한 생활터전
[르포] '대낮에도 흉기난동' 오명벗은 서울 대림동도 안전한 생활터전
  • 이상서
  • 승인 2020.06.24 0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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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대낮에도 흉기난동' 오명벗은 서울 대림동도 안전한 생활터전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 = "진짜 여기가 무서워 보이세요? 영화처럼 갑자기 누군가 흉기를 들고 칼부림이라도 날 것 같나요?"

23일 오전 11시께 서울 영등포구 대림중앙시장에서 만난 중국동포 조 모(38) 씨는 2017년 개봉한 영화 '청년경찰' 얘기를 꺼내며 이렇게 되물었다.

23일 찾은 서울 영등포구 대림중앙시장의 모습
[촬영 이상서]

찬거리를 사기 위해 종종 이곳을 들른다던 조 씨는 당시 극장에서 본 이 영화가 아직도 생생하다.

중국인이 많이 모이는 대림시장을 포함한 대림동 일대를 흉악 범죄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곳으로 묘사한 장면 때문이다.

"칼부림도 자주 나서 경찰도 잘 안 들어오니까 돌아다니지 말라"는 영화 대사는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는 "흉악 범죄가 일어난 적도 있지만 착하고 묵묵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며 "앞으로는 이런 소재를 다루는 영화가 나오면 시작 전에 '사실과 관계없는 허구'라고 당부나 해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최근 법원은 피고인 '청년경찰' 제작사 측이 원고인 중국동포에게 공식 사과를 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라는 재심 판결을 내렸다.

부정적인 묘사를 담은 허구의 사실이 포함됐다는 점을 인정하고 화해 권고 결정을 내린 것이다.

대림동을 배경으로 한 영화 '청년경찰'의 한 장면
[유튜브 캡처]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대림시장 상인들은 "이제라도 사과를 받게 돼서 다행"이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이곳에서 10년 넘게 식료품 가게를 운영하는 장종숙(65) 씨는 "어떻게 중국에서 온 사람 전부가 악인일 수 있겠냐"며 "사람 사는 세상은 어디나 비슷하다"고 말했다.

장 씨는 "한국인이라고 생각하고 모두와 어울려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라며 "생활 방식이나 말투가 다르다고 차별하지 말고, 창작물에서도 왜곡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중국 옌볜(延邊) 음식 전문 식당에서 일하는 서정순(73) 씨는 "중국인으로 살다 20년 전부터 한국으로 귀화했지만 그간 겪은 차별로 가슴에 상처가 많다"며 "나야 이제 다 늙어서 미련은 없지만 다음 세대는 나보다는 덜한 편견 속에서 한국에서 지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 씨는 "대림동에는 중국동포 뿐만 아니라 귀화인, 중국인 등 나름 다양하게 뒤섞여 살고 있다"며 "한국사회와 어울리지 않으려고 한다는 시각은 알고 있지만 우리도 마찬가지로 세금 내고 성실하게 일하며 지낸다"고 강조했다.

이번 일을 시장을 활성화할 기회로 삼자는 기류도 엿보인다.

양꼬치 집을 운영하는 A씨는 "오래 전 일이니 이제 괜찮다"며 "불경기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덮쳐 힘들지만 이번 판결을 계기로 다시 관심이 쏠리는 만큼 좀 더 힘을 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숙자(66) 사단법인 재한동포총연합회 이사장은 "영화 개봉 당시 시장 사람들이 많이 위축됐다"라며 "무슨 일만 터지면 중국동포라는 사실이 부각됐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앞으로 우리 스스로 떳떳해지자는 각오로 더 친절하고 책임감 있게 영업을 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덧붙였다.

23일 찾은 서울 영등포구 대림중앙시장의 모습
[촬영 이상서]

이번 중국동포의 소송을 대리한 법무법인 덕수의 조영관(38·변호사시험 3회) 변호사는 "청년 경찰 이후 비슷한 영화가 유행처럼 이어졌기 때문에 개선의 필요성을 절감했다"라며 "이를 시작으로 21대 국회에서 관련 차별 규제 법안이 마련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조 변호사는 "대림시장은 내가 종종 점심 먹으러 가는 보통의 공간이고, 여기서 볼 수 있는 일상도 우리와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관할 파출소 관계자는 "20년 넘게 근무하면서 지나온 수십군데 발령지와 비교했을 때 여기가 특별히 흉악 범죄가 더 많거나 출동이 잦지는 않다"며 "다 똑같은 사람 사는 곳"이라고 전했다.

shlamaz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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