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욱 셰프 "사람도, 음식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대했으면 해요"
정창욱 셰프 "사람도, 음식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대했으면 해요"
  • 이상서
  • 승인 2020.06.23 07: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맛집 기행 유튜브 채널 '최자로드3' 출연 중인 정창욱 셰프 인터뷰

정창욱 셰프 "사람도, 음식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대했으면 해요"

맛집 기행 유튜브 채널 '최자로드3' 출연 중인 정창욱 셰프 인터뷰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 = "물론 음식에도 국경은 있겠죠. 다만 유럽연합(EU) 같은 국경이랄까요? 기차에서 잠든 사이 두세곳의 나라를 넘나들기도 할 정도로 왕래도 쉽고 경계선도 덜 엄격해 다양한 사람이 뒤섞이는 그런 환경이요."

재일동포 4세인 정창욱(41) 셰프가 만드는 음식에는 여러 나라의 맛이 담겨 있다. 한국의 매콤한 맛도, 일본의 적당히 느끼한 맛도, 미국의 달콤한 맛도 느껴진다.

22일 자신의 식당에서 인터뷰 중인 정창욱 셰프
[촬영 이상서]

최근 동갑내기 가수 최자와 맛집 기행 유튜브 채널인 '최자로드'에 출연하며 인기를 모으고 있는 정 셰프는 23일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사람이든 식문화든 구분 짓고 편을 갈라서는 안 된다"라며 "모든 것을 품는다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음식을 만드는 게 내 신념"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아버지는 우리나라에서 나고 자란 한국인이고, 어머니는 재일교포 3세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 징집 당한 외증조할아버지는 일본 요코하마(橫浜)시에 도착했고 가족도 자연스럽게 이곳에서 뿌리를 내렸다.

그는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으로 일본에서 생활했던 것 같다"며 "9살에 구구단을 일어로 외우자 그때까지 화 한 번 안 냈던 온화한 아버지가 회초리를 드셨다"고 기억했다.

당시 외삼촌 내외가 운영하는 선술집 주방을 놀이터 삼아 찾은 게 그와 요리의 첫 번째 인연이었다.

그는 "생선 비린내가 진동하고 고깃덩이가 굴러다니던 부엌이었지만 음식이 만들어지고 거기서 풍겨오는 냄새와 따뜻한 분위기가 좋았다"고 말했다.

일본을 종종 오가긴 했으나 초·중·고등학교를 모두 한국에서 졸업했다. 동국대에서 국제관계학과와 일어일문학과를 동시에 전공했다.

"사실 무늬만 교포예요. 대한민국 4대 의무는 전부 충실히 수행했으니까요. 의경으로 병역의 의무를 마쳤고, 교육도 받았고, 지금은 열심히 일하면서 근로와 납세의 의무도 수행하고 있고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자연스럽게 터득한 양국의 언어는 그에게 중요한 생계수단이 됐다.

19세부터 NHK 서울지국 시사교양팀과 후지 TV 등에서 통역 일을 하며 학업을 병행했고, 여기서 번 돈으로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는 물론이고 2007년에 다녀온 미국 하와이 대학교 유학비도 충당했다.

한글, 영어, 일어 등 세 언어로 기록된 정창욱 셰프의 레시피 노트
[촬영 이상서]

"보람도 있고 인정도 받았고 처우도 넉넉했던 통역사의 일을 본업으로 삼을까 고민도 했는데요. 그래도 제가 즐거웠던 순간은 요리할 때였어요. 친구를 불러 모아 밥을 먹이고, 그들이 맛있다고 하면 좋았고요. 하와이 유학 시절에도 음식을 만들어 주곤 했는데 행여나 빈접시가 아닐 때면 '맛이 없나' 혼자 근심에 빠지기도 했죠."

2007년 말 요리를 향한 열정은 그를 일본 도쿄(東京)로 이끌었다. 요리사로 도전하기에는 다소 늦은 나이인 28세에 일본 정식집에서 설거지부터 했다.

작은 원룸만 한 냉동고 청소는 그의 몫이었다. 고기에서 흘러나온 피와 얼음이 들러붙은 바닥을 닦고 또 닦았다.

요리사 조리복을 만지작거리면 선배들은 "어딜 감히!"라며 티셔츠로 갈아입으라고 했다.

6개월을 그렇게 보내며 야채 다듬기 등 조금씩 칼을 다루기 시작했던 어느 날이었다.

한국에서 그를 보기 위해 한 친구가 식당으로 찾아왔고, 이 사실을 눈치챈 주방장은 "얼른 조리복으로 갈아입고 요리를 만들어 접대해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 대접한 음식은 돼지고기 조림이었다"라며 "1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잊지 못하는 메뉴"라고 말했다.

2010년 한국으로 넘어와 일식당을 냈고, 이후 이탈리안 식당으로 업종을 바꾸며 요리의 범위를 넓혀갔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메뉴를 섞으면 어떨까 생각을 많이 했죠. 가령 낫토에 고춧가루를 뿌려 먹으면 어떨까, 미역국에 일본의 인기 생선인 연어를 넣으면 어떨까 하는 것처럼요."

음식에서 그가 강조하는 것은 '너그러움'이다. 음식이든 사람이든 서로 배려하고 포용력 있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믿는다.

최근 일본 맥도날드가 자국 인기 메뉴로 '가루비맥'(갈비맥)을 정하자 한국 누리꾼이 '갈비를 일본의 고유 음식처럼 보이게 했다'며 분개했던 사건에도 조심스레 의견을 냈다.

"전통 음식을 뺏긴 듯한 기분을 충분히 알죠. 그러나 부대찌개는 우리 음식인가요? 미군부대에서 나온 식재료로 만든 요리잖아요. 100여년 전에 중국 화교가 들여온 짜장면은요? 돈가스나 양조간장도 엄밀히 얘기하면 처음부터 우리 음식은 아니었죠."

그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파는 유일한 메뉴인 탄탄멘은 본래 중국 쓰촨성에서 유래한 음식이다. 일본으로 건너간 이것은 국물이 넉넉해졌고 향신료가 추가돼 다른 메뉴가 됐다. 그가 한국에서 만드는 탄탄멘은 여기서 향신료를 덜어내고 다시 국물을 줄여 개량한 것이다.

그는 "내 음식은 굳이 표현하자면 '다문화 탄탄멘'이 아닐까 싶다"며 "요리든 사람이든 '이거는 우리의 것이 아니야'라거나 반대로 '우리가 뺏겼다'라고 구분 짓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힘줘 말했다.

22일 자신의 식당에서 인터뷰 중인 정창욱 셰프
[촬영 이상서]

shlamazel@yna.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