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쿡사람?" 어설픈 발음 웃음거리 삼아도 될까…인종차별 논란
"외쿡사람?" 어설픈 발음 웃음거리 삼아도 될까…인종차별 논란
  • 이상서
  • 승인 2020.06.21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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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쿡사람?" 어설픈 발음 웃음거리 삼아도 될까…인종차별 논란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 =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이 얼마나 한국어를 습득하기 위해 노력했는지 조금이라도 안다면 그런 농담을 하지 못할 겁니다."

재외국민과 다문화 가정의 시선으로 본 한국의 모습을 주요 소재로 다루는 인기 유튜브 채널 '외국인코리아'를 운영하는 안대용(33) 씨는 예능 프로그램을 시청할 때면 종종 불편한 마음이 든다.

인기 아이돌 그룹의 외국인 멤버가 서툴고 부정확하게 한국어를 말할 때마다 출연진이 반복해서 발음하길 요구하거나 틀린 발음대로 자막을 입히는 등 웃음 코드로 사용하는 장면 때문이다.

과거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한 아이돌 그룹 멤버의 모습 [KBS 유튜브 캡처]

안 씨는 21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해외에서 영어 발음이 이상하다고 놀림 받은 경험이 있다면 그 장면에서 웃지는 못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우리가 이방인에게 한 행동 가운데 자각하지 못했지만 실례가 된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유튜브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며 "누구나 즐겁다면 유머가 맞지만 단 1명이라도 기분이 나쁘다면, 특히 그게 당사자라면 더 이상 농담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외쿡사람'이라는 표현, 나쁜 의도는 아니라지만…

최근 일본, 중국, 태국, 대만 등 여러 아이돌 그룹의 외국인 멤버가 우리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가운데 이들이 구사하는 한국 발음이 놀림거리로 쓰이는 게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사회적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올해 초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진행자가 출연한 외국 아이돌 멤버에게 "스스로 달변가라고 생각하냐"며 놀리는 모습이 논란이 되며 시청자들이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또 다른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외국인에게 '한국어 패치는 아직'(한국어 구사가 서툴다는 의미)이라는 자막을 써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차별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트위터 아이디 team****'은 "(예능에서) 외국인 멤버의 어눌한 발음을 희화화하거나 웃음거리로 삼는다"며 "인종 차별의 하나로 비판받을 일"이라고 주장했다.

아이디 hosh****도 " 역시 "K팝이 세계로 뻗어 나간다고 하지만 이런 모습을 보면 개선할 점도 많다"고 말했다.

외국인의 한국어 발음을 두고 웃음 코드로 사용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낀다는 의견은 이미 우리 주변에서도 꾸준히 나왔다.

미국 출신 방송인 타일러 라쉬(33)는 과거 자신의 트위터에 "'외쿡사람'이라는 표현은 나쁜 의도는 아니라지만 (들을 때마다) 기분이 찝찝하다"고 말했다.

타일러의 글을 본 다른 외국인들도 "원어민과 다른 억양을 놀리는 느낌도 들고 기분 나쁘다", "말투가 다르다는 것을 대놓고 드러낸 거라 화가 난다"는 공감하는 댓글을 남겼다.

[타일러 라쉬 트위터 캡처]

◇ 우리가 이방인이라면 괜찮았을까

이런 현상을 두고 외국인의 예능 프로 출연이 늘면서 생긴 하나의 유행이라는 시각도 있다.

직장인 신모(45) 씨는 "한국에서 활동하려면 능숙한 한국어는 필수 아니냐"라며 "인신 공격은 잘못된 행동이지만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 본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당사자가 된다면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5년 미국 연예 매체 TMZ는 LA국제공항에 도착한 한국 걸그룹 EXID의 영어 억양을 놀리는 동영상을 게재해 큰 비난을 받기도 했다.

외국어 배우기 [게티이미지 뱅크 제공]

10년 넘게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다 서울 목동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는 김지훈(37) 씨는 "뉴욕 한 식당에서 스파게티를 주문했는데 종업원이 (내 발음을 조롱하는 말투로) 두세번씩 되물었다"며 "지배인을 불러 정식으로 사과를 받았지만 인종차별을 당했다는 모욕감이 들었다"고 기억했다.

김 씨는 "영어를 완벽히 습득한다고 하더라도 모국어에서 섞이는 고유 억양을 완전히 바꿀 수 없다"며 "각국 개성이 담긴 발음을 비정상적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외국인의 발음이 다른 것은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임동훈 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우리만 해도 지역마다 잘 구사하지 못하는 발음이 있지 않느냐"고 반문한 후 "음절 구조가 언어마다 다른데 오히려 원어민과 유사하게 말하는 사람이 예외적인 경우라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이 250만명을 넘기며 다문화 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는 만큼 이 부분에 경각심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국가인권위원회가 2015년 다문화 가정 학생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부정확한 발음으로 놀림을 당했다고 답한 비율은 41.9%로 나타났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K팝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가운데 인종 차별적 소지가 있는 모습은 국제적인 논란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다"며 "방송에서는 더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shlamaz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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